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적! 우리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일을 비현실적이라 한다. 앞산이 안보이고, 눈뜨기도 숨쉬기도 힘들던 미세먼지의 잔인한 기억 위에 펼쳐지는 요즘의 가을 하늘은 지극히 비현실적이다. 불과 1년 전 전쟁의 두려움이 먹구름처럼 밀려오던 한반도, 그 땅에서도 가장 범접할 수 없었던 백두산 천지에서 손잡은 남북정상의 모습도 비현실적 현실이다.
가장 안정적이라는 공무원이 평생 연봉을 한 푼도 안 쓰고 저금해야 하는 돈이 강남의 아파트 한 채 값이라는 비참한 현실은 비현실적이다. 그런 강남3구에 사는 사람 셋 중 둘은 자기 집이 아니라 전세나 월세로 살고 있다는 사실도 우리의 상식을 넘어서는 비현실적 현실이다. 원전이 안전하고 깨끗하며 태양광 발전이 환경을 파괴한다는 억지가 우리 사회에서 공공연하게 주장되고 그렇게 믿는 사람이 많은 것도 참 비현실적이다.
영원히 도전하고 끝없이 전진할 것 같은 불패의 58개띠가 올해 환갑을 맞았고 평일 점심시간에 등산복을 입고 더치페이를 하는 모습 또한 지극히 비현실적 현실이다. 진보와 민주화의 상징이라 스스로 자부하고 또한 그것이 유일한 자산인 86세대 정치인들이 실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과거 속에 살고 있는 보수라는 비판이 날로 늘어나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서울에서 폐교되는 학교가 늘고, 곧 대학 정원이 고등학교 졸업생보다 많아진다는데도 사교육시장이 날로 번창하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20세기 자유무역의 보루이고 세계경찰을 자부하던 미국이 쇄국정책을 펼치고, 죽의 장막 중국이 자유무역과 생태문명국가를 표방하며 공공연하게 2050년 세계 패권 국가를 지향하는 현실도 비현실적이다. 이 정도면 비현실과 현실의 경계는 이미 무너진 것이 아닌가?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비현실인지, 그 판단의 기준은 무엇인지 정신 바싹 차리고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20세기 글로벌 스탠더드, 미국의 방식이 붕괴되고 있다. 미국 스스로 글로벌 스탠더드를 파괴하고 있다. 더 나아가 산업혁명 이후 200년 간 영국과 미국이 주도한 석탄과 석유에 의존한 화석에너지 문명도 종착역에 다다르고 있다.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에서 촉발된 세계적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 소비위축, 규제강화라는 새로운 흐름을 '뉴노멀'이라 한다. 지금까지 너무나 당연했던 비현실이 현실이 되고, 비정상이 정상이 되고 있다. 더불어 박정희 시대가 남긴 고도성장 신화의 긴 그림자도 걷히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대한민국의 구석구석에서 명확히 보이지는 않지만 무수히 많은 전환의 맹아들이 꿈틀거리고 고개를 들고 있다.
미래를 잊고 오늘만 사는 사람들. 우리! 이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의 '정상'을 상상하고 창조해야 한다. 발칙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비현실이라 치부했던 것들을 현실로 바꾸어 보자. 누군가 미래 예측의 최선의 방법은 그것을 창조하는 것이라 했다. 지금 우리가, 우리가 아닌 우리 아이들이 간절히 원하는 세상을 상상하고 만들어가야 한다. 유럽의 변방 섬나라 영국이, 생존을 위해 전 세계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만든 250년도 안된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랬듯이….
미래는 자연자본, 특히 재생에너지와 같이 올 것이다. 에너지 전환은 문명의 전환이다. 원자력 발전소를 머리에 이고, 석탄화력 발전소를 어깨에 걸고, 거대한 고압선으로 온몸을 치렁치렁 감고, 미세먼지와 폭염 속 화려한 마천루 불빛 속으로 자동차를 몰고 돌진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환은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피해갈 수 없다면 앞장서 맞이하자. 태양이 미래다.
미래는 지역, 농촌과도 같이 올 것이다. 고령화 사회에서 조기 은퇴한 사람들과 그 자녀들의 희망은 특별·광역시가 아닌 지방중소도시와 농촌에서 열릴 것이다. 미래 부의 원천인 재생에너지를 필두로 자연자본은 지역에 분산되어 있다. 더불어 지역의 사회주택, 공공의료, 공교육시스템을 대대적으로 혁신하고, 생활경제를 토대로 지역 순환 경제망을 구축해야 한다. 지역 생활 경제망 안에서 안정적인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다. 전환의 시대, 사고의 전환이 먼저다. 필자는 2020년 사무실 식구들 모두 참여하는 워크숍을 백두산 천지에서 개최할 계획이다. 워크숍의 주제는 당연히 전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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