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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떠나 아스팔트 밟은 팔당 농민…"이대로 농사짓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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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떠나 아스팔트 밟은 팔당 농민…"이대로 농사짓게 해주세요"

[현장] 4대강 사업으로 터전 잃는 팔당 농민, '생명 살림 기원제' 열어

팔당에서 여의도까지 50여 킬로미터. 영하의 날씨에도 스프레이 파스를 뿌려가며 꼬박 1박 2일을 걸었다. 마침내 '팔당 순례단'이라고 적힌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3~4명 씩 무리지어 여의도 국회 앞에 속속 모여들자, 환영의 박수 소리와 농민가가 울려 퍼졌다.

이들은 수십 년 째 경기도 팔당 일대에서 유기 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들. 원래대로라면 도심의 아스팔트가 아니라 비닐하우스 농가에서 한창 손을 놀려야 할 '천상 농사꾼'들이지만, 이틀을 꼬박 걸어 2010년 예산안을 심의 중인 국회 앞까지 왔다. 정부가 추진 중인 4대강 사업으로 당장 삶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22일 오후 여의도 국회 앞에서는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생명 살림 기원제'가 열렸다. 1박2일의 '평화 순례'의 최종 목적지였다. '팔당 농민 순례단' 주최로 진행된 이번 행사에서, 도보 행진을 마친 22명의 농민들은 정성스레 지어온 쌀과 채소를 제단 위에 올리며 "생명의 강을 죽이지 말라"고 호소했다.

▲ 평화 순례를 마친 팔당 지역 농민들이 '생명 살림 기원제'를 열고 있다. ⓒ프레시안

'평화 순례'조차 막은 경찰…팔당 농민 '따로 또 같이' 행진

여의도까지 오는 길은 험난했다. 영하의 날씨에 칼바람도 매서웠지만, 무엇보다 경찰이 막아섰다.

원래 팔당 지역 농민 22명은 21일 오전 9시 경기도 남양주 팔당댐에서 출발해 국회 앞까지 도보 순례를 벌이기로 했었다. 이미 남양주 경찰과 협의도 했고, 예비 답사도 마쳐 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당일 아침 경찰은 미신고 불법 집회라는 이유로 2개 중대 200여 명을 투입해 순례단을 막아섰다. 경찰과의 실랑이가 이어지자 22명의 농민들은 3~4명 씩 흩어져 각각 국회로 떠났다. '함께'하기로 한 순례가 '따로 또 같이' 진행된 셈이다.

오는 길은 순탄치 않았지만, 마침내 최종 목적지인 국회 앞에서 만난 농민들은 서로 얼싸안고 기쁨을 표했다. 7년 전 귀농해 팔당댐 인근 두물머리에서 농사를 짓는 임인환(45) 씨는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라는 마음으로 이곳까지 왔다"며 "팔당 지역 농민들은 소수고 힘도 부족하지만, 친환경 농사를 짓는 자부심으로 4대강 사업으로부터 팔당을 지켜낼 것"이라고 말했다.

팔당 농민의 하소연…"우리 이대로 농사짓게 해주세요"

▲ 팔당 농민들이 직접 재배한 밀 화분을 선물받은 아이가 환하게 웃고 있다. ⓒ프레시안
4대강 사업을 강행하는 정부를 성토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농지 보존·친환경 농업 사수를 위한 팔당상수원 공동대책위원회'(팔당 공대위) 정상목 전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팔당에 찾아 와 '유기농은 우리 농업의 미래'라며 농민들을 격려했었다"며 "그랬던 이 대통령이 어떻게 갑자기 이럴 수 있나. 자전거 도로를 만든다며 수십 년간 이곳에서 살아온 농민들을 쫒아내려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머니를 따라 순례단에 참여해 도보 행진을 한 김명주(15) 학생은 "팔당 지역에서 생산되는 친환경 유기 농산물을 먹고 자랐다"며 "그 농가들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대통령이 빨리 마음을 바꿔 4대강 사업을 중단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4대강 사업에 항의하는 의미로 19일간 단식을 벌여온 팔당 공대위 유영훈 대표는 이날 단식 농성을 중단했다. 유 대표는 "정부의 4대강 사업을 보면서 답답한 마음에 단식을 시작했는데, 어느덧 19일이 지났다. 많은 국민들의 지지로 그나마 힘을 얻고 있다. 반드시 4대강 사업을 막아내 생명의 농업, 생명의 강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20년 일궈온 유기 농사…"유기농 살리겠다는 약속, 대통령은 잊었나"

경기도 팔당 지역은 정부의 4대강 사업 중 '한강 살리기 사업'의 일환으로 농지 15만 평이 강제 수용을 앞두고 있다. 이에 따라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과 양평군 양서면 일대 유기농가 100여 가구는 올해 안에 농지를 옮겨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는 강제 수용에 대한 보상을 약속했지만, 농민들은 주변 농지의 실거래 가격이 평당 40~50만 원에 육박해 정부의 보상비로는 농지 구입이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한다. 무엇보다 팔당 일대는 농민들이 20여 년간 유기 농업을 가꿔온 곳인데, 농민들이 새로 농지를 구입하더라도 '유기 인증'을 받기까지는 최소 3~5년이나 걸린다.

게다가 이 지역은 1975년 팔당댐이 생기면서 땅을 빼앗긴 농민들이 간신히 하천 부지 점용 허가를 얻어 농사를 지어온 지역이기에, 분노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댐을 짓겠다며 국가에 한 번 빼앗긴 농토를 이번에는 4대강 사업으로 다시 잃게 생긴 것이다. 당장 이곳 농민들은 하천 부지의 점용 허가 기간이 만료되는 10일 후면 '불법 점유자'로 전락할 위기다.

4대강 범대위, 4대강 예산 삭감 위한 '72시간 비상 행동' 돌입

이날 '생명 살림 기원제'는 농민들이 직접 재배한 채소와 쌀을 제단 위에 올리고, 기원문을 낭독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기원제가 모두 끝나자 팔당 농민들은 직접 기른 밀 화분을 시민들에게 나눠주며 4대강 사업 중단을 호소하기도 했다.

앞서 오후 2시에는 '4대강 죽이기 사업 저지와 생명의 강 보전을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4대강 범대위)를 비롯한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며 108배를 벌였다.

▲ 4대강 사업 중단을 기원하며 108배를 벌이고 있는 환경단체 활동가들. ⓒ프레시안
▲ 아빠를 따라 팔당에서 여의도까지 올라온 아이도 고사리 손을 모았다. ⓒ프레시안

일주일 째 국회 앞에서 노숙 농성을 진행 중인 박진섭 4대강 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은 "한나라당은 기어이 4대강 관련 예산을 통과시키려고 하고, 민주당 역시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해) 노력한다고 말은 하지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회의만 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이 추운 날 농민들은 농지를 떠나 도시로 나오고, 환경단체 회원들은 농성을 하고 있는데, 대체 국회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4대강 범대위는 이날 4대강 사업 예산 삭감을 위한 '72시간 비상 행동'에 돌입해 23일과 24일에도 국회 앞에서 촛불 문화제와 자전거 행진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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