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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텍 410일, 착취 아닌 착즙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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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텍 410일, 착취 아닌 착즙의 시대

[마음은 굴뚝같지만] "굴뚝농성은 한국 사회 노동시장의 단면이다"

그때는 몰랐다. 평소와 다르지 않아 눈치를 채지 못했다. 저녁 시간이었고 마침 쌍용차 지부 사무실에 있었다. 파인텍 동지들이 다섯 명이었나, 네 명이었나.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홍기탁·박준호는 분명히 있었다. 우리는 통닭집으로 가서 맥주 한잔을 하고 잔디가 깔린 공원에 들어가 씨름도 했다. 차광호 형은 힘이 센 사람인데, 운 좋게도 내가 이겼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지기라도 했을 텐데. 그때는 몰랐다. 그래서 있는 힘껏 밀어붙여 씨름을 이겼다. 물론 팔씨름에선 상대도 되지 안 됐지만.


그렇게 파인텍 동지들과 헤어지고 불과 며칠이 지났을까.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에서 굴뚝 농성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2017년 11월 12일. 미리 귀띔이라도 해줬더라면 그 시간을 씨름이나 하며 철딱서니 없게 보내지 않았을 텐데. 꽤 긴 시간이 지났지만, 그날만은 잊을 수가 없다. 따뜻한 말 한마디 더 보태지 못했던 기억이 자주 올라온다.

▲ 파인텍 노동자 홍기탁 씨와 박준호 씨가 75m 굴뚝 위에서 직접 사진을 찍어 보내왔다. ⓒ프레시안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제대로 표현할까. 굴뚝농성이 410일로 접어든다. 굴뚝을 지켜보며 인간의 한계와 임계점을 말하지만, 굴뚝 위에서 버티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조차 의미를 상실하게 되는 시간이다. 바람과 별과 굴뚝의 잦은 진동과 떨림, 그렇게 흔들릴 만큼 흔들려야만 하루가 채워진다.

카메라 렌즈로 보면, 75미터 굴뚝 위 두 사람은 점이나 작은 막대기로 보일 때도 있다. 바늘처럼 말라가는 가을 갈대를 닮아가지만, 뿌리 흔들림 없는 겨울 갈대의 모습으로 의연하게 또 살아내고 버티고 있다. 밧줄에 매달린 음식 끌어 올리는 근육이 상하지나 않았는지, 하루에 두세 번 오르내리는 밥줄의 속도를 가끔 생각해보곤 한다. 감기 몸살이라도 걸리면 어떡하나. 겨울 한복판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심해지는 냉기와의 싸움은 또 어떡하나.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 찾아오는 엄청난 양의 생각들은 또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굴뚝 위를 보면 머릿속이 번잡하다.

"파인텍과 아무 상관도 없는 곳에 올라가서 어쩌자는 겁니까?" 목동 열병합발전소 직원은 이렇게 내뱉었다. 파인텍 노동자들이 올라간 목동 열병합발전소는 좁혀서 생각하면 남의 공장이다. 직접적 관계가 전혀 없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노동자들이 올라간 굴뚝이 그들과 관련이 없는 것일까.

경북 구미에서 멀쩡하던 공장을 잃고 충북 아산으로 옮겼다. 섬유산업의 사양화가 초래한 결과는 노동자들의 일터를 빼앗고 지역까지 바꿔버렸다. 공장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노동자에겐 분진과 과거의 상실과 공중 분해되는 일터뿐이지만, 자본에게는 막대한 이득이 남았다. 자본이 안내하는 대로 일터가 만들어졌지만 시한부로 끝났고, 그 과정에서 동료를 떠나보내야 했다.

이제 고작 다섯 명이 남아 이 외롭고 어려운 싸움의 벽 앞에 섰다. 이들이 갈 곳은 어디인가. 노사 합의서가 판판이 깨질 때마다 인생이 깨져나갔지만, 누구 하나 그 삶을 돌아보지 않았다. 이들이 머물 곳이 사라졌다. 서 있던 자리를 빼앗기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 다닐 때마다 일터를 빼앗겼다. 이제 이들에게는 남의 땅이 아닌 곳이 없고, 어디를 가도 관계없는 곳이다. 그래서 오히려 남의 땅이나 관계없는 곳이라는 말은 의미를 잃었다. 그 자체가 사라졌다.

스타플렉스 김세권 대표는 노사합의를 지켰어야 했다. 그러나 어겼고 약속을 뒤집었다. 속에서 천불이 나지 않고 배길 수 있는 시간이었겠나. 굴뚝농성은 한국 사회 노동 시장의 단면이며, 비뚤어진 운동장에 꽂힌 '노동의 기표'다.

노동과 자본은 등을 맞댄 사이다. 극단의 투쟁으로 보이는 현상은 결국 극단적으로 몰아붙이는 자본 탓이다. 극단의 방법이 끊임없이 동원되는 이유도 한 줌 밖에 되지 않는 자본의 횡포가 극단으로 치닫기 때문이다. 착취를 넘어 착즙의 시대로 급속하게 재편되는 노동의 파괴는 굴뚝으로, 천막으로, 크레인으로 솟아오르고 있다. 갑질의 교묘함으로 갑질이 은폐되는 곳, 합의서 파괴가 명백함에도 어떤 처벌도 불가하다는 그 잘난 법과 제도의 시대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법률적으로 문제가 될 수 없다는 그 말 속에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스러지고 사라지고 멸균 처리되듯 죽어 가는가.

조금만 더 가보자. 그러나 410일이 된 지금 이 순간 서두르지 말았으면 좋겠다. 더 나은 시간이 기다리기 때문이 아니다. 지난 시간을 단순 반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스타케미칼 시절 차광호 지회장이 목숨 건 굴뚝 농성 408일로 만든 합의서가 처참하게 짓밟히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같은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어설픈 중재로 이 사태를 얼버무릴 수 없는 이유다. 김세권 대표의 법적 처벌 이외의 방법으로 이 사태를 진정 시킬 방법은 없다. 어설픈 중재야말로 이들을 다시 고공으로 밀어 올리는 압력일 수 있다는 점을 납득하면 좋겠다.

시민사회 대표자분들의 단식이 길어지고 굴뚝 아래 차광호 지회장 단식도 17일이 넘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힘과 노력과 정성을 쏟아붓는 이 시점이 사태 해결의 변곡점이 되어야 한다. '불경어수 경어인(不鏡於水 鏡於人)'이란 말이 있다. '사람을 보려면 물이 아니라 사람에게 비춰보라'는 말인데, 지금 한국 사회의 노동을 보기 위해서는 물이 아니라 굴뚝에 비춰봐야 할 것 같다. 그래야 비로소 노동이 처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내장 가득 쌓인 분노의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외롭게 싸우는 이들을 그 시간 속으로 다시 밀어 넣어서는 안 된다. 확실한 매듭을 짓기 위해 모든 분야에서 나서서 파인텍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파인텍 홍기탁·박준호의 굴뚝농성으로, 더 이상 노동자들이 고공을 향해 참담한 비계를 놓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었다고 말해 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두 사람이 남의 공장 굴뚝에 올라가서 자기 문제를 넘어 사회 전반의 얘길 줄기차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픈 경험으로 낭떠러지로 내몰리는 노동자들의 삶을 더 이상 방치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귀담아들었다면, 이제부터 가차 없는 행동에 함께 돌입하자. 외롭고 힘들게 싸우지만 언제나 당당한 홍기탁·박준호를 기쁘게 맞이할 준비에 들어가자.

* '마음은 굴뚝같지만'은 2017년 11월 12일부터 75m 굴뚝 위에 올라가 있는 파인텍 노동자 홍기탁 씨와 박준호 씨가 하루라도 빨리 내려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쓰는 연대 글입니다. 같은 사업장의 노동자 차광호 씨는 2015년 스타케미칼 공장 굴뚝에 올라 전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일인 408일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지난 12월 24일, 이 기록은 굴뚝 위 홍기탁, 박준호 두 사람에 의해 갱신되었습니다. 이 추운 겨울을 다시 굴뚝 위에서 맞이하게 할 순 없습니다. 이들이 어서 지상으로 내려와 다시 노동자로서 일상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길 응원하며, 파인텍 5명의 노동자들이 웃으며 일터로 돌아갈 수 있길 기대하며 시민들이 마음을 모아 릴레이 연재를 이어갑니다.

법적으론 문제없단 말 들었을 때..."아 문제가 많구나"

"그 굴뚝 앞에 서보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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