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학들은 8월만 되면 태풍 전야를 맞곤 한다. 이명박 정부 이래로 8월이면 다음 학년도 신입생 요강 확정을 앞두고 정부의 재정지원제한대학 지정이나 대학평가결과 등이 발표되기 때문이다. 올 8월도 그랬지만, 2015년 8월은 더 그랬다. 소위 '1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사업' 결과를 앞두고 많은 대학들은 저승사자의 도래에 사색(死色)이 되어가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대학이 1등부터 꼴찌까지 줄 세워지고, 폐교 대학과 재정지원제한 대학 리스트 소문이 오르내리곤 했다. 대학구조개혁평가사업이 진행되면서 학생과 시간강사들의 피해와 대학 교육의 질적 저하가 연쇄적으로 일어났고 그 결과 대학 교육의 현장은 참담하기 짝이 없는 지경에 처했다. 한 예로 2011년부터 2017년 사이에 시간강사 3만 6천명이 대학을 떠나야 했고, 평균적으로 대학 강좌의 20~40%가 사라졌다. 그야말로 학문의 다양성, 교육자의 교육권과 인권이 실종된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간신히 명맥을 이어오던 대학 민주주의는 죽었다. 대학평가와 재정지원제한이라는 목줄을 쥐고 있는 교육부 앞의 교수들을 포함한 대학 구성원들은 고양이 앞의 쥐라고나 할까. 백년대계로서의 교육적 방향과 내용도 담보하지 못한 채 무조건 대학구조조정을 단행하라며 관료적 칼날을 들이대는 교육부의 주장에 대학의 운명이 좌지우지 되었다. 관료의 비호를 받은 사학의 사유화와 전횡은 나날이 극심해졌고, 국공립대학 마저 정치의 시녀가 되었다. 대학 교육이 죽건 말건 대다수의 교수들은 불만을 속으로 삼킬 뿐 목소리를 내기조차 어려웠다. 0.1%도 안 되는 극소수의 양심적 교수들의 비판은 종종 기득권의 목소리로 치부되어, 사회적 반향을 제대로 일으키지도 못했다.
바로 그랬던 2015년 8월 17일 비보가 전해졌다. 부산대 국어국문학과의 고현철 교수의 죽음이었다. 시인이기도 했던 그는 대학의 총장 직선제가 비참하게 짓밟히고, 대학 민주주의가 도탄에 빠져 있는 현실에도 무뎌진 대학 교수와 대학 사회에 충격을 주기 위하여 자신을 투신하기로 결심했다고 유서를 통해 말했다.
대학 구성원들은 충격과 부끄러움에 패닉 상태에 빠졌다. 당시 잘못된 문제를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는커녕 잘못을 제대로 생각하지도 못할 만큼 무뎌진 감각과 무관심한 분위기가 교수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다. 학문의 자유가 이미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학문을 한다며 상아탑에 있는 척하면서 사실은 철밥통을 꿰차고 있을 뿐임을 고현철 교수는 투신하면서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헌법은 국민의 권리로서 학문의 자유를 부여했다. 역사적으로 연구자는 학문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간주되었다. 왜 학문의 자유는 연구자의 전유물이 되었는가? 역사적으로 보면 학문의 자유는 잘못된 국가 정책, 곡학아세하는 권력과 사익을 위해 공익을 짓밟는 자본을 비판하기 위해서 등장했다. 미국의 존 듀이는 학문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서 대학 교수에게 테뉴어제도(교수정년보장제)를 도입하자고 주창했다.
한국 대학사에서도 일부 양심적인 교수들이 학문적 소신을 걸고 잘못된 대학 정책이나 운영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부패한 권력에 대해서 비판하며 대안을 제시해온 전통이 있다. 그 결과 적지 않은 교수들이 해직을 당해 강단을 떠나야 했고, 1987년에는 그러한 교수들이 중심이 되어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와 같은 대학 교수 조직이 건설되기도 했다. 그러한 교수들 중 일부는 해직까지는 아니더라도 최근 악명을 떨치고 있는 블랙리스트에 올려져 대학운영이나 정부의 연구지원 등에서 배제당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최근 한국에서 학문의 자유나 테뉴어 제도는 교수들의 잘못된 특권, 철밥통의 상징인양 여겨지고 있다. 심지어 극소수 문제 교수들이 보여준 비도덕적일 뿐만 아니라, 범법적인 갑질 문화가 교수의 대명사로 오해되고 있다. 소신을 갖고 권력에 맞서 싸우는 교수연구자들은 많지 않더라도, 극단적인 인분교수 사건과 같은 교수는 사실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갑질 교수가 과대표되는 이유는 대학에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실질적 민주주의를 수반한 정치의식은 높아지고 있지만 국회의원을 포함한 정치인들의 정치의식은 형식주의적 민주주의 수준에 머물러 있듯이 대다수 교수들의 정치사회의식 역시 그런 수준에 머물러 있는게 아닌가 싶다. 그러니 촛불 시민이 등장하는 현실에서 교수들의 정치사회의식은 상대적으로 후진적일 수밖에 없다. 대학 민주주의에는 의당 대학 구성원들이 민주적으로 참여해야 하고, 의사결정 역시 평등하게 참여하고 상호 존중을 해야 하며, 분배건 책임이건 결과에 대해서도 공동으로 참여해야 한다. 학생이 없는 대학은 있을 수 없으나 학생은 손님취급당하고 있다. 심지어 대학 행정 당국은 교수 역시 손님취급하고 있다. 정부는 사립대학에 대학평의원회를 도입하여 대학 민주주의를 시행한다고 하나, 의결권도 없는 대학평의원회는 사실상 총장과 재단측의 거수기가 되어 있다. 2018년부터 국공립대에서 대학평의원회가 시행되도록 되어 있으나, 전국 47개 국공립대학 중 8개 대학만 대학평의원회를 설치했을 뿐이다. 아직도 대학 민주주의는 뿌리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대학 민주주의의 상징이 되어온 총장직선제는 아직도 많은 대학에서 제대로 실시되고 있지 못하다. 지난 정부 하에서 대학이 총장직선제를 실시하면, 정부에 의해 불이익을 받게 되거나 직선제로 총장을 뽑아도 청와대나 교육부에 의해서 승인받지도 못했던 탓도 있다. 게다가 더 깊은 이유는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교육 행정과 총장이나 재단, 대학 설립자등의 독단적인 대학 운영이 이뤄지면서 대학 발전이 그러한 이익의 공동체에 의해 좌지우지되어온 탓이다. 사실상 한국 대학에서 민주주의는 공염불이었다.
주지하듯 구성원들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는 의사결정과 함께 책임도 같이 요구한다. 학문의 자유가 살아 있어야 대학이 살고, 학문이 발전하며, 학문이 사회의 발전에 제대로 기여할 수 있다. 학문의 자유가 살아 움직이려면 대학 민주주의를 살아나야 한다. 국가는 대학을 지원하고 감독하되, 대학의 운영을 대학 구성원, 즉 학생, 교수연구자, 직원 등에게 맡겨야 한다.
이제 고현철 교수 서거 3주기를 맞이하면서 대학 민주주의를 제대로 확립하여 대학과 학문을 살리기에 진력을 다해야 한다고 다짐해본다. 또한 학생들이 미래를 꿈꾸고 희망을 가꿀 수 있는 대학으로 만들도록 노력하리라 마음을 벼린다.
김귀옥 교수는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상임공동의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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