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적 시야에 길을 잃은 정권
5년 단임 대통령에 주로 1년마다 바뀌는 관료, 하루하루의 이슈에 함몰된 정치권과 언론은 현안에 대해 단기적인 대응밖에 할 수 없어서, 국가의 중장기 계획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스티븐 코비(Stephen Covey)는 중요한 일은 급하지 않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지만 급한 일을 처리하느라고 중요한 일을 놓치게 된다고 갈파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재정 문제다. 북한 문제는 정치적 결단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여지라도 있지만 재정은 한번 구조가 망가지면 회복하기 힘들다. 이것이 재정의 지속 가능성이다.
정부는 최근 최대 20조 원 규모의 추경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경기 침체로 성장률이 저하되어 세입 감소가 불가피해, 이를 채울 국채를 발행하겠다고 한다. 동일한 관료들이 세운 세수 계획이 불과 석 달 만에 뒤바뀐 것이다. 올해 균형 재정 목표는 공식적으로 폐기되었고, 5%의 세입 증가를 예상하고 짜인 이명박 정권의 예산안도 전면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지난해 말 박재완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기 침체란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는 상황에서 규정된다고 말하며, 대부분의 민간 기관이 2%대의 경제성장률을 예상할 때 3%대의 성장을 낙관했다. 그런데 불과 몇 달 사이에 정부는 경제성장률 예상을 2.3%로 낮추고 그나마도 더 낮아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허풍과 엄살이 교차하는 상황이다.
단기적 처방으로 인한 부채 증가를 우려한다
▲ 현오석 경제부총리 ⓒ프레시안(최형락) |
첫째, 부채 원금보다 이자가 더 큰 문제다. 개인 부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자 문제가 아니라면 가계 부채는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 아니다. 2012년 현재 우리의 국가 재무재표상 국가 부채는 902.4조 원이다. 물론 총자산은 1581조 원이며 순자산은 678조 원이다. 그러니 정부는 안심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계산 방식에 따라 국가 부채의 차이가 너무도 크다. 최대 1200조 원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 한편, 작게 보아도 국가 부채가 443조 원, 여기에 8대 공기업의 부채 324조 원을 합하면 767조 원이 넘는다. 이율 4%로 계산해도 연간 이자만 30조 원이 넘는다.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이자를 감당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러나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는 차치하더라도, 국방 예산이 34조 원이고 보건복지부의 예산이 41조 원인 상황에서 이자로 소모되는 재정만 줄여도 정부는 복지 정책을 포함해 다른 많은 공익적 정책을 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이 이자가 역진적이라는 것이다. 국가 부채의 이자는 전 국민이 골고루 부담해야 한다. 전체 재정에서 기계적으로 지출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이자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주로 금융 및 채권 소유자들에게 지급된다. 즉, 부유한 사람들에게 지출된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세금이 부유한 사람들의 이자 수입이 되어 그들을 더욱 부유하게 해주게 되는 것이다.
셋째, 현재 우리 정부의 문제는 감세를 통해 줄어든 세입을 국채 발행으로 메우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부동산 대책은 그나마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위축된 소수의 부유층을 도와주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감세 효과가 경제성장에 도움을 준다는 '낙수 효과'를 아직도 믿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기득권 세력의 마지막 보루인 부동산을 어떻게든 살려보려는 마지막 노력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효과는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빚을 내 부동산을 살 수 있는 사람이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크루그먼(P. Krugman)은 감세로 낙수 효과를 거두었다는 어떠한 실증 연구도 없다고 한 바 있다.
증세 없는 복지와 경기 부양 고집해선 안 돼
결론적으로, 한국의 재정 문제는 국채를 확대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으며, 이를 통해 해결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재정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너무 적은 세입, 즉 재정 구조에 있다. 최소한 비슷한 경제 규모의 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의 재정 규모를 만들어 정부가 경제를 활성화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럼에도 오히려 작은 재정 규모를 더 작게 해 결과적으로 복지를 증대하겠다는 발상은 억지일 뿐이다. 재정 규모 확대 계획 속에서 일시적으로 국채를 발행할 수는 있다. 하지만 당장의 위기를 넘기기 위한 땜질식 국채 발행은 매우 위험하다. 자칫 현 정권 내내 국채 발행이 일상화될 수도 있다.
증세 없이 재정 지출을 늘려간 무책임한 재정 운용의 문제점은 일본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반대의 사례는 스웨덴 같은 나라일 것이다. 스웨덴은 재정 위기가 닥쳐오자 국민적 합의 속에서 증세를 통한 재정 규모 확대를 이뤄내 복지국가의 초석을 쌓았다.
'재정 건전성의 역설'이라는 말이 있다.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는 정권일수록, 재원 대책 없이 경기 부양 효과만 강조하고, 단기적으로 이를 감당하지 못해 국채를 발행하여 오히려 재정 건전성을 해치게 된다는 뜻이다. 이런 과정이 일상화되면 재정 구조는 분명 망가진다. 중장기적인 고려가 없는 단기 해법은 병을 깊게 만들 뿐이다.
증세 없는 복지와 경기 부양을 계속 고집한다면, 이것이 '한국병'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단기적인 시야에 갇힌 정치인과 관료는 이미 그런 병에 걸려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국민이라도 길게 보는 눈을 가져 우리의 미래를 지키고 바꿔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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