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무슨 재미로 사세요?"
"이 나이에 무슨 재미가 있어? 그냥 눈 뜨면 하루 사는 것이지."
"그렇게 사시면 몸이 더 빨리 늙어요. 다른 이유 없이 단지 늙었다는 이유로 생기는 병이 참 많아요. 무릎이나 허리가 아픈 것은 물론이고, 눈은 침침하고 귀도 점점 잘 안 들리고, 치매나 암에 걸릴 확률도 커지거든요. 덜 아프고 싶다면 치료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면 내가 천천히 늙을까도 생각해 보셔야 해요. 확실한 것은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에 대한 아무런 기대가 없다면 그만큼 빨리 늙는다는 거죠."
환자를 살피다 보면 "사는 재미가 하나도 없어요"라고 말하는 시큰둥한 몸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물론 각자 겉으로 드러난 증상은 각기 다르고, 건강에 큰 문제가 없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환자들을 치료할 때면 병의 경중에 관계없이 마치 습기를 잔뜩 머금은 숯에 불을 붙이는 것처럼 만족스러운 상태에 도달하는데 더 긴 시간이 듭니다. 때론 환자가 낫고 싶기는 한 걸까,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지요.
젊은이들에게서도 종종 발견하지만, 이런 현상은 중년 이후, 특히 노년에게서 더 자주 발견하게 됩니다. 탈선이 일어날 말한 일이 없는 한, 정해진 선로를 따라 달리는 열차와 같은 삶의 궤도에 올라선 듯 사는 것이지요. 특등칸과 자유석의 차이가 있어서 그 겉모양새는 다르지만, 젊은 날 각기 다른 색으로 반짝이던 삶의 색채는 점차 무채색으로 비슷해져 갑니다. 그 또한 자연스럽고 멋진 일이지만, 그냥 그렇게 보내기에는 남은 시간이 꽤 지난하고, 때론 고통스럽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럴 때 공자께서는 어찌하셨을까? 공자의 해답은 배우고 공부하며, 이치와 원리를 탐구하는 즐거움으로 살고, 지식의 양을 늘리고, 두뇌의 능력, 생각하는 힘을 유지하여 자신의 존재 가치를 지키는 것이다.
섭공이 자로에게 공자의 인물됨을 물었는데, 자로가 대답하지 않았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어찌 그의 사람됨이 (알지 못하면) 분발하여 먹는 것도 잊고, (깨달으면) 즐거워 근심을 잊어서 늙음이 장차 닥쳐오는 줄도 모른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술이편 18장). (중략)
물론 우리에게는 그런 절박함이 없다. 하지만 늙어서 몸과 마음이 쪼그라들어 나날이 소인이 되어가는 우리에게 그의 말씀은 좋은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발분망식(發憤忘食) 하고 낙이망우(樂而忘憂)한다면 우리도 군자가 될 수 있다!'" <좌파논어>(주대환 지음, 나무나무 펴냄)
물론 우리 모두가 군자가 될 수는 없고, 되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공자처럼 배움에 절박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앞서 인용한 글의 첫 문장에 있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지키는 것’은 온전한 정신과 몸을 유지하고 건강하게 사는데 분명 필요해 보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키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이와 비교하거나 다른 이를 통해서 나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거울삼아 한 인간으로서 삶의 존엄함을 지켜내는 것이지요. 공자에게는 배움이 인생을 관통하는 키워드였습니다. 배움을 통해 자신을 온전히 지켜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배움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나와 나를 둘러싼 세상과의 모든 교류가 아닐까 합니다. 이 교류를 한의학의 정기신(精氣神) 이론을 빌려 나눠 봅니다. 정(精)의 교류는 육체적 감각을 만족시키는 것, 기(氣)의 교류는 감정을 고양시키고 만족시키는 것, 신(神)의 교류는 지음의 관계처럼 존재와 가치의 공유와 같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인간이 맺은 관계라는 것을 가만히 구분해 보면 이 세 가지가 서로 다른 농도로 섞여 있는 경우가 많고, 대체로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정→기→신으로 교류의 무게중심이 이동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여기에 어떤 차등이 있는 것은 아니지요. 사람은 몸과 감정과 혼이 하나로 어우러진 존재니까요.
중요한 것은 어느 순간이 되어 자의든 타의든 이 배움의 속도가 늦춰지면서 몸과 마음과 정신이 점차 쇠락해 간다는 것입니다. 더는 그 사람의 세계가 확장되거나 깊어지지 않기 때문에 현 상태로 머무르거나, 대부분은 쪼그라듭니다. 그리고 "내가 해 봐서 아는데", "네가 아직 뭘 몰라서 그러는데", "인생 별 거 없다"라는 말을 자주 하게 됩니다. 현재를 살고 내일도 살아있겠지만, 그 삶은 과거에 갇히고 마는 것이지요.
이처럼 그 사람의 시간이 배움을 늦추고 과거에 머물러 있으면 사람은 빠르게 늙어갑니다. 몸은 물론이고 뇌 또한 동어반복의 일상에서 추동력을 잃게 되지요. 그 속에서 본인이 타고난 유전적 약점과 그 동안 살아오면서 무리했던 부분이 더해져 다양한 형태의 병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치료와 약물이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조금 더 건강하고 나은 삶을 원한다면 다시 새로운 내용들로 삶의 페이지를 채우는 노력 또한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이지만, 호기심을 잃으면 고양이는 더 이상 고양이가 아니지요. 우리의 삶 또한 배움을 그친다면 호기심을 잃은 고양이 신세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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