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과 4대강조사위원회는 18일 서울 중구 환경재단 레이첼카슨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하청 건설사들은 산업안전보건법, 과적법 등 대한민국 법은 다 무시해가면서, 돈을 쓸어 담기에 여념이 없었다"며 "품셈 조작을 통해 사용료를 약 1.6배 부풀리고 건설 노동자에게는 계약 단가의 39%만 지급함으로서 약 7116억 원의 부당 이득까지 취했다"고 주장했다.
공사를 발주할 때 '이 사업은 어느 정도 금액이 든다'는 것을 예상해 설계 단가를 책정한다. 업체들이 입찰 경쟁을 하면 낮은 가격을 써낸 업체가 공사를 따내는데, 이때 단가는 계약 단가가 된다. 그러나 실질 공사비, 즉 적정 단가는 더 낮을 수 있다. 100원짜리 공사인데 200원이 든다고 부풀리면 나머지는 '눈먼 돈'이 된다.
건설노조 등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4대강 사업에 투입된 24톤 덤프트럭이 물량을 적재하고 내릴 때까지를 '1회 사이클'로 봤을 때, 걸리는 시간은 약 16.22시간(품셈)이다. 이런 식으로 할 경우 덤프트럭 1대당 '일위대가', 즉 실제 적정 단가는 약 86만6000원이다.
그러나 설계 단가에서는 '1회 사이클'에 걸리는 시간이 26.64시간으로 계산됐다. 품셈을 약 1.6배 부풀린 것이다. 이로 인해 설계 단가는 138만6000원이 된다. 품셈 조작으로 이미 50만 원 정도가 건설사 주머니로 들어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나마 하청에 재하청을 받는 특수고용직 덤프트럭 노동자들이 받은 실질 지급액은 45만 원밖에 되지 않는다. 설계 단가(138만6000원)가 낙찰률('턴키' 방식 낙찰은 단가의 평균 91% 수준, '경쟁' 방식 낙찰은 단가의 평균 64% 수준)에 따라 최대 9~36% 낮은 금액으로 계약된다는 것(계약 단가)을 감안하면 덤프트럭 1대당 최대 81만 원가량 공중으로 사라진다는 계산이 나온다.
30개 공구에 참여한 거의 대부분의 원도급 건설업체들이 모래 운반을 하면서 이런 식의 계약을 했다. 30개 공구의 총 운반 계약액은 1조1665억 원. 그러나 실제 덤프트럭 노동자들이 받은 돈은 4549억 원에 불과하다. 7116억 원이 허공으로 사라진 것이다.
ⓒ건설노조 |
ⓒ건설노조 |
건설노조 관계자는 "4대강 사업에 투입된 장비 중 굴삭기와 덤프트럭이 81%다. 굴삭기는 모래를 파내고 덤프트럭에 적재한다. 적재하는 시간은 그래서 매우 짧다. 덤프트럭은 모래를 운반하고 적하한다. 이것이 지난 3년간 4대강 공사의 실체"라며 "그런 상황이라면 이런 식의 품셈 조작이 단순해 쉽게 이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종류의 단가 부풀리기 의혹은 처음 제기되는 것이 아니다. 강바닥을 얼마나 깊이 파느냐, 모래를 얼마나 운반하느냐 등에 따라 4대강 사업에 들어가는 '눈먼 돈'이 좌지우지되는 만큼, 각종 속임수가 난무하고 중간 알선업체(일종의 '브로커')가 기승을 부린다는 의혹은 그간 끊임없이 제기됐다.
지난 2011년 건설노조와 경제정의실천연합(경실련)은 4대강 사업 실태 조사를 통한 '인력·장비 투입 실태 분석' 결과를 토대로 건설 노동자 2만 명, 장비 7000대에 대한 임금 약 1조 원, 장비 임대료 약 7980억 원이 사라졌다는 충격적인 주장을 내놓았던 적도 있다. (관련 기사 : "4대강 '턴키' 후폭풍…2조 원이 증발했다")
건설노조는 관련해 "실제 공사비보다 잔뜩 부풀린 금액으로 계약을 체결해놓고, 다단계 하도급을 통해 원청이 부당 이득을 취한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는 당시 "건설노조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면서도, 건설노조와 시민 단체의 자료 공개 요구를 약 2년 4개월 지난 현재까지도 무시하고 있다.
즉 4대강 사업 건설사들이 '유령 장비'와 '유령 노동력'을 동원해 천문학적인 돈을 빼돌린 의혹이 이미 제기된 상황이다. 이날 나온 주장까지 더하면, 실제로 투입된 장비의 품셈까지 조작해 추가로 돈을 빼돌렸을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한 시민 단체 관계자는 "30조 원을 들여 전국의 강바닥에 '야바위판'을 만들어준 셈"이라고 비판했다.
"4대강은 비리와 비자금의 모태"
건설노조는 이날 비자금 조성 정황도 함께 폭로했다. 건설노조에 따르면 하청업자인 B토건은 노동 대가로 덤프 노동자 A에게 3200만 원의 세금계산서를 교부하고 계좌에 이 돈을 입금했다. 그러나 A는 3200만 원 전액을 다시 알선업자 C에게 계좌 이체했다. 알선업자 C는 실제 노동 대가인 1060만 원을 A에게 다시 입금했다. 가짜 거래로 약 2140만 원이 알선업자 손에서 사라진 것이다.
ⓒ건설노조 |
건설노조는 이런 식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알선업자, 건설업자 사이에서 비자금이 조성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장에서는 이 같은 수천만 원대 불법 자금 조성 사례 3건을 추가로 공개했다.
실제로 이러한 수법은 비일비재하게 사용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건설경제연구소의 6월 15일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3년 이내에 건설업체로부터 허위 세금계산서 발급을 요구받은 적이 있었냐'는 질문에 덤프 노동자 응답자 총 813명 중 52.9%인 430명이 "있었다"고 답했다. 굴삭기 노동자 역시 응답자 270명 가운데 62.2%인 168명이 "있었다"고 답했다.
이런 실태 조사 등을 토대로 건설노조가 추정한 데 따르면, 4대강 건설 기계 불법 허위 계산서 발급 건수는 약 5990건이다. 도합 수백억 원의 비자금이 광범위하게 조성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해 건설노조는 "비리와 비자금의 모태가 4대강"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비자금 의심 정황의) 경로를 살펴보면 알선업자 개입이 확인되는데, 이는 불법 다단계 하도급을 통한 건설 기계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가 얼마나 심각한지 여실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주장했다.
건설노조는 특히 "낙동강 24공구, 금강 3공구 현장에서는 불법 하도급을 통한 저단가 및 알선 수수료가 판치고 있었고, 낙동강 32공구에서는 부가세를 제한 2개월짜리 어음을 남발했다"며 "건설 노동자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지만, 슈퍼갑인 원·하청건설사의 횡포에 그저 눈물만 흘렸다"고 주장했다.
건설노조는 "사회 취약 계층인 200만 건설 노동자들은 건설 현장에서 구슬땀만 흘렸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체불에, 불법 다단계 하도급을 통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이었다. 4대 보험과 산재보험조차 적용 대상에서 벗어나 있다. 심지어 슈퍼갑인 원·하청 건설사들의 틈에 끼여 1일 4000원의 퇴직금조차 강탈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정부는 4대강 전 구간에 걸친 비리, 부실 공사에 대해 전면 수사에 나서고 관련자를 엄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건설 현장 비리를 척결하는 건설기능인법을 즉각 도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