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말썽이 난 원격의료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주장(☞관련 기사 : 복지부 "의사-환자 원격의료 허용 의료법 개정 추진").
"원칙적으로 현행법상 허용되고 있는 의사-의료인 간 원격협진의 활성화를 중점적으로 추진해 의료접근성과 효과성 강화를 모색하고, 예외적으로 의료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격오지 군부대 장병, 원양선박 선원, 교정시설 재소자, 도서·벽지 주민 등 대면진료가 불가능하거나 매우 곤란한 경우에 국한해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도입 방안을 검토하겠다."
또 다른 구설수, 은산분리 원칙(대통령 공약이기도 하다)을 훼손하면서까지 인터넷전문은행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도 같이 보자(☞관련 기사 : 文 대통령, 은산분리 완화 시사 "인터넷전문銀 규제혁신, 고인 저수지 물꼬 트는 일").
"혁신기술과 자본을 가진 IT 기업의 참여는 인터넷전문은행 활성화에 기여하고 기술융합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이를 통해 새로운 금융상품과 서비스 개발이 가속화될 것. (…) 이는 국민 금융 편익을 더욱 확대할 뿐 아니라 인터넷전문은행, 나아가 IT·R&D(연구개발)·핀테크 연관 산업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것."
비슷한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규제프리존'이 그렇고, 영리병원도 마찬가지다. 차량공유 서비스를 포함한 플랫폼 경제나 인공지능에 대한 열광도 다를 바 없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 전체가 비슷하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 시대 경제와 사회를 지배하는 '담론'들의 특성, 특히 수단과 목표의 전도 현상에 주목한다. '전도(顚倒)'란 아래위가 뒤섞였다는 것을 뜻하는바, 숱한 정책에서 수단과 목적이 뒤바뀐 상태를 가리킨다.
정부의 사회적 실천, 즉 정책은 기본 요소의 하나로 무엇을 이루거나 어디에 기여한다는 '목적'과 '가치'를 포함해야 하지만, 지금 이를 찾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새로운 기술이나 지식 그 자체가 권력으로 등장하고, 사람과 사회에 미치는 의미는 사라지고 없기 때문이다.
원격의료가 이런 전도 현상 또는 '견강부회'의 전형이다. 의료접근성, 효과성, 의료사각지대 해소 등이 앞서 말한 목적 또는 가치라 할 때, 정부와 정책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게 정상이다.
게다가 의료 접근성과 사각지대해소는 과거사가 아니라 지금 과제가 아닌가. 점점 인구가 줄고 '시장' 자체가 붕괴하는 비수도권 농촌 지역, 진작부터 의료 이용에 큰 어려움을 겪던 섬과 오지, 경제적 장애 때문에 보건의료 이용을 잘할 수 없는 빈곤층의 보건의료 수요를 해결하는 것이 왜 중요하지 않겠는가.
정상이면 당연한 일,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정부가 의료 접근성을 해결하려는 종합 계획을 수립하고 노력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종합계획이란, 예를 들어 공공보건의료 강화, 의료전달체계 정비, 일차의료 강화, 취약지 보건의료인력 확충, 응급의료체계 개선 등이 포함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와중에 원격의료가 등장했다. 어떻게든 원격의료를 다시 살려내려니 비로소 접근성과 의료사각지대를 불러내는 과정이다. 보건복지부가 갑자기 군부대 장병, 원양선박 선원, 교정시설 재소자까지 걱정한다니, 다행이지만 진심은 영 의심스럽다. 경과와 경로가 이러니, 무엇이 목적이고 무엇이 수단인지 잘 알 수 없다.
목적과 수단이 정상이면, 원격의료는 의료 접근성과 의료사각지대를 해결하는 여러 방법 중 한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아주 부분적이고 보조적인 수단. 보건의료 접근성과 사각지대를 해소하려는 전체 계획 속에 제자리를 잡을 때, 비로소 원격의료가 제 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 그래야 그 기술도 살아날 수 있다는 말을 보탠다.
인터넷전문은행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목적과 가치는 어디로 가고, 인터넷과 핀테크라는 지식과 기술 '권력'만 두드러진다. '새로운 상품', '편익', '서비스', '일자리'와 같은 모호한 말로 뭉뚱그릴 일이 아니다. 한국이 정보통신 강국이라는데, 어디다 쓸 수 있나, 찾다가 발견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손에 잡힐 듯한 수단과 비교하면 목적은 참 모호하다. 신용이 모자라는 개인이나 소상공인, 벤처기업에 대출을 더 쉽게 많이 하자는 것인가? 편리하게 계좌를 더 빨리 개설하고 이체를 더 빨리하자는 것인가? 더 많은 예금을 유치해 대출 여력을 늘리자는 것인가? 외국까지 진출해 금융시장을 넓히자는 소리인가?
궁극적인 결과와 목표로, 사회와 소비자에게 어떤 편익이 어떻게 달라지는가? 무슨 성장을? 어디에서 어떤 일자리가 생기나? 왜 이렇게 힘을 다해 추진하는지 궁금한데, 이해하기도 어렵고 설명도 없으니 답답하다.
또 다른 예. 플랫폼 경제가 살길이라고 난리지만, 이를 확대하는 목적과 가치를 차분하게 묻는 일은 늘 묻힌다. 혁신, 인터넷, 4차 산업혁명, 빅데이터, P2P와 같은 기술과 지식에 대한 모호한 은유와 상징만 난무할 뿐, 이렇고 이런 경로로 어떤 목적과 가치를 달성할 수 있다는 합리적 설명은 좀처럼 찾기 어렵다.
거대 인터넷 은행이나 알리바바와 같은 초거대 플랫폼을 육성한다고 끝이 아니다. 도대체 왜 플랫폼 경제를 키워야 하는가? 어디서 어떤 부가가치가 더 생기나? 경제 규모가 더 커지는 것이 아니면 소비자의 편익은 무엇이 얼마나 나아지는가? 그동안 일자리와 소득의 원천 노릇을 했던 유통과 소상공인, 자영자는 어떻게 되는가?
오해를 피하고자 정책의 목적과 가치가 무엇을 뜻하는지 다시 짚는다. 우리는 경제와 산업을 비롯한 한 사회의 물적 토대를 무시하지 않는다. 물적 토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연금과 복지, 문재인 케어, 치매 관리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는 소득과 일자리 또한 당연히 중요한 가치다.
다만, 소득과 일자리 정책이라 해도 수단과 목적을 뒤집는 것은 곤란하다. 수단이 목적을 앞서서도 안 된다. 인터넷이라고 4차 산업혁명이라고 모든 것이 다 저절로 이루어질 리 없다. 의료기기 규제완화나 인터넷전문은행을 정해 놓고 소득과 일자리 효과를 갖다 붙이면 억지 논리에다 설득력도 별로 없게 되는 이유다.
목적과 수단이 바뀔 뿐 아니라 때로 목적이 무엇인지 모호한 일은 왜 일어나는가? 우리는 원격의료나 인터넷은행, 나아가 혁신성장의 이름 아래 추진되는 대부분 정책이 사실 정책이 아니라 정치라고 판단한다. 정치로 소비되는 (겉보기만) 정책에서는 목표와 가치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무엇을 했다는 '투입'과 '노력', 기껏해야 '최선'으로 충분하다.
좀 더 근본에서는 '책임 회피의 정치'가 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책임지는 정치와 대조되어야 할 터, 정치의 책임은 곧 통치의 책임이자 책무성이니 불필요한 중언부언일 수도 있겠다. 그중에서도 모든 정권과 집권 세력이 져야 할 결정적 책임 한 가지가 경제다.
한국적 상황도 있으니, 1990년대 말 경제위기 이후, 경제에 대한 국가의 책무성은 극적으로 강화되었다. 초유의 난관을 만난 경제와 성장에 대한 대안과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모든 정치세력이 감당해야 할 책임이자 책무성이 된 것이다. 경제에 대한 대안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정치세력을 대중과 유권자, 국민이 무엇이라 할 것인지 생각해보라.
문제는 새롭고도 권위 있는 대안과 비전이 정립되지 못한 채 모든 정권이 책임 회피의 정치를 벗어나지 못한 데 있다. “우리는 이런 대안을 제시했으니 책임을 다했고, 잘 안 된 것은 다른 탓”이라면서 책임을 떠넘기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예를 들어 더 완전한 규제완화!).
새로운 성장동력, 녹색성장, 창조경제, 혁신성장이 하나도 다르지 않다. 사정이 이러니 경제 정책은 정책으로서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늘 책임 회피의 정치에 동원되는 중이다. 공허하되 선동이 되기 쉽다.
지금 조금이라도 책임 회피의 정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정책이 이런 정치와 분리되어야 하지 않을까? 정직하지 않는 정치로부터 떨어지려면, 지금 거론되는 모든 정책이 목적과 가치를 회복하는 일이 긴요하다. 원격의료가 아니라 의료 접근성을, 새로운 의료기기가 아니라 더 나은 진단과 치료를, 핀테크보다는 개인과 기업에 더 나은 금융 서비스를.
수단과 방법은 그다음에야 목적과 목표에 맞추어 동원하는 법. 목적으로 소득과 일자리가 중요하면, 또는 불평등이 중요한 것이면, 이를 먼저 확인하자. 무슨 정책, 어떤 수단을 쓸지는 그 목적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지에서 시작해서 과학적으로 탐색,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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