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에서 실종된 사우디아라비아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피살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터키 언론 <예니샤파크>는 카슈끄지가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살해되던 상황이 녹음된 오디오 파일을 확인했다고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카슈끄지는 지난 2일 결혼 관련 서류를 발급받기 위해 사우디 총영관으로 들어간 뒤 곧바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연관된 요원 15명에게 붙잡혔다. 이들은 곧바로 영사 집무실에서 카슈끄지의 손가락을 자르는 등 잔혹한 고문을 가하고 7분 만에 그를 살해했다.
이 매체는 살해 현장에 있던 무함마드 알 오타이비 총영사가 "(내 집무실) 밖에서 하라. 당신들이 나를 곤경에 몰아넣고 있다"고 항의하자 한 암살 요원이 "사우디로 돌아갔을 때 살아남고 싶으면 조용히 하라"고 위협했다는 내용도 전했다.
중동 매체인 <미들이스트아이>는 오디오 파일을 직접 들었다는 소식통을 인용해 "카슈끄지는 총영사 집무실에 있다가 옆방 서재로 끌려간 뒤 신문 절차 없이 바로 참수됐다"고 보도했다.
암살 요원의 일원인 법의학자 알투바이지는 카슈끄지의 시신을 훼손하며 다른 요원들에게 "나는 시체를 해부할 때 음악을 듣는다"며 "당신들도 노래를 들으면서 해봐"라고 권유하는 음성도 확인됐다고 이 매체는 보도했다.
이 같은 보도들은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암살 요원들을 영사관으로 보내 자신과 사우디 정부에 비판적인 글을 써온 카슈끄지를 살해했다는 의혹을 뒷받침한다. 반면 그동안 '카슈끄지가 살아서 총영사관을 나갔으며 그의 실종과 무관하다'고 주장해 온 사우디 측은 더욱 궁지에 몰렸다.
카슈끄지 실종 사건 수사의 키를 쥔 터키 경찰은 사우디 총영사관 수색에 이어 17일엔 영사관저에 진입해 수색을 벌였다. 카슈끄지가 총영사관에 들어간 지 2시간 뒤 외교번호를 단 검은색 밴 등 차량 여러대가 영사관저로 이동하는 장면이 잡힌 감시 카메라 영상을 근거로, 터키 수사당국은 암살 요원들이 카슈끄지 살해한 후 시신을 영사관저로 옮겨 매장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앞서 <미들이스트아이>도 지난 10일 터키 소식통을 인용해 카슈끄지가 총영사관에서 살해된 후 영사관저 정원에 매장됐다고 보도했다.
사우디 왕실 배후설을 방증하는 보도들이 쏟아지면서 연일 사우디 정부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도 불똥이 튀고 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음성파일이 존재한다면 사본을 보내달라고 터키 정부에 요청했다며 "그것이 존재하는지 아직 확신하지 못한다"고 애매한 태도를 보였다.
사우디와 터키 방문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수사 결과가 신속히 공개되기를 바란다"면서도 카슈끄지의 생사 여부에 대해선 "논의하지 않았다"고 즉답을 피했다.
국제사회의 비판 여론이 일제히 사우디 정부로 집중되는 가운데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사우디 왕실을 감싸는 이유는 미국의 중동 정책과 무관치 않다. 중동의 핵심 동맹국인 사우디와의 관계를 고려해 미국은 카슈끄지 사건이 서둘러 종결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당장 미국은 다음달 재개되는 이란산 원유 제재를 앞두고 사우디와의 동맹 관계를 관리해 국제유가에 미칠 충격을 최소화할 필요성이 있다. 폼페이오 장관의 사우디 방문은 이를 논의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뉴욕타임스>는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7일 폭스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카슈끄지 사건 조사를 통해 일이 잘 해결되기를 바란다"면서 사우디가 미국의 중동정책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언급하며 "사우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무기 구매 분야에서도 사우디는 미국의 최대 고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사우디를 방문해 1100억 달러 규모의 무기 판매 계약을 성사시켰다.
이 외에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폴 월드먼은 트럼프 대통령이 사적 금전관계로 사우디와 얽혀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그와 사우디의 사업 관계가 더욱 활발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부동산 사업에 사우디가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지난 2015년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유세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 나는 그들 모두와 잘 지낸다. 그들은 내 아파트를 사준다. 4000만 달러, 5000만 달러를 쓴다"며 "나는 그들을 아주 많이 좋아한다"고 했다.
금전 관계 의혹이 불거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공식적으로 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금전적인 이해관계가 없다"며 "내가 금전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가짜뉴스"라고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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