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하순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이하 한유총 약칭) 국정감사장 방송 시청 소감은 한 마디로 '목불인견'이었다. 혹자는 블랙코미디라고도 했다. 헤드랜턴을 쓴 어느 한유총 임원인 유치원 원장의 모습을 보면서 불안돈목(佛眼豚目)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구체적인 즉물성 교육 방법론을 주로 택해야 하는 유치원 교사들이 원아를 가르치듯, 그 원장은 어려운 형편에 헌신적으로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는 상황을 재현하려 했던 듯하다. 그러나 국감 중계방송이나 뉴스를 봤던 많은 사람들에게서 오히려 빈축만 샀다.
더욱이 교육부가 사립유치원 비리신고센터를 가동하여 최근 5년간의 감사 결과를 실명으로 공개하기로 한 것에 대해 한유총은 "중대한 법위반"이라며 국가회계시스템 '에듀파인' 참여마저 거부했다. 그들은 죄 없는 원아들을 볼모로 유치원 폐원 투쟁을 선언하며 극단적인 주장을 서슴지 않았다. 지난 11일 한유총 이사장으로 선임된 이덕선 비상대책위원장은 "잘못된 유아교육정책과 싸우고 있다"고 말하며, '유치원 폐원하지 말고 (……) 끝까지 가자'는 취임사를 했다. 이 모든 잘못에 대한 책임을 정부가 지지 않을 수 없다. 즉 고양이 앞에 생선을 맡겼으니 말이다.
2017년 전체 보육아동 중 21.1% 아동이 국공립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79%에 달하는 보육아동들은 민간이 운영하는 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이미 세계적인 추세가 유치원 교육 과정이 의무교육으로 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국공립 유치원은 너무 적다. OECD 35개국의 3세~5세 국공립유치원과 어린이집 평균 취원율이 66.9%이고, G20 국가들의 평균 취원율도 59.3%이다. 한국보다 국공립 취원율이 낮는 것으로 나오는 호주나 뉴질랜드의 경우, 지역 사회 유치원 취원율이 높기 때문에 사실상 한국 아동의 취원율은 OECD 35개국 중 꼴찌인 셈이다. 미국의 국공립유치원 아동 취원율도 59.2%이다. 해방 이후 모든 정책과 제도를 미국식을 쫒았던 한국이 이러한 엄청난 격차를 보이는 것의 원인을 더 이상 경제력에서 찾을 수는 없다.
이에 지난 10월 25일, 유은혜 교육부장관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은 '열린유치원 공공성강화 당정협의회'를 개최하여 2021년까지 공영형 사립유치원(사실상 국공립화) 취원율을 40% 이상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뉴스1》 2018. 10. 25). 어떻게 이행될런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출산 절벽의 시대에 시급한 것은 유치원 의무 무상교육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가 공영형 사립유치원 정책을 통해 국공립 취원율을 40%대로 끌어올리겠다고 한 것은, 늦었지만 한국 유치원 역사에서 중요한 개혁이라 할 수 있다.
이 즈음 문제는 사립대학이다. 주지하듯 한국의 4년제 사립대학 비율은 77.8%로 OECD 국가들 중 가장 높고, 역으로 국공립비율은 가장 낮다. 사립대의 교수 한 사람 당 학생수가 30명 내외여서 초, 중등 교육 현장보다 후진적 환경에 부끄러울 따름이다. 이러한 문제는 해방 후 교육 정책, 특히 1990년대 중반 신자유주의적 교육 정책에 기인하고 있다. 정부는 해방 이후 줄곧 국공립대학 설립 대신 사립대학 설립을 우선시 했다. 또한 정부는 사립대학이 한때는 친일반민족자들, 비자금을 세탁하기를 즐겨하는 재벌들이나 교육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경제인들(심지어 부동산 졸부들 포함)의 온상이 되도록 방임(?)해왔다.
또한 교육당국은 교육이 백년대계이며, 교육의 목표는 홍익인간이라고 했으나 국가 인재를 양성하는 데에는 전적으로 무관심한 태도를 취했다. 독일이나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등록금 무상제도나 최소경비만을 받는 등의 정책을 취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은 균등하게 교육을 평등하게 받을 권리가 있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교육당국은 대학 교육을 개인의 책임으로 밀어버렸다. 오랫동안 유전유교, 무전무교라는 차별적인 교육을 조장해 왔다. 따라서 한국 대학 교육 제도 속에는 균등하게 교육 받을 권리가 없었다.
대한민국 헌법 31조 ①항에서도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못 박아 뒀다. 국민으로서 학생이 누려야할 교육권에 대해 교육권을 보장해야 할 의무를 담지하고 있다. 모든 국민이 교육권을 향유할 수 있는 교육 현장이 바로 공교육이다. 물론 국공립 대학이건 사립대학이건 모두 공교육의 장이다. 최근에서 실시된 국가장학금 제도에서 국공립대나 사립대 대학생들이 명목상의 반값등록금을 받고 있는 것은 비슷하다. 또한 2018년 '대학기본역량진단사업'의 결과 자율개선대학이 된 200여 대학들은 2019년부터 교육의 질 개선을 위한 일정 정도의 재정 지원을 받도록 되어 있다. 이 또한 대학이 공교육의 장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교육의 공공성 확보에는 턱없이 부족한 재정 지원이다. 최근에 개최된 '4차 산업혁명시대의 사학교육발전을 위한 대토론회'에서 사립대학 관계자들은 사학의 교육 공공성 앙양과 사학의 자주성 확보 목표로 재정지원을 확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교육 선진국에 걸맞는 안정적인 고등교육 재정 지원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이 제정되고 시행되어야만 한다.
여기서 우리는 사립대학의 근본적 문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대학의 공공성을 과연 사립대학들이 얼마나 제대로 지키고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사립대의 신입생 모집실적으로 교수평가를 했던 경주대 윤모 교수 사례를 보자. 2015년 12일 윤모 교수는 신입생 모집 실적 점수 미달을 이유로 재임용 거부 처분을 받고 그 이듬해 해직을 당했다. 최근 대법원 판결에서도 경주대 당국이 신입생 모집 실적으로 교원실적평가하는 것을 정당하다고 했다. 고등교육법 상에 대학교원의 평가 지표는 교육, 연구, 봉사 등으로 구성된다. 어디에도 신입생 모집 실적이라는 지표는 없다. 이는 마치나 판매실적으로 영업사원을 평가하는 기업들과 다름없다. 물론 교수 역시 대학의 구성원으로서 대학이 제 역할을 하는 데에는 일정한 책임을 진다. 가장 중요한 책임이 교육과 연구임을 말할 나위도 없다.
1995년 5월 31일 김영삼 정부의 '대학설립준칙주의'에 의해 대학 입학 정원이 급증하고, 대학 수가 늘어난 것이 이러한 문제를 낳은 구조적 원인이다. 5.31 대학정책으로 대학들은 앞 다투어 입학정원을 늘렸고, 대학 규모를 키웠다. 특히 지역적 특성, 고용 상황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종합대학을 마구 설립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바야흐로 인구 감소 시대가 닥쳐오고 있었다. 1984년 이래로 출산율이 2.0이하(1984년 출산율 1.74)로 떨어져 1995년생이 대학 입학을 하는 2000년대 중반이 되면 자연 대학입학지원자들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인구학적 상황을 예견할 수 있었다. 1990년대 중반 전문가들은 2000년대가 오면 대학들은 학생선발이 아니라 학생유치 경쟁을 벌여야 한다고 예상했다.(《동아일보》 1996년 7월 31일자) 심지어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대학들의 거대화와 수도권 대학으로의 학생 집중화 현상은 지역 인재 결핍을 재촉하는 악순환을 낳도록 되어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매일경제》 1995년 6월 1일자)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우려를 깡그리 무시했다.
5.31 교육 정책은 대학간, 학생간 무한 경쟁을 열어 놓았다. 5.31 교육 정책은 사립대학과 대학생 수의 급증과 등록금을 발판으로 한 사학 재단의 막강한 권력을 줬다. 또한 5.31 교육정책의 일환으로 부여된 대학의 자치권은 재단과 총장의 막강한 권력을 발판으로 한 불법 비리 문제, 대학 전횡과 설립자를 포함한 이사장의 세습 문제로 나타났다. 또 한편 지역대학들 중에는 '지잡대'라는 오명이 씌워지기도 했고, 지방대학 교수들은 판매 영업 사원으로 전락되는 일들이 빚어졌고, 그런 맥락에 경주대 윤모 교수같은 희생자들이 지역 대학 곳곳에서 발생하게 되었다.
현재 대학 교수 사회에는 철밥통 교수 문제, 갑질 문제, 연구하지 않는 교수 문제, 교수들간의 차별 문제, 연구비 횡령 교수 등 많은 문제들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원인을 구조적으로 파헤치고, 혁신하지 않는다면 한국 대학은 내부적으로 붕괴될 뿐만 아니라, 종국적으로는 한국의 학문과 지식 체계가 허물어질 운명이다. 또한 최근 전면 개정된 강사법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한다면 학문 재생산과 교육 재생산을 비롯한 대학 생태계 구조는 파괴되고 말 것이다.
대학이 많은 문제가 있지만, 대학에서 만들어 낸 인재들이 한국의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이만큼 발전시키고 정보화시대를 앞당기고 확산시키는데 기여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일제 식민 유산을 제대로 청산하지도 못한 채, 해방 후 대학을 출발시켰으나 소 팔고 땅 팔고, 어린 여공과 가족들의 피눈물나는 노동과 헌신의 댓가로 배출한 대학생들이나 지식인들이 한국 경제와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우리는 대학을 혁신시켜야 한다. 대학에서 만드는 인재들은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만 일하지 않는다. 우리의 인재들이 사회와 국가, 인류의 발전을 도모하는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국과 한반도의 미래는 밝다. 사회와 국가를 위한 인재로 키우기 위해서는 80%가 넘는 사립대학의 구조를 국,공립화, 즉 공영형 사립대학으로 재구성하는 데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인구절벽의 시대에 유럽의 국가들처럼 한국의 대학생들을 무상으로 교육받도록 하는 것, 즉 대학의 공공성을 수립하는 것은 한국이나 한반도 전체적으로도 결코 손해 볼 일이 아니라, 오히려 치열한 중국과 일본의 동아시아 경쟁 관계 속에서 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또한 법제도적으로 있지도 않은 '대학 오너'(ownership)라는 말로 대학을 전횡하고 비리의 온상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자치라는 이름의 전횡과 세습, 불법과 비리가 온존하는 대학지배구조에 비판하거나 저항을 하는 대학 구성원들을 억압하도록 방치하고 있는 사립학교법을 전면 개정하여 대학의 지배 구조를 완전히 새롭게 구성하지 않는 한, 대학은 계속 봉건 영주 체제에 머물게 될 것이다. 또한 교수가 교수답지 못하게 영업사원과 같은 일이나 하게 된다면 어떻게 제대로 된 교육과 연구를 할 수 있단 말인가? 현재와 같이 사학의 전횡구조, 비리온상구조, 대학 적폐를 청산할 수 있도록 정말 늦었지만 사립학교법을 전면 개편하여 사학이 공교육으로서 공공성, 민주성, 평등성을 시행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현재 정부는 사립 유치원을 개혁하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은 듯이 보인다. 혁신이 된 유치원을 졸업한 아동들이 12년 후 대학에 들어 올 때도 대학이 이와 같이 봉건적인 대학 구조로 남아 있게 될까봐 참으로 두렵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아무리 외쳐도 대학이 현재와 같은 낡은 구조로 남겨진다면 대학 교육과 학문의 혁신과 발전은 누가 할 수 있단 말인가?
인구절벽의 시대, 학령인구 절대 감소, 학문 생태계의 위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국 고등교육과 학문이 혁신되어야 한다.
김귀옥 한성대학교 교수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상임공동의장입니다. 이 칼럼은 민교협의 공식 입장과 별개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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