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였던 김지은입니다. 현재는 안희정 성폭력 피해 생존자입니다. 불편하실지 모르지만 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한 김지은 씨가 20일 <노동과세계>에 기고글을 보내 "노동자이고 싶다"는 심경을 밝혔다. (☞전문 보기)
김 씨는 "저는 더 이상 노동자 김지은이 아니다.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고 아무런 수입도 벌지 못한다"며 "고소 이후 반년 넘게 재판에만 임하고 있다. 재판 중에 노동자로서 성실히 일했던 제 인생은 모두가 가해자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데 좋은 근거로 사용됐다. 피해자답지 않게 열심히 일을 해왔다는 이유였다"고 했다.
그는 "정부 부처의 계약직 공무원이었다"며 "계약연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밖에 모른다고 할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고 했다. 또 "학위를 따야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조언에 학자금 대출을 받아 대학원을 졸업했다"며 "금융 채무자이자, 병환의 가족을 부양하는 실질적 가장이었으며, 성과로 평가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였다"고 했다.
안희정 선거 캠프 근무 시절에 대해선 "캠프 안의 분위기는 기대했던 것과 달다. 모두가 후보 앞에서는 경직됐다"고 회고했다. 그는 "후보의 말에 대들지 말고 심기를 잘 살펴야한다는 이야기를 선배들로부터 수없이 들었다"며 "정치권에 온 이상 한번 눈 밖에 나면 다시는 어느 직장도 쉽게 잡지 못한다는 말도 늘 함께였다"고 했다.
그는 가장 힘들었던 일에 대해 '안희정 지사의 이중성'이라고 했다. 그는 "민주주의자이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지도자라는 이미지와 실제는 달랐다"며 "안희정의 수행비서는 새벽에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하는 것이 일상이었고, 휴일은 거의 대부분 보장 받지 못했다"고 했다. "메시지에 답이 잠깐이라도 늦으면 호된 꾸중을 들어야했고, 24시간 자신의 전화 착신, 아들과의 요트 강습 예약, 개인 기호품 구매, 안희정 부부가 음주했을 때 개인 차량 대리운전 등 일반 노동자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주어졌다"고도 했다.
이어 "거절의 의사를 분명히 밝혔음에도 성폭력 피해를 당했고, 다음날 지사가 바로 사과 하는 것을 듣고 잊으려 했습니다. 아니 잊어야만 했다"며 "여러 차례 피해가 이어졌지만 더 주변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았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눈밖에 벗어나지 않도록 더 일에 집중하는 것뿐이었다"며 "노동권 침해와 성폭력 범죄 안에 갇혀 살았다"고 했다.
김 씨는 위력의 존재와 행사는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를 비판했다.
앞서 지난 달 14일 1심 재판부는 안 전 지사가 유력 정치인이라는 점을 들어 위력의 존재 자체는 인정했지만 "위력으로 존재감을 과시해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억압했다고 보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 씨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지금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느끼고 있는 일상적 위력은 눈에 보이는 폭행과 협박뿐만이 아니"라며 "침묵과 눈빛만으로도 상대를 제압하는 것, 달갑지 않은 농담을 듣는 것, 회식자리에서의 추행도 노동자들이 겪는 위력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수년간의 제 노력은 일반적인 노동자의 삶으로 인정받기 이전에 피해자다움과 배치되는 인생으로 평가 받았다"며 "피해자다운 것이 업무를 외면하고 현실을 부정하며 사는 것인가. 하루하루의 업무가 절실했던 제가 당장 관두고 다른 일을 찾을 수 있었을까"라고 했다.
김 씨는 마지막으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부당한 지시를 하지 않는 상사와 함께하고 싶고, 어려움을 자신의 일처럼 도와주는 동료들과 일하고 싶다"며 "어쩌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언젠가 꼭 다시 불리고 싶다. 노동자 김지은이고 싶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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