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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만들다 해고' 12년째 김경봉·임재춘의 ‘골목 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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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만들다 해고' 12년째 김경봉·임재춘의 ‘골목 토크’

“청와대 앞 1인 시위 자유롭게 됐지만 그뿐…문재인 정권은 여전히 침묵”

정리해고에 맞서 12년째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는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 김경봉(콜트콜텍 노동자밴드 리더)씨와 해고 노동자 농성일기 ‘우리에겐 내일이 있다’ 저자 임재춘씨가 책방 <소년의 서>가 마련한 북토크 초청 인사로 15일 광주에 왔다.

이날 저녁 7시부터 시작된 북 토크는 예상 밖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책방 앞 공터에서 ‘골목 토크’로 진행됐다.

<소년의 서> 임인자 대표(연극 연출가)의 사회로 진행된 토크는 쌀쌀한 저녁 찬 기운에도 불구하고 열띤 분위기 속에서 2시간 동안 이어졌다.


▲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 김경봉씨(사진 왼쪽 첫번째), 임재춘씨, 임인자씨(사진 맨 오른쪽)가 15일 저녁 <소년의 서> 앞에서 '골목토크'를 진행하고 있다 ⓒ최성욱 다큐 감독

콜트콜텍 정리해고 사태는 전기 기타를 주로 생산하던 콜트악기가 2007년 돌연 1백여명의 노동자를 해고하면서 빚어졌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사태였다. 경쟁기업인 세고비아와 영창악기가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세계 기타 시장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경영실적이 양호했던 회사가 다름아닌 경영상의 이유로 직원들을 무더기로 해고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 사장이 동일한, 통기타를 주로 만들던 콜텍도 경영상 이유로 공장 폐쇄를 단행했다.

콜텍의 직장 폐쇄 또한 갑작스럽게 이뤄졌다. 출근버스 기사조차 사업장 폐쇄를 모르고 그날 아침 닫혀 진 공장 문 앞에 이르러서야 폐쇄 사실을 알았을 정도다. 이후 콜트콜텍이 만들던 기타 제조는 중국과 인도네시아 공장으로 넘어갔다.

노동자들은 부당한 정리해고라며 회사를 상대로 무효 소송을 냈지만 법정 소송은 고법과 대법원을 오가며 지루한 공방을 벌였지만 아직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논란거리로 남아있다.

대법원은 콜트악기의 정리해고는 위법으로, 콜텍의 정리해고는 적법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콜트 노동자들 또한 부당 해고라는 판결을 받고도 사업장 폐쇄를 이유로 복직의 길은 열리지 않았다.

이같은 대법원의 석연찮은 판결에 대해 해고 노동자들은 “양승태 사법 농단에 걸려든 사례이기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골목토크가 열린 15일 까지 무려 4,275일의 투쟁. 그 세월에 담긴 해고 노동자들의 고통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겹다.

임재춘씨는 "나는 회사와 집만 왔다 갔다 하는 우물안 개구리였다. 투쟁을 하고 연대를 하면서 모순 투성이 세상에 눈을 뜨게 됐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딸들도 지금은 아빠가 맞다는 것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녀들의 공감이 임재춘씨를 자유롭게 할 수는 없다. 오랜 실직으로 빛 더미에 쌓여 충분한 배움의 길을 열어주지 못하고 가정을 황폐하게 만든 가장의 상심을 덜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임재춘씨는 “우리들의 싸움은 정당하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살아갈 훗날의 세상을 위해서라도 이 투쟁을 그만둘 수 없다”고 말한다.

‘콜트콜텍’에 대한 김경봉씨의 기억도 참담하다.

김경봉씨는 “우리는 노예나 다름이 없었다”고 그 시절을 자조하며 "창문이 있으면 딴 생각을 한다고 작업장에 창문도 없었다. 그런 곳에서도 군 말없이 일했다. 세계 명품 기타를 만든다는 자부심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출근했더니 공장 문이 닫혀 있었다. 출근 버스 기사들도 몰랐었다. 아침에 출근해서 셔틀버스 타고 공장에 내리니, 공장 문이 닫혀 있었다. 정말 악덕 고용주였다“ 라고 분노했다.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중인 김경봉씨 ⓒ김경봉 페이스북

“민주주의 근간을 뒤흔든 사법농단. 노동자의 삶과 가정 파괴한 사법 살인, 재판 거래에 의한 콜트악기 콜텍 정리해고 원천무효. 청와대가 책임져라.”

금속노조 콜텍지회 조합원 김경봉씨가 매일 아침 8시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며 절박하게 외치는 대자보의 문구다.

그러나 아직 청와대는 침묵하고 있다. 이 침묵이 김경봉씨를 더욱 절망에 빠트린다.

김경봉씨는 “문재인 정권 출범 후 한 가지 좋아진 게 있는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뿐이다. 그곳에서 오래도록 1인 시위를 하고 있지만 아직은 그 누구도 ‘무슨 일이냐’고 질문 한번 던진 적이 없다”고 말했다.

격한 분노가 가슴에 켜켜이 쌓여있을 법한 김경봉 씨는 그러나 “사회적 연대 없이 우리의 싸움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고통을 받는 소수에 대한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며 숙연하게 말을 마쳤다.

누구는 깊게 고개를 숙이고, 또 누구는 눈시울을 훔치며 두 사람의 가을 밤 ‘골목 토크’는 그렇게 마무리됐다.

그들이 다시 ‘기타를 만들 수 있는 날’이 빨리 올 수 있게 되기를 함께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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