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의료에 대해 19년 동안 반대만 하고 아무것도 못했다. (…) 그 사이에 미국만 발전해서 우리나라에 진입하려고 하는데, 우리가 허용하면 관련 업종의 중소벤처기업이 성장할 수 있다."
지난 12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한 말이다(☞관련 기사 : 홍영표 원내대표 "원격의료 도입, 정기국회 내 처리"). 얼마 전 대통령까지 나서서 "의료 혜택이 닿기 어려운 도서벽지 환자의 원격의료는 선한 기능"이라고 했다지만, 다시 정권 또는 당·정·청의 본심이 드러났다.
말이 곧 생각이고 의도다. 여당 원내대표가 큰 의도 없이 입에 올린 원격의료의 명분, 발전, 진입, 기업, 성장이란 단어들이 무엇을 뜻하는가? 중소기업이라 슬쩍 걸쳤지만, 무엇이라 치장해도 결국 무엇을 하고 싶은지 분명하다. 의료로 돈을 벌자는 것, 의료 영리화, 영리 의료를 촉진하자는 것이다.
본인들부터 믿지 않겠으나 참 답답한 것부터. 어찌 보면 근거가 약한 '소박한 믿음'이 가장 높은 수준의 국정을 결정하는 근거로 쓰이는 현실이 더 한심하다. 공익적 목적, 선한 기능이라 했지만, 공무원, 그런 지역 주민, 군인, 그 주변의 의사, 그 누구에게든 물어보라. 원격의료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단지 이념적, 철학적 차원이 아니라 기술과 경제성으로도 결론이 난 이야기다.
상식적으로, 소박한 믿음을 다르게 동원해 보시라. 도서벽지, 원양어선, 군부대 등 의료취약 지역이나 집단에 더 좋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은 따로 있다. 원격의료가 급한 것이 아니라, 원격의료를 할 돈으로 좋은 의료인력과 시설을 갖추고 응급의료체계를 개선하는 것이 훨씬 급하다.
원격의료는 정권 차원의 의료 영리화 드라이브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지금 국회에서 논의 중인 첨단·혁신의료기기 산업 육성과 첨단재생·바이오의약품 규제완화 관련 법안의 문제는 일일이 따지기도 힘들 정도다.
이른바 규제 혁신(혁신이라 하지만 '철폐' 또는 '완화'로 읽는다)이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우리도 이미 여러 차례 반대 의견을 내놨다(예를 들어 다음 논평. ☞바로 가기). 그사이 어떤 명분도 새로 추가되지 않았다. 경제와 성장이라 하지만, 근거는 미약하고 종류가 무엇이든 성과를 볼 가능성은 미미하다.
믿음으로 치면 의료정보 빅데이터 산업은 그야말로 가관이다. 빅데이터라는 유행이자 시대정신(?)에 올라타려는 정부 각 부처, 자본과 기업, 대학, 연구자들의 탐욕은 고삐가 풀린 지 오래, 청와대와 정부·여당이 합작해서 가상이 현실이 되도록 기름을 붓는 중이다(☞관련 기사 : "내 건강정보 팔지마"…의료정보 상업화 우려에 반기, 정부, 보험사에 개인 진료·건강정보 '빗장 풀기' 논란).
"과기부는 최근 건보공단이 보유한 진료내역(개인 질병 정보)과 건강검진 결과 등을 가입자 개인이 스마트폰을 활용해 민간 보험사 등의 앱에 직접 내려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복지부와 건보공단에 강하게 요구했다. (…) 민간 보험사와 병원들은 개인의 건강정보를 활용해 질환 관리·예방을 하는 서비스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나? 우리는 하나하나 정책의 내용과 정부 각 부처의 이해관계를 넘는, 국정 전반의 기조가 문제라고 판단한다. 정부 온 부처가 달라붙어 의료 산업을 키우려는 동력은 왜 생겼는가? 보건복지부는 왜 저러고 있으며, 과기부의 관료적 이해관계는 어디서 나오는가? 여당은 왜 야당 시절 주장을 180도 바꾸어 새로운 소신을 주장하는가?
지금 이 시각에도 정부 각 부처와 산하 공기관은 이런저런 것을 내놓으라는 압박을 받고 있을 것이다. 짐작하고도 남는다. 성장률을 올리고 일자리를 늘리는 정책에 누가 반대하고 누가 무관심할 수 있을까. 눈곱만큼만 가능성이 있어도 시민단체의 반대쯤은 말할 것도 없고 영혼도 팔 태세다.
우리가 판단하는 국정 운영의 현상은 과거 패러다임의 경제에만 초점을 맞춘 데다 정치적이지도 전략적이지도 못하다는 것이다. 그뿐인가, 실행의 역량은 부족하고 그를 보완할 협력과 연대의 태세도 찾기 어렵다.
거듭 주장하지만, 우리는 경제나 성장, 일자리 또한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인간 생활과 삶에 복지와 건강, 안전만 중요한 것이 아니니, 소득, 통상과 산업, 고용, 노동과 같은 물적 토대가 갖추어져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문제는 그 경제가 어떤 경제인지 하는 점, 그리고 투입이 원하는 결과에 이를 가능성이다. 예를 들어 의료 영리에는 이런 경제가 개입해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그 누구도 차근차근 논리구조를 설명한 적이 없지만, 합리적 추론은 이런 것이다.
규제를 풀어 (안전성, 효과성이 불확실해도) 새로운 의료기기와 약품을 빨리 시장에 내놓고, 얼른 건강보험에 포함해서, 병원과 환자가 이를 빨리 더 많이 사용할 수 있게 하자는 것. 안전성은 문제가 없다 치고, 진료비가 오르고 건강보험 지출이 늘지만, 그 때문에 의료기 회사나 제약사가 성장할 수 있다는 것, 매출과 수익, 일자리가 늘 것이라는 기대...대강 이런 논리 구조가 아닌가 싶다.
또 다른 예. 민간보험 회사가 빅데이터 기반의 개인정보를 활용해 '건강관리'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보험 상품을 더 많이 판매하거나 보험금을 덜 쓰게 하자는 것. 이번에도 환자나 보험 가입자는 별 손해가 없다 가정하고, 결국 보험회사의 매출이 늘고 수익도 늘어나는 것. 이로써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보탬이 되는 것.
이렇게까지 정교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성장과 일자리에 도움이 된다는 근거와 논리 없이, 그것이 무엇이든 '대안'을 제시하고 추진했다는 수준에 머무를 가능성도 크다. 더 비관적으로 생각하면, 이것저것 가릴 정신이 없을 수도 있다.
근거를 생각할 겨를이 없거나 심하면 난맥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전형적인 '책임 회피의 정치' 때문이다. 한국에서 횡행하는 이런 종류의 정치는 지난 8월의 <논평>에서 쓴 그대로 여기 다시 적는다(☞바로 가기).
"정치로 소비되는 (겉보기만) 정책에서는 목표와 가치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무엇을 했다는 '투입'과 '노력', 기껏해야 '최선'으로 충분하다. 좀 더 근본에서는 '책임 회피의 정치'가 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책임지는 정치와 대조되어야 할 터, 정치의 책임은 곧 통치의 책임이자 책무성이니 불필요한 중언부언일 수도 있겠다. 그중에서도 모든 정권과 집권 세력이 져야 할 결정적 책임 한 가지가 경제다."
나름대로 근거가 있든 완전한 책임 회피의 결과든, 아무리 추론해도 큰 경제적 성과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보건의료 산업의 특성상, 그리고 바이오 또는 정보 기반의 보건의료가 가진 경제적 특성상(예를 들어 실물보다는 금융 자본화), 경제성과는 (단언컨대) 국민경제와는 별 상관없는 몇몇 예외 사례에 그칠 것이다. 만에 하나 이익이 있다 하더라도 일부(사람, 기업, 지역, 계층 등등)에게, 그것도 아주 편파적으로.
모든 의료 영리화 정책들은 국정기조의 직접적 산물이라 할 수밖에 없다. 정권 차원에서 국정 책임자들, 대통령과 그 참모들, 그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그룹들이 (보건이나 의료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전체 국정기조를 전환하지 않으면, 사태가 달라질 가능성이 크지 않다. 정책이 힘에 부칠 때마다 모양만 조금씩 바꾸어, 때로 새로운 명분을 보태, 신판을 계속 내놓을 것이다.
같은 말을 공공성이나 공적 가치로 꾸며 '우리'를 믿으라고 말하지 말라. 가장 소박하게 생각해도, 우리 사회 구성원이 이익을 보리라는 약속은 허황하고 당장 환자와 서민에 미칠 위험은 크다. 그렇다고 국정 방향에 영향을 미칠 다른 방도는 없으니, 그때마다 강하고 정확하게 이 비도덕적 정책들을 반대하는 방법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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