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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군대로? 이미 우리는 전쟁 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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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군대로? 이미 우리는 전쟁 중이야!

[화제의 책] 신시아 코번의 <여성, 총 앞에 서다>

1·2차 세계 대전부터 베트남 전쟁, 그리고 그럴싸한 레토릭으로 등장한, 21세기 판 '테러와의 전쟁'까지. 인류 역사에서 단 한 순간이라도 총성이 멈춘 적이 있었을까. 전쟁의 명분도, 살상 도구도, 형태도 각각 달랐지만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언제나 여성이었다는 점.

가까이에는 일본군 '성노예'로 살아야했던 생존자들이, 멀리에는 집단 강간의 피해자였던 베트남 여성들이 있다. 아니, 굳이 흘러간 역사의 자취를 끄집어 내 되새김질 할 필요도 없다. 미군이 주둔한 곳이라면 전 세계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성매매 집결지, 이른바 '기지촌'은 성매매 여성들에게 '총성 없는 전쟁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탈레반이 점령하든, 미군의 지배를 받든 상관없이 전쟁 속에 묵인된 가혹한 학대에 시달린다. (☞관련 기사 : "아프가니스탄, 변함없는 '여성의 지옥'")

그럼에도 '전쟁'은 계속된다. 여성 인권에 무지한 저 잔혹한 탈레반으로부터 아프간 여성들을 '해방시켜 주겠다'는 미명 아래, '조국을 위해 나라를 지키는' 장병들을 여성이 나서 '위안(慰安)'해 줘야한다는 명분 아래. (실제 한국 정부는 1971년 미국이 미군 철수를 통보하자, 미군을 계속 주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기지촌 정화 운동'을 시행했다. 정부가 직접 나서 기지촌 여성에게 성병 검진을 시켰고, '윤락금지법'을 만든 박정희 정부는 성매매 여성들을 '민간 외교관'으로 추켜세우며 사실상 미군을 대상으로 한 성매매를 독려했다. 당시 기지촌에 있었던 한 성매매 여성은 "우리 정부는 미군을 위한 거대한 포주였다"고 당시의 상황을 회고한 바 있다.)

여성, '전쟁에 대한' 발언권을 빼앗긴 사람들

▲ <빼앗긴 순정>(故강경덕 作). ⓒ나눔의집
그렇듯, 여성을 매개하지 않은 군사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군대와 전쟁은 흔히 '남성'의 역역으로 여겨지지만, 젠더는 이들 시스템을 가능케 하는 가장 강력한 사회적 기제다. 전쟁 때마다 되풀이 됐던, 적군의 '사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상대편 여성을 성폭행하는 일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 집단 강간을 통해 피점령지의 남성은 '자국 여성을 보호하지 못한' 수치심을, 점령지의 남성은 이들을 '정복했다'는 일종의 승리감에 도취된다.

군사주의가 젠더를 기제로 작동하는 이유는 단지 전쟁의 피해자가 '생물학적 여성'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2004년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발생한 미군의 포로 성 학대 사건의 경우, 어떻게 전쟁에서 점령군이 성폭력을 통해 피점령지 남성을 '여성화' 하는지 보여준다. 이 교도소에서 미군이 남성 포로들에게 여성의 속옷을 입힌 사실은 남성의 '여성화'를 통해 수치심을 가중시킨, 전형적으로 성별화된 사건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은, 적군과 싸우는 남성들에게 마땅히 감사와 응원을 보내야하는 '후방에 선' 피보호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전쟁으로 인한 폭력과 상흔을 온몸으로 감내해야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정작 '총 앞에 선' 여성들이 어떻게 전쟁에 반대하고 폭력의 희생자가 되기를 거부해왔는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여성은 전쟁으로 인해 가장 착취 받는 사람들이었지만, 단지 그들이 '총을 들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쟁과 군대라는 영역에 대해 발언권을 빼앗긴 존재였다. '남성의 보호를 받는' 여성이 '감히' 군대와 전쟁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오래된 금기였다. (매년 한을 풀지 못하는 총각 귀신처럼 부활하는 '군 가산점제'의 망령을 보라. 군 가산점제를 주장하는 이들에게 군 경력은 '희생'인 동시에 '대한민국 남자'로서의 정상성과 자부심의 원천이다.)

'총 앞에 선' 여성들, 목소리를 내다

여기, 그 금기를 과감히 깨고 나선 여성들이 있다. 그들의 목소리는 더 이상 '폭력의 희생자가 되지 않겠다'는 적극적인 의지의 표현이자, 전쟁과 은밀히 내통하는 모든 차별적 구조와 권력 관계에 저항하는 시도다.

▲<여성, 총 앞에서 서다>(신시아 코번 지음, 김엘리 옮김, 삼인 펴냄) . ⓒ삼인
저명한 여성학자이자 영국 시티대학 교수인 신시아 코번의 <여성, 총 앞에서 서다>(김엘리 옮김, 삼인 펴냄)는 여전히 전쟁의 고통 속에 직·간접적으로 시달리는 세계 각지의 여성들의 반전·평화 운동을 다룬 의미있는 기록이다. 저자는 2년간 총 12개국 250여 명의 여성 활동가들을 만나면서 전쟁과 폭력에 대항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에 담아냈다.

그는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인도, 시에라리온,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등 세계의 분쟁 지역을 돌며 전쟁과 폭력이 얼마나 여성들의 삶을 피폐화시키는지 목도한다. 군인에 의해 자행되는 성폭력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여성들 은 가족과 공동체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 여성 지도자들은 암살당하고,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의 활동은 '전쟁 시기'라는 이유로 엄격하게 통제된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가 만난 세계 각지의 여성 평화 운동은 눈여겨 볼만 하다. 이 책에서 여성들은 강간을 당하고 비참하게 버려진 동료의 죽음에 항의하며 알몸으로 철조망 앞에서 시위를 하기도 하고, 삼엄한 미사일 기지 앞에서 텐트를 치고 농성을 벌이기도 한다.

기존의 평화운동 방식과는 다른, 색다른 형태의 운동 역시 눈에 띈다. 정부군과 무장 세력의 갈등이 끊이지 않는 콜롬비아에서는 '여성들의 평화로운 길'이라는 여성 평화 운동 조직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1996년 '우리는 전쟁을 위해 아들과 딸을 낳지 않으리라'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고대 그리스 시인 아리스토파네스가 쓴 희극, <뤼시스트라테>에서 아테네 여성 뤼시스트라테가 전쟁을 지속하는 한, 남편들과 성관계를 갖지 말자고 제안해 전쟁이 종식된 이야기의 현대판 사례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 필리핀, 미국 등 20개 국가의 여성이 참여하는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동아시아-미국-푸에르토리코 여성네트워크'는 미국의 해외 군사 전략을 감시하고 미군 주둔지의 기지촌의 현실을 고발한다. 자국 정부와 미국 정부의 교묘한 '외교술' 끝에 '국적없이' 버려진 땅, 기지촌의 현실을 이 여성들이 앞장 서서 드러낸 것이다.

전쟁 가해국에 속한 여성들도 기꺼이 반전을 외치는데, 다국적 반전 네트워크인 '위민인블랙(Women in Black)'은 팔레스타인 침략에 반대하는 이스라엘 여성들이 시작했다. 이들은 특이한 복장을 하고 행진을 한다던가, 사회 운동 진영에서는 금기시 되는 정치권과의 로비 활동도 서슴지 않는다. 군사 시설을 평화적으로 에워싸 봉쇄하기도 하고, 저항의 의미로 금지 구역에 일부러 들어가거나 전쟁 피난민을 지원하는 활동도 벌인다.

▲ 전쟁 가해국에 속한 여성들도 기꺼이 반전을 외치는데, 다국적 반전 네트워크인 '위민인블랙(Women in Black)'은 팔레스타인 침략에 반대하는 이스라엘 여성들이 시작했다. 이들이 2002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는 모습. ⓒ삼인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단순히 평화를 지향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든 군사주의와 전쟁에 반대하기 위해 집단적인 운동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남성들과 경찰, 우파와 기성 좌파, 미디어, 심지어 같은 여성들조차 비웃고 경멸하며 주먹을 휘두르지만,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여성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줄기차게 반전·평화와 인권, 그리고 여성 해방을 외친다.

"여자가 감히?…그래, '감히' 군인들 앞에 섰다!"

"우리는 자신의 칼로 5000년 전 도시 국가와 제국을 만든 전사처럼, 현대 전쟁을 치를 군인으로 맞게 단련되고 길들여진 지배적인 남성 자아를 목격한다. 평화 활동가들은 특히 전쟁 폭력을 파괴의 전형으로 생각한다. 그 생산이 우리에게 달갑지 않지만, 이는 새로운 계급 엘리트를 창출하거나 현존하는 어떤 계급을 강하게 만든다. '사람들'에 대한 차별을 심화시키면서 인종화된 정체성을 만든다. 또한 젠더를 생산한다. 그 생산은 남성과 남성성을 매우 효과적인 양식으로 지지한다. 여성을 전리품이나 소유물로, 수하물이나 노예로 만든다."

전쟁은 역사적으로 남성이 일으켰지만, 살아남아 그 피해를 온전히 떠안는 것은 여성이었다. 저자는 전쟁에 대한 발언권과 시민권을 빼앗긴 이들이 만들어가는 반전 운동에 주목한다.

저자가 이들의 활동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단지 전쟁의 피해자가 여성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군사주의의 저변에 '성'을 토대로 차별과 착취를 만들어내는 가부장제가 깔려 있음을 이들의 운동을 통해 폭로하고자 한다.

한편, 이들의 운동은 여성과 남성의 차이 뿐 아니라 여성 내부의 차이를 유연한게 소통한다는 점에서 사회 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여성 운동이 단순히 '남성 시스템에 대한 부인'이 아니라 '남성의 경험만을 보편화하는 힘'을 상대화시키는 시도인 것처럼, 이들의 활동은 여성 내부의 인종, 계급 차이까지도 지혜롭게 횡단하고자 한다. 또한 주류 사회 운동의 남성중심적·가부장적 권위주의를 극복한다는 면에서, 우리의 사회 운동 진영에게도 시사하는 점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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