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해준 보험 설계사는 친절하게 보험 상품들을 설명해줬다. 그러나 장애가 있느냐는 보험 설계사의 질문에 문 씨가 '장애 1급'이라고 대답하자, 설계사는 대뜸 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문 씨는 "암 보험과 뇌병변이 무슨 상관이냐"며 항의했지만 "회사의 규칙 상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이후 문 씨는 다른 보험사에 몇 차례 더 보험 상담을 받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사례2. 정신 질환이 있는 27살 아들을 둔 이모 씨는 지금도 보험 생각만 하면 분통이 터진다. 이 씨의 아들은 대학교 1학년 때 갑자기 정신분열 증세가 생겼다. 아들의 상태를 눈치 챈 이 씨는 아들을 병원으로 데려갔고, 의사는 몇 달간의 입원 치료를 제안했다.
6개월 동안의 입원비는 엄청났다. 마침 이 씨는 아들 명의로 들어놓은 종신 보험을 생각해 냈다. 그 길로 S생명에 찾아가 상담을 했지만, 아들의 병이 정신과 질환임을 안 담당 직원은 "정신 질환은 안된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들어놓았던 보험조차 그 자리에서 해지됐다. 이 씨는 "당시 나는 그것이 차별인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보험 가입에 있어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험에 가입하려다 차별을 겪어 온 장애인과 그 가족들은 "장애가 있다고 보험 가입조차 제한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8일 오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장애인 보험 차별 금지를 위한 증언 대회'에서다.
▲ 보험 가입 과정에서 차별을 경험한 장애인 가족들이 차별 사례를 증언하고 있다. ⓒ프레시안 |
"심신상실자 보험 가입 제한한 상법 82조, 장애인차별금지법과 배치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이날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된 지 1년 8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은 계속되고 있으며, 장애인차별금지법와 상충하는 각종 법률도 수정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애인의 보험 가입에 있어 문제가 된 것은 바로 보험 및 금융 상품의 가입 범위를 명시한 상법 제732조. 이 조항은 "15세 미만인 자, 심신상실자 또는 심신박약자의 사망을 보험 사고로 한 보험 계약은 무효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문제는 보험사들이 이 조항에서 언급한 '심신상실자', '심신박약자'를 정신 장애인으로 간주해, 정신 장애인의 생명 보험 가입을 막고 있다는 점이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효정 활동가는 "심신상실자·심신박약자가 '의사 능력과 판단력이 불완전한 자'로 해석돼, 생명 보험 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보험 가입이 불가능한 실정이다"고 말했다.
또한, 이 조항은 지난 2007년 제정된 '장애인 차별 금지 및 권리 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과 배치돼 논란을 낳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17조는 "금융 상품 및 서비스의 제공자는 보험 가입 등 각종 금융 상품과 서비스 제공에 있어서 정당한 사유 없이 제한·배제·분리·거부하여서는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날 정신 장애인 아들을 둔 양모 씨는 "온갖 보험사에 문의할 때마다 '(복용하는)약 때문에 안 된다'며 퇴짜를 놓는다"라며 "아들은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데, 상해 보험 가입이 아들의 병과 무슨 상관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역시 정신 장애인 아들을 둔 이모 씨는 "장애인이야말로 탄탄한 사회 보장 제도가 가장 절실한 사람들"이라며 "국가에서 보장받지 못한 것을 내 돈 들여 하겠다는데, 보험 가입조차 거부되면 무엇을 믿고 살아야 하나"고 호소했다.
뇌병변 장애인, 15년 운전했지만 '운전자 보험' 못 들기도
상법 732조가 제한한 것은 심신상실자 및 심신박약자에 대한 보험이지만, 실제 보험 가입에 있어서의 차별은 장애의 종류와 경도에 상관없이 전 장애에 걸쳐 발생하는 것을 드러났다.
이날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가 공개한 사례를 보면, 한 시각 장애인은 상해 보험 가입을 거부당했으며, 경미한 발달 장애 아동의 상해 보험 가입이 거부된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운전 면허가 있는 한 뇌변병 장애인은 15년 동안 자동차 운전을 해왔지만, 장애를 이유로 운전자 보험에 들 수 없었다. 이 장애인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고서야 보험에 가입할 수 있었다.
가까스로 보험에 가입했지만, 비장애인과 비교해 보험 혜택이 거의 없거나, 더 높은 보험료를 지불해야 하는 사례도 많았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특히 발달 장애아를 둔 부모의 경우, 보험 금액에 대한 차별이 많지만 보험 가입을 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효정 활동가는 "상법 732조가 제정된 이후 46년 동안, 장애인 당사자와 그 가족들은 관행화된 차별 앞에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며 "이러한 차별은 정신 장애인 뿐 아니라 전 장애, 전 보험에 걸쳐 적용돼 장애인들은 계약서 작성 단계조차 밟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이 같은 피해를 구제해 달라는 장애인 29명의 진정서를 모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했다. 한편, 이들은 앞으로 상법 732조의 삭제를 요구하는 대정부 활동과 행정 소송을 추진할 계획이다.
▲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장애인에 대한 보험사의 차별을 구제해 달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했다. ⓒ프레시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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