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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고 배우는 것, 정말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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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고 배우는 것, 정말 행복합니다"

<한글날 특집> 충남청소년교육문화원 성인문해반 늦깍이 학생들

▲ 충남청소년교육문화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성인문해반 학생들 /이숙종 기자


"글을 읽을 줄 알게 되자 공부에 욕심이 나네요. 배움이 이렇게 행복한 일인 줄 몰랐습니다"

572돌 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오전 10시. 충남 천안시에 위치한 충남학생교육문화원 3층에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하나 둘씩 모여 들었다. 배움의 시기를 놓친 어르신들을 위해 개설한 성인문해반 수업을 듣기 위해서다. 굽은 허리에 책가방을 멘 백발의 노인의 모습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느릿한 발걸음이지만 지각한 학생은 한명도 없었다.

이날 수업을 듣는 학생은 15명 남짓. 버스를 두번씩이나 갈아타면서도 결석 한 번 하지 않았다는 김길자씨(70)와 사실 국민학교 졸업도 하지 못했지만 자식들이 창피해 할까봐 중학교를 졸업했다고 거짓말을 했었다던 박판임씨(65). 아직도 남편이 공부하러 다니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해 섭섭하다는 김홍녀씨(67). 이들 세명의 학생은 이 곳에서도 소문난 개근생들이다.

세 사람이 성인문해반을 찾게 된 경로는 제각각이지만 그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배우고 싶다'는 의지다.

학업을 해야할 시기에는 먹고 사는 것이 바빴었다. 또 여자라는 이유로 학업의 기회를 오빠와 남동생에게 양보해야만 했던 시절이었다. 성인문해반 학생들은 사는 곳은 달랐지만 삶은 모두가 비슷했다.

이곳에 모인 학생들은 성인문해반 중에서도 고학력 학생들이다. 한글읽기 등 기초 문해과정을 거쳐 이제 중등과정에 도전하고 있다.

첫 수업은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국어수업이었다. "오늘 배울 페이지를 읽어 보실 분" 강사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박판임씨가 손을 들었다.

박씨는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책을 짚어가면서 또박또박 글을 읽어 내려갔다. 한 글자도 틀리지 않았다. 박씨의 눈빛은 그 어느 젊은이 보다 반짝였다.

박씨는 "예전에는 글을 읽을려면 두려움이 많았다"며 "배우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이곳저곳 알아보다가 충남교육문화원까지 오게됐다. 어린시절에는 공장에서 청춘을 바쳤다. 이 곳에서 익히고 배워 이제 중등과정에 들어가는데 배움이 깊어 질수록 행복이 쌓여간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박씨의 이야기를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김홍녀씨의 눈가에도 이내 눈물이 맺혔다.

김씨는 "어린시절 집안에서 여자가 공부하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해 장남인 오빠만 공부 할 수 있었다"며 "공부하지 못한 서러움은 세월이 지나면서 잊혀지기는커녕 더 간절해졌다. 문해반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그 시절의 서러움을 보상받는 기분이다. 비록 나이는 많지만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학업의 강한 의지를 보였다.

▲ 늦깍이 학생이지만 배우는 것이 행복하다는 박판임씨(사진 왼쪽)와 김홍녀씨 /이숙종 기자


한글이 서툴고 늦은 배움이 부끄러울때가 없었느냐고 묻자 우문현답으로 돌아왔다.

김길자씨는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수십년 식당을 운영하며 자식들을 다 올바르게 길러냈다. 생업을 이어가고 자식들을 키우느라 어쩔수 없었던 것인데 부끄럽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오히려 살면서 책을 읽어서는 배울 수 없는 지혜가 쌓였을 것"이라며 "자식들도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적극적으로 응원해 준다"고 말했다.

삶의 무게는 이들의 세월을 오랜시간 잡고 있다가 느지막한 나이가 되서야 배움의 길을 허락했다. 늦깍이 학생들은 '이제야 찾아온 배움의 길에서 삶의 행복을 느낀다'며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국어 수업이 끝나갈 무렵 손명진 강사는 한글날을 맞아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에는 가슴 한구석을 뭉클하게 만드는 글귀가 있다"며 세종대왕의 훈민정흠 서문의 글을 소개했다.

훈민정음 서문

우리나라의 말과 소리가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바가 있어도
그 뜻을 펴지 못하는 이가 많다.
내가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노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 나날이 쓰기에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한글을 익히고 늦은 배움의 날개를 펼치는 성인문해반 학생들은 한 목소리로 훈민정음 서문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다 읽고 난 학생들은 '이보다 더 따스한 격려와 응원은 없을 것'이라며 환한미소를 보였다.

▲성인문해반 학생이 쓴 시 /이숙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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