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명의 노동자가 황화수소(H2S)라는 유독가스에 질식해 사경을 헤매고 있다. 지난 11월 28일 오후 부산 사상구 감전동에 있는 폐수처리업체에서 폐수를 처리하던 중 노동자가 황화수소 가스에 중독돼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 가운데 네 명은 5일째 의식을 회복하지 못해 위독한 상태다.
사건이 발생한 업체 인근 다른 공장에서 작업하던 노동자 3명도 이 공장에서 누출된 가스에 중독됐다. 이들이 흡입한 황화수소 가스 농도는 다행히 낮고 양도 많지 않아 건강에 별 문제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30년 전 원진레이온 직업병 때 등장했던 황화수소가 주범
황화수소는 역사적인 유독가스이다. 30년 전인 1988년 세상에 알려져 대한민국 최대·최악의 직업병 참사로 자리매김한 경기도 구리시 원진레이온 직업병 사건에 등장한 바 있는 유독가스이다. 원진레이온 직업병은 이황화탄소가 주범이었지만 황화수소도 이와 함께 공장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했고 인근 주민들은 황화수소에서 뿜어져 나오는 특유의 악취로 30년 가까이 고통에 시달렸다.
황화수소는 섭취했을 경우 점막을 자극하여 침 분비 과다와 함께 타는 듯한 느낌을 일으키고 위장을 자극한다. 또 피부 자극성 물질이며 저농도에 노출되더라도 결막에 자극을 주고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결막염, 광선 공포증, 각막 수포, 눈물, 통증이 일어남과 동시에 시야가 흐려진다.
황화수소가 실제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이번 부산 사상의 폐수업체에서 벌어진 것처럼 들이마셨을 때이다. 호흡기로 들어온 황화수소는 몸의 핏속에 녹아들어가 혈액의 효소와 반응하여 세포 호흡을 방해한다. 그 결과 폐의 기능이 마비되어 갑작스레 쓰러질 수 있다. 이번에 쓰러져 의식불명인 4명의 노동자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심하면 사망에 이른다.
이번에 쓰러진 노동자들은 150ppm이 넘는 고농도의 황화수소에 노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보다 훨씬 낮은 저농도(15~50ppm)에서도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코와 기도 점막에 자극을 주고, 두통, 어지러움, 구역질을 유발할 수 있다. 고농도(200~300ppm)에서는 질식을 일으켜 혼수상태를 일으키거나 의식을 잃게 할 수 있다. 700ppm 이상에서 30분 이상 노출되면 치명적일 수 있다.
산성폐수와 알칼리성 폐수의 잘못된 만남이 황화수소 만들어내
이번 사고의 원인을 두고 정부 당국은 강산성 폐수조에 강알칼리성 폐수를 집어넣는 바람에 이 두 폐수 속 유해물질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황화수소가 급격히 발생함으로써 폐수 처리를 하던 노동자들을 위험에 빠트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으로는 문제의 폐수를 운반해오는 과정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황화수소는 유황온천이나 화산 분화구 등에서 맡을 수 있는, 계란 썩는 특유의 지독한 냄새가 나는데 작업자들이 처음에는 이 냄새를 못 맡았다는 사실도 이를 방증한다.
황화수소는 황화물이 산과 반응해 만들어진다. 또 황을 염기(알칼리)와 반응해 황화수소를 만들기도 한다. 만약 먼저 폐수조에 들어 있던 산성폐수 속에 황 성분이 있었고 여기에 강알칼리성 물질을 넣었다면 황화수소가 만들어질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사건 발생 당시 현장에서 쓰러졌다 의식을 회복한 한 노동자에 따르면 작업자들이 2층 집수조에 폐수를 넣고 활성탄을 집어넣은 뒤 얼마 되지 않아 집수조 근처에 있던 노동자가 쓰러졌다고 증언했다. 이어 관리부장이 쓰러졌고, 사고가 난 것을 알리려고 뛰어가던 직원도 몇 발 움직이지 못하고 힘없이 픽 쓰러졌다는 것이다.
작업자, 보호장비 없이 폐수 처리 작업했을 가능성 높아
이로 미루어 작업자들은 평소 유독가스 노출에 대비해 특수보호마스크를 착용하고 작업을 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또 외부에서 호흡할 수 있는 공기를 불어넣어주는 급기식 호흡보호구나 소방관처럼 자가호흡식 호흡보호구를 착용하지 않고 평소 작업을 해온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사고원인을 밝히기 위해서는 폐수조에 이미 들어 있던 폐수와 이 폐수조에 혼합했던 문제의 폐수 모두에 대한 정밀한 특성 분석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두 성격의 폐수가 합쳐지면 황화수소가 생기는지, 얼마만큼 생길 수 있는지를 정부 연구기관에서 실험을 통해 밝혀내야 한다.
이번에 사고를 낸 폐수업체에 유독가스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장비가 있었는지. 특수호흡보호구를 평소에 노동자들이 착용하고 폐수 정화처리를 했는지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회사가 노동자들에 대해 유독가스 발생 가능성과 이에 대한 대응 교육, 생길 가능성이 있는 유독가스에 대한 교육을 했는지 특별근로감독을 벌여야 한다.
이와 함께 이 폐수업체에 대해 노동부 근로감독관과 안전보건공단 관계자 등이 평소 제대로 안전 점검을 했는지, 안전교육 여부와 작업환경에 대한 조사는 제대로 했는지 감사를 벌여야 한다. 다시 말해 이번 사고 발생은 불가피한 측면이 강한지 아니면 정부와 회사 모두의 무사안일한 태도 때문인지를 제대로 밝혀내야 한다.
2012년 구미 불산 누출, 인근 노동자와 주민 공포에 떨어
최근 들어 화학물질 누출, 특히 유독가스에 의한 산재가 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유독가스는 사고 성격의 누출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고 때론 저농도이지만 꾸준히 장기적으로 노출돼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전자는 산재사고이고 후자는 직업병이다. 공장 유독가스 누출의 대표적 사례는 1984년 농약을 제조하던 인도 보팔 유니언카바이드사의 메틸이소시안산(MIC) 누출 참사이고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 구미 불산 누출 사고가 꼽힌다.
유독가스 누출은 최근 들어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 공장과 이번 사고업체처럼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맨홀에 배선작업 등을 하러 들어가던 노동자가 유독가스 질식 또는 산소 부족으로 숨지기도 하고 돼지 분뇨 처리 탱크 등을 청소하러 들어가던 노동자가 숨지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들 사고는 종종 한 사람이 쓰러진 뒤 아무런 보호장비 없이 그를 구출하러 들어가던 동료가 함께 목숨을 잃거나 중증 피해를 입는 일로 이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유독가스에 대처하는 매뉴얼을 작업자들에게 확실하게 교육해 만약 누군가가 쓰러질 경우 앞뒤 재지 않고 마구 달려들 것이 아니라 안전장비를 모두 갖추고 구조를 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 때도 드러난 것처럼 경보 사이렌이 울리지 않았고 인근 다른 공장 노동자와 인근 주민들은 사건 소식을 제때 알지 못했다. 다행히 이번 사고에서 인근 대기 중 황화수소의 양은 미미했지만 만약에 하나 다량의 황화수소가 고농도로 공장 밖으로 뿜어져나갔다면 대형 참사가 일어났을 수도 있다. 이번 사건은 적지 않은 피해를 주기는 했지만 그만하기에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국 사업장 가운데 유독가스가 생길 수 있는 곳에 대한 점검과 함께 유독가스로부터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할 수 있는 맞춤형 호흡보호구를 갖추고 있는지, 가스 누출에 대한 교육과 대응 점검을 실전처럼 하는지, 지역사회에서 유독사업장과 취급하거나 발생할 수 있는 유독가스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지 등을 일제 점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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