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디 말이 분란을 일으키고(一言僨事)
한 사람이 나라를 안정시킨다(一人定國)
노회찬 의원이 돌아가신지 꽤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살아계신 듯 하다. 그의 마음과 말이 그립다. 노회찬 의원과 반대로 한 마디 할 때마다 온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는 인상 더러운 인물도 떠오른다. 홍 아무개라고 하는 벌써 이름은 생각 안 나고 '발정제'라는 이미지만 떠오르는 비루한 인물이다. 혹시 내가 입만 벌리면 혹은 글만 쓰면, 남에게 상처를 주고 분노케 하지는 않는지.
오늘 정태옥이란 인물은 부천이 어떻고 인천이 어떻다고 함부로 말해 부천과 인천 사람들에게 고소 당해 카메라 앞에 섰다. 자기가 사는 생활 수준만을 잣대로 두고 남을 비하했던 말이다. 그의 한 마디 말로 인천과 부천에 사는 사람은 물론 듣는 이들 기분이 정말 더러웠다. 또 국회의장은 "국민들이 적폐청산으로 피곤을 느끼고 있다"는 황당한 말도 했다. 명성교회 세습을 용인한다는 선언도 예수의 뜻을 따르는 이들을 슬프고 분노하게 한다.
반면 말 한 마디에 나라에 평안을 주고, 약자에게 위로를 주는 인물이 있다. 그의 말 한마디는 가마곹 땡볕 더위에 시원한 새벽바람이었고, 꽁꽁 언 겨울철에 뜨거운 난로처럼 따스했다. 노회찬 같은 인물을 어디서 또 만날 수 있을까. 자꾸 그가 생각난다.
품성과 은유와 단문과 위트의 매혹
그의 말에는 왜 힘이 있었을까. 경청을 잊고, 공격적 명령에 가득찬 이 세대는 그의 말, 그의 대화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첫째, 품성과 실천이다. 그의 말이 시원했던 까닭은 단순히 그가 잘 쓰던 풍자와 해학의 기술에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기술 이전에 그의 품성을 주목해야 한다. 말이란 그저 기술로 나오지 않는다. 품성이 말을 만든다. 건강한 품성이 바른 말, 힘있는 말을 만든다. 악한 품성은 명령과 갑질의 말을 만든다. 그의 풍자와 해학에는 '약자에 향한 사랑'과 '부패에 향한 분노'가 있다. 실천이 있었기에 그의 말에는 신뢰가 따랐다. 그는 대본을 읽는 앵무새가 아니었다.
둘째 결론부터 말하는 연역법이다. 그는 결론부터 말한다. 지루하게 설명을 끌거나, 필요없는 접속사나 부사를 쓰지 않는다. 첫인상을 좋게 보이려는 전방효과(primary effect)나 멋진 클로징 같은 후방효과(halo effect)라는 장식은 아예 없다. 오로지 직설로 결론부터 말한다.
셋째, 은유법이다. 그는 거의 천부적으로 온갖 사물을 은유한다. 'A=B'라는 간단한 공식은 누가 들어도 알기 쉬운 촌철살인 은유였다. 어려운 상징을 쓴 적이 거의 없다. 그의 말은 은유였다. 청소는 적폐청산, 먼지는 부패세력, 모기는 부패세력, 에프킬라는 적폐청산, 같은 판은 정의당을 뺀 주류세력으로 은유된다.
"청소할 때는 청소를 해야지, 청소하는 게 '먼지에 대한 보복'입니까?"
넷째 짧은 단문이다. 그의 문장은 우리말을 할 줄 아는 국민학생도 알아듣기 쉬운 짧은 문장이다. 접속사나 부사나 형용사는 거의 쓰지 않고, 명사와 동사를 주로 쓴다. 주어와 서술어가 정확히 조합된 형식이기에 누구라도 알아들을 수 있다. 정확한 문장은 쉽고 정확하게 전달된다. 그가 2004년 전태일문학상 산문 부문 수상자였다는 사실은 안 알려진 약력이다.
"모기들이 반대한다고 에프킬라 안 삽니까?"
다섯째, 위트다. 그의 말에는 늘 웃음이 있다. 공격적인 말을 하면서도 그는 웃고 있다. 풍자와 분노를 그는 웃으면서 친절하게 전한다. 웃는 얼굴에 적들은 대적하기 힘들다.
"50년 동안 같은 판에서 계속 삼겹살 구워 먹으면 새까매집니다. 판을 갈 때가 왔습니다."
여섯째, 사유의 힘이다. 그가 감옥에 있을 때 되도록 사람을 만나지 않고 책을 읽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오히려 감옥 생활을 독서와 사유의 시간으로 누렸던 것이다. 그의 수사학은 단순히 책을 읽어서 나온 표현이 아니다. 한마디 하기 전에 얼마나 여러번 문장을 수정하고 또 수정했을까.
"왜 자유한국당엔 친박, 비박만 있느냐? '친국민'은 왜 없습니까? 보수도 '친국민'이 있을 수 있잖아요? (한국당 비대위 자리 노리시는 거예요? 지금!) 아잇, 역시 예리하시네!"
일곱째, 설득대상이다. 그에게 설득의 대상은 적이 아니라, 국민이었다. 토론할 때 설득의 상대는 토론이 아니라 관중이라는 사실을 그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의 화술은 적으로 향해 있지 않다. 늘 국민에게 말했다. 적들이 그에게 싸늘하게 말할 때 그는 국민에게 친절하게 얼굴을 돌렸다. 그의 장례식에 그의 반대편에 있던 정치인도 많이 갔던 이유는 그가 그들에게 직접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국민에게 즐겁게 말했다. 그는 적을 친구로 만들기까지 했다. 더 구체적으로 노동자, 약자, 청년의 친구의 말벗이었다. 혁명은 대중의 바다에서 물결친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고 좋은 학교를 나왔다 한들 대중이 공감하지 않는 표현은 우물 안 메아리에 불과하다. 그는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표현을 썼다.
"김성태 원내대표님, 어디 계세요? 만나고 싶습니다. 이 중요한 자리에 한국당이 빠지면 논의가 안 되지 않습니까? 빨리 복귀해주십시오. 기다리겠습니다."
일인정국(一人定國)
그의 말이 뿜어내는 발생지는 마음과 실천이다. 아나운서가 되려는 동아리 학생들에게 내가 연탄 나르기부터 하라고 했던 이유는 품성이 바른 말을 만들기 때문이다. 오프닝과 클로징을 제대로 쓰려면, 앵무새 흉내내는 아나운'새'가 아니라 실천하는 아나운서로 살아야 한다. 그 삶에서 말이 흘러나와야 한다.
해방 이후 이 정도로 실천과 풍자와 은유와 위트를 짧은 단문으로 자유롭게 섞을 줄 아는 정치인은 누가 있었을까. 김대중? 김종필? 노무현? 유시민? 비교할 정치인이 있을까. 그의 화술은 거의 독보적이다. 그의 화술은 이제 연구 대상이다.
말 한 마디에 일을 그르치고(一言僨事), 여기서 분(僨)은 그르친다, 엉망으로 만든다는 뜻이다. 한 사람이 나라를 안정시킨다(一人定國).
지도자의 한 마디뿐만 아니라, 집안 가장의 한 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나라(國)와 연관시키고 있다. 찜통 더위에 사람이 죽어갈 지경이다. 명성교회의 김삼환 김하나의 세습을 합리화 하며 분란을 일으키는 비루한 말이 아니라, 노회찬 의원처럼 시원하고 모두 웃을 수 있는 정국(定國)의 말을 사람들은 그리워 하고 또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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