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어되지 않는 '강한 청와대'는 '민주적 책임 정부'와 양립할 수 없는 형용모순이다. (…) 대통령이 청와대를 중심으로 정부를 이끄는 선택을 하면 민주 정치는 결국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청와대 정부>(후마니타스 펴냄)의 저자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선한 박근혜'로 단언하며 비판한 논리의 핵심이다. 그가 정의하는 '청와대 정부'란 "대통령이 자신을 보좌하는 임의 조직인 청와대에 권력을 집중시켜 정부를 운영하는 자의적 통치 체제"다.
그는 책에서 청와대 예산과 인적 규모가 문재인 정부 들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는 실증 자료를 근거로, '거대한 청와대'는 책임정치에 역행한다고 주장한다. 보수냐 진보냐를 떠나 민주주의 연구자의 시각에서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는 박근혜 청와대보다 악화됐다고 볼 법하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에게는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을 실패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동렬 비교한 대목이 매우 불편하게 여겨질 대목이다. 그러나 "좋은 정부가 좋은 시민을 만든다"고 강조하는 정치학자의 눈에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정부화'는 '좋은 정부' 모델에서 한참을 벗어난 위기의 시그널이다. 박상훈 학교장을 만나 이제 집권 1년을 갓 지난 문재인 정부에 쓴소리를 던진 이유를 좀 더 들어봤다.
"대통령은 선출직 군주인가?"
프레시안 : 저서 <청와대 정부>가 요즘 언론에 자주 인용된다. 책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선한 박근혜'라고 서술한 대목이 눈에 띈다. 민주주의를 연구해온 학자 입장에서 정부 운영의 양태를 비교한 결론으로 이해하지만, 역대 최악의 국정 실패를 일으켰던 대통령과 대중적 지지가 상당히 높은 대통령을 같이 묶어둔 데 대해선 먼저 독자들에게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박상훈 : 나는 문재인 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정부에 초점을 둔다. 청와대 중심으로 운영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박근혜 정부나 문재인 정부가 다르지 않다. 문 대통령은 대선 당시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민주당 정부를 만들겠다고 했고, 야당과 협치를 하겠다고 했다. 책임 총리에게 실질적인 장관 제청권도 주고, 청와대를 축소하며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약속은 많이 했는데, 막상 대통령이 되고 나니 청와대 조직을 오히려 강화했다.
촛불로 탄생한 정부라면 권위적 청와대를 버리고 민주적 청와대로 변모했어야 한다. 정부를 민주적으로 운영하겠다던 문재인 정부가 왜 청와대라는 임의조직을 강화시키나? 왜 내각과 국회와 같은 민주주의의 여러 요소를 무시하나? 이는 '선출직 군주제'와 다르지 않다. 문 대통령이 개혁 군주인지는 몰라도 민주적 정치 지도자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특히 사람들 사이에서 '이렇게 좋은 사람이 대통령인데, 청와대가 정부 운영의 중심이 되는 게 왜 문제냐'는 역편향이 심해지는 점을 우려한다.
프레시안 : 선거 때 얘기했던 것과 달리 집권 이후 문 대통령이 청와대 중심의 국정 운영을 한 이유는 뭐라고 보나?
박상훈 : 첫째, 선거 때 약속과는 달리 문 대통령이 강력한 청와대를 원했을 수 있다. 정의롭고 개혁적인 변호사 출신 대통령으로서, 정의를 위배한 사람들을 단호하게 처벌하려는 관점으로 정치를 바라봤을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맞물려 처음에 정치를 떠밀려서 시작한 만큼, 문 대통령은 정치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은 사람이다. 정치인은 다 권모술수를 가진 사람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그래서 이론적으로는 정상적인 정치론을 받아들이면서도 정작 본인은 권력을 통해 적폐를 청산하겠다고 마음먹었을 수 있다.
둘째, 문 대통령 본인도 ('청와대 정부'와 반대되는 개념인) '책임 정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집권 초에 곧바로 실현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촛불 혁명을 완수해야 하기에 첫 1년은 청와대 중심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다. 초대 국무총리로 이낙연 총리를 임명한 것은 이러한 이유가 40%였고, 나머지 60%는 호남을 정치적으로 재탈환할 필요에서였다고 본다.
만약 첫째 가설이 맞다면 큰 문제다. 반(反)정당적이고 민주주의 기본과 충돌한다. 두 번째 가설은 그 취지에 동의하더라도, 2년 차에는 협치하기가 현실적으로 더 어려워진다는 문제가 있다. 경로 의존성 때문이다. 한번 자리가 잡히면,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변화를 용납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
"자리 나눠먹기가 아니라 책임 있는 연정을 고민해야"
프레시안 : 최근 개각 요인과 맞물려 청와대가 야당 사람도 기용하겠다는 메시지를 낸 것은 협치나 연정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나?
박상훈 : 그랬으면 좋겠는데 방법론은 더 나빠졌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은 내각에 진보적인 사람을 많이 썼다. 반대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초기에 민정당계인 김중권 비서실장을 앉혔다. 다른 정파의 사람을 쓰는 건 한국 정치의 일반적 관행이었다. 체제가 바뀌는 게 아니라, 사람의 일부를 써서 그 집단의 요구를 수용하는 일종의 변형주의다. 이번 문 대통령의 제안에는 야당에 내각 참여를 요청하는 목표나 가치, 규범에 대한 설명이 없다. 개혁연대, 연정 혹은 공동정부를 제안한다거나, 정치 연합이라도 하자는 제안이 없고, 자리에 대한 얘기만 있는 것은 부적절하다.
프레시안 : 국회 구조상 야당의 협조가 없으면 정상적인 국정운영은 물론이고 입법도 어렵다. 문 대통령이 연정을 구상하고 있다고 가정하면, 대상으로 포괄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가 적당하다고 보나?
박상훈 : 촛불 집회 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연합 라인이 있었다. 야 3당 또는 야 4당의 연합이 촛불 집회 때 만들어진 사회적인 의제에 답하는 일이다. 안타까운 건 청와대가 이들과의 연합에 전혀 노력하지 않겠다는 뜻을 단호히 보여줬다는 점이다. 어쨌든 야권 쪽이 먼저 개혁 연합 제안을 한 것 아닌가. 당이나 청와대 안팎에서 정부 운영 기조를 모색한 흔적은 없다.
프레시안 : 개혁 연합의 현실화보다 최근에는 자유한국당과 보수적 입법을 위해 손을 잡는 형국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8월 중에 인터넷 전문은행에 대한 은산 분리 완화를 위한 특례법을 통과시키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박상훈 : 양당제의 효과가 그런 면이 있다. 겉으로는 심하게 싸우는데, 정책적 차이는 줄어든다. 연정과 협치를 구분해야 한다. 연정은 책임지는 구조고, 협치는 연정과는 달리,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민주주의 이론에선 연정을 해야 한다. 정당들 간에 연정을 할 때는 공약화해서 사회계약론처럼 문서로 '연정 협약서'를 써야 한다. 만약에 연정 내용이 바뀌면 정당 내에서 대의원대회 같은 공식구조에서 토론과 인준을 거쳐 바꿔야 한다. 그래야 정당도 연정의 결과를 책임질 수 있다.
"청와대 축소하면 관료에게 포위된다? 정반대"
프레시안 : 저서에서 청와대 비서실을 실무나 보좌 기능만 남겨두고 대폭 축소해 내각 통할권을 내려놓고 당과 내각을 중심으로 국정운영을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상적인 모델이지만 내각 중심의 국정운영이 자칫 관료들에게 포위되는 부작용을 일으키지는 않을까?
박상훈 : 그 정반대다. 장관에게 힘을 주고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지 않기 때문에 관료가 세지는 것이다. 정부 운영은 공화주의, 책임정부 원리에 입각해야 한다. 모든 권력은 법에 근거해야 하고, 공직자에게 책임을 줘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 한국에는 권위주의가 먼저 자리를 잡았다. 권위주의 시절에는 청와대 중심으로 일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민주주의 시대는 다르다. 어떻게든 정당 간 타협을 통해 입법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정부는 진보적 개혁을 '강한 청와대'를 통해서 하겠다고 집권 초부터 밝힌 것이다. 그렇게는 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허접해 보여도 의회의 기능 없이 민주 정부는 운영되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청와대가 나태해진다. 집권 초에는 청와대 중심으로 운영하다가도 종국에는 청와대 힘이 빠진다. 청와대는 책임성의 구조가 없기 때문이다. 힘이 셀 때 반짝하고 힘이 약해지면 기능이 안 된다. 우리가 역대 청와대에서 본 모습이 그렇다.
관료주의를 견제하는 최고의 힘은 정당에서 찾아야 한다. 당은 개혁을 지지하는 시민 집단을 기반으로 두기에 임의조직인 청와대보다 훨씬 강하다. 개혁을 견인할 동력이 필요하면 당의 정책위원회 기능과 역할을 잘 돌아가게 하거나, 당청 관계를 동원해서 하는 게 훨씬 낫다. 청와대 수석들이 법적으로 갖고 있지 못한 자료 요청권이나 관료에 대한 통제권을 정당과 의회는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좋은 기준이 노무현 정부 때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집권 초에는 내각과 겹치는 역할은 청와대 참모들에게 주지 않았다. 그렇게 운영하다가 정책실장 자리를 만들고 퇴행했지만 노무현 정부의 초기 모델을 문재인 대통령이 고려해봐야 한다. 관료들도 유능한 정치인이 장관으로 오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장관이 무능할 때 관료들이 조직적 이익을 추구하게 된다. 청와대가 내각 역할을 중복하는 것을 줄이면, 필연적으로 대통령이 내각과 의회를 직접 상대하게 된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비서들하고만 일한 것이 아니었다. 법안 통과를 위해 야당 의원들과 밥 먹는 게 일이었다.
청와대를 대폭 줄이고, 적어도 장차관급 직책인 수석 제도는 없애야 한다. 비서실장도 차관급 정도면 충분하다. 그렇지 않고 청와대를 비대하게 운영하다가 정권 말기에 청와대 힘이 빠지면 어떻게 되나. 역대 대통령 역사에서 대통령 아들이나 최순실 같은 인사가 비선 역할을 하는 경우를 보아왔다. 이것은 대통령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청와대 구조의 문제다. 이 정부에서는 그 사이클을 반복하지 않았으면 한다.
프레시안 : 청와대 기능 가운데 국가안보실이나 NSC 기능도 없애자는 제안은 파격적이지만 현실에 대입해 생각하면 갸우뚱하게 하는 부분도 있다. 최근의 남북, 북미관계 진전은 대통령 의지를 받아 수행하는 국가안보실이나 국정원의 역할이 대단히 컸다. 내각을 중심으로 삼고 의회를 설득해 가는 것이 민주주의의 정도이겠지만, 한반도 문제 등 청와대가 주도할 수밖에 없는 특수 과제들이 있지 않나.
박상훈 : 외교 분야에는 비밀 외교의 필요성도 있고 비공식적인 부분도 있다. 하지만 외교 분야도 넓은 분야에서는 동일한 구조여야 한다. 대통령이 신뢰할만한 사람과 외부적으로 공개가 어려운 조직이 있을 수 있고 장관이나 정당처럼 책임을 요구받는 자리도 있다. 전자를 통치적 리더십의 형태, 후자를 정치적 리더십의 형태라고 구분해보자. 전자는 불필요한 논란을 막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실행이 되면 사회에 설명을 해야 하는데 통치적 리더십으로는 그것을 담보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문재인 정부의 남북 관계를 위해 국회에서 결의문이 필요할 수도 있다.
국가안보실이나 국정원이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정치적 리더십을 우선순위에 두는 것이 좋다고 본다. 국회와 같은 공식 조직을 설득하는 문제는 처음에는 시간이 걸릴지 몰라도 일단 성취하면 그 다음이 수월하다. 미국도 국무부가 중심이고, NSC는 보조적인 역할이다. 그런데 우리는 통일부 외교부 등 공식라인이 이번에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다. 이런 게 안타깝다.
프레시안 : 국내적 합의를 위해서는 사후적으로 지난한 설득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한반도 현안의 경우 야당 설득에만 매달리면 자칫 실기할 수도 있는 문제 아닌가?
박상훈 : 특수성도 필요하다. 그 점을 부정하진 않지만, 보편성 기준이 충분히 검토된 위에서만 특수성이 있어야 권력이 자의적이지 않을 수 있다. 국가안보실 조직은 박근혜 정부 때보다 두 배로 늘어났다. 미국 정치학자들도 미국 정치가 나빠진 원인으로 NSC 같은 조직의 역할이 커진 것을 꼽는다. 안보기구가 통제하기 어렵게 커지면 위험하기 때문이다. 비밀스런 안보기구의 기능을 가능하면 제도화하고 정상적인 정치기능으로 옮겨주는 게 민주적 제도화인데, 그것을 못 할 이유가 뭔가. 정의용 안보실장의 역할을 통일부장관이나 외교부장관이 했으면 지금 같은 성과를 내지 못했을까? 공식성과 책임성을 가지고 집행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시민이 위임한 통치권과 예산이 투여돼 있는 정부 공식 조직이 무력한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하나. 장기적으로는 민주적 통치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데, 이 점에 사려깊지 못한 것은 우려스럽다.
"민주당 당권 경쟁은 노골적 충성 경쟁"
프레시안 : 청와대가 국정운영을 좌지우지하는 '청와대 정부'의 반대 개념으로 '책임 정부' 개념을 강조했다. 책임정부가 기능하려면 내각과 더불어 당의 기능이 중요시된다. 문재인 정부가 당청분리를 기조로 했던 노무현 정부보다는 집권당과의 관계에선 원활하다고 볼 수 있지 않나?
박상훈 : 노무현 청와대가 당정 분리를 기본으로 했다면 문재인 청와대는 당정 통합을 추구한다. 당을 대통령이 통제하겠다는 의도가 보인다는 점에서 후자가 더 나쁘다고 본다. 지금 당청 관계는 노무현 정부 때보다 더 나빠졌다.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은 정당으로서는 최악의 상태다. 노무현 정부 때는 당이 혼란스럽기는 했지만, 당이 청와대와 독립적인 목소리라도 냈다. 지금 민주당 당권 선거를 보면 누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충성할지 경쟁하는 꼴이 돼버렸다. 이건 말이 안 된다. 5년 전 새누리당과 비교해도 지금 민주당이 그보다 낫다고 보기 어렵다. 박근혜 정부 때 새누리당에는 비박근혜계 의원이 자기 목소리라도 냈다. 지금 민주당에서 자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청와대에 굴종적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침묵한다. 그래서 민주당이 진보적이 됐을까? 그렇지 않다. 지금 민주당이 노동자들의 요구를 정책 결정 과정에 수용하기 위해 당의 운영 방식을 바꾼다든가 하는 노력이 있나? 다 후퇴했다. 전 정권에 대한 적폐 청산을 하는 것 이외에 당의 정치 노선이나 조직 노선에 대한 고민이 없다. 아무도 문제 제기하지 않는 빈사 상태의 정당 같다.
프레시안 : 말이 나온 김에 진행 중인 민주당 전당대회에 관한 평을 하자면?
프레시안 : 말이 나온 김에 진행 중인 민주당 전당대회에 관한 평을 하자면?
박상훈 : 당 대표 선거가 노골적인 충성 경쟁이다. 만약 지금 민주당 당 대표 후보 세 사람 가운데 누가 대표에 된들 개혁이 될까? 김진표 의원은 관료들의 정책적 입장을 보여주는 사람이지 민주당의 중심적인 정체성을 대변할 수는 없다. 이해찬 의원은 권위적인 스타일이다. 민주적 리더십으로 성과를 낸 사람이 아니다. 호통치는 데 익숙한 사람이다. 송영길 의원도 지금까지 보여준 행보를 보면 최악이다. '86 세대'에게 사람들이 왜 실망하는지를 보여준다. 학생 운동과 노동 운동했던 흔적은 사라지고, 남은 건 권력 추구밖에 없다. 송영길 의원이 '이해찬 의원 나이가 대통령보다 많은데, 당 대표가 되면 대통령이 불편해서 어떻게 하냐'고 했다. 이건 자기가 더 굴종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밖에 안 된다. 일부 86그룹 정치인들은 한국 정치가 낳은 괴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당의 정치 노선을 두고 논쟁하지 않고, 정당을 청와대의 굴종적인 부속기관으로 만들겠다고 서로 경쟁하는 것이 어떻게 정당의 대표 선거인가? 청와대가 이런 당청 관계에 문제의식을 먼저 느껴야 한다. 당에서 나오는 다른 목소리를 불편해하는 것은 권위주의자들의 심성이다. 잘못되면 완전히 폐쇄적인 형태로 대통령의 정치적 조건이 좁아진다. 김기춘 비서실장, 이정현 당 대표 체제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랬다. 대통령은 당이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보장해줘야 한다. 이견을 거치면 합의가 튼튼해진다. 이견을 피하고 불편한 걸 싫어하면, 무엇이 결정돼도 사회적인 통합 효과가 없다. 자기들끼리 폐쇄적인 결정이니까.
프레시안 : 당 대표 선거 중에 다시 불거진 20년 집권론을 어떻게 보나?
박상훈 : 정당이 기능을 잘해서 20년을 집권한다면 누가 뭐라고 하겠나. 민주주의는 잘하고 못하는 것에 대한 평결을 시민이 한다. 그러나 지금 나온 20년 집권론은 문 대통령 지지율이 높으니까 열렬 지지자들을 향한 메시지다. 이런 20년 집권론은 권력에 몰두하는 태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또한 상대당을 절대악으로 가정한 점도 위험하다. 자유한국당이 싫더라도, 생각이 다른 시민집단의 지지기반이 있는 당이다. 한국당을 부정하는 건 동료 시민 가운데 상당 부분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의견이 달라도 존재를 부정하지 못하는 게 민주주의다. 그들을 부정하고 지지자들만 통합하는 건 권위주의다. 정책적 준비를 통한 20년 집권이 아니라 상대당을 악마화한 20년 집권론이라면 동료 시민에게 모멸감을 주는 것이다.
프레시안 : 내용면에서 문재인 정부에 실망스러운 점이 또 있다면?
프레시안 : 내용면에서 문재인 정부에 실망스러운 점이 또 있다면?
박상훈 : 이 정부의 특징은 권력의 가부장적 구조다. 마초적인 스타일의 권력관을 내장하고 있다. 한국 사회 큰 변화 중 하나가 여성 문제이고, 이 변화는 2012년 대선 때와는 달리 2017년 대선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세상은 변했는데, 정부가 남성 위주적인 정치관으로 무장한 것 같다. 동성애 문제 등에서 문 대통령 입장은 보수적이다. 문재인 정부 지지자들 사이에서 반(反)페미니스트적인 경향이 커지는 것도 걱정이다. 노동자와 여성들이 소외된다.
예컨대 여권 인사의 성폭력 문제가 제기되면, 이를 진보 세력을 분열시키려는 보수 세력의 기획으로 보는 시각이 나왔다는 점이다. 성폭력 피해자의 문제 제기를 정권에 대한 음모론과 연결 짓기도 한다. 이는 청와대 기류와 관련됐다고 본다. 의제의 실체적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그 문제가 몰고 온 파장이나 효과와 연결시킨다. 불법 촬영 반대 집회 논쟁도 마찬가지다. 여성의 삶에 정부가 책임 있게 반응해야 한다.
"개헌은 충분한 논의를, 선거제도 개혁은 당장 결정해야"
프레시안 : 의회 정치 위기의 다른 한 축은 자유한국당이다. 재건을 위해 김병준 비대위가 등장했는데, 김 위원장이 던진 화두가 '국가주의'다. 국가주의 극복이 의미 있는 보수 재건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까?
박상훈 : 솔직히 말하면 자유한국당에 별 기대가 없다. 어느 사회든 보수가 없을 수 없다. 지금 민주당이 단일당이 되더라도 그 안에서 보수와 진보가 분화할 것이다. 지금 우리 보수가 이정도 밖에 수준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정말 편하게 정치했구나 싶다.
그러나 만약 문재인 대통령이 박근혜 탄핵에 찬성한 정치 연합을 중심으로 이번 정부를 이끌었다면, 건전한 보수가 재편됐을 것이다. 보수 재편의 초점이 바른미래당이나 국민의당이 될 가능성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민주적 기틀을 튼튼하게 만들 기회를 상실한 건 집권당과 집권세력의 책임이 크다. 자유한국당이 저렇게 되는 것을 즐긴 청와대와 집권 세력에게도 책임이 있다.
프레시안 : 제도 문제에선 다당제와 내각제를 주장해왔다. 대통령 발의 개헌은 예정된 경로를 거쳐 실패했다. 개헌 동력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지금 시점에서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을 같이 엮는 건 둘 다 하지 말자는 것 아닐까?
박상훈 : 개헌은 단박에 되지 않는다. 개헌은 시민 사회가 합의할 때까지 충분히 논의하는 것이 유익하다. 논의를 계속하는 것과 개헌 일정을 잡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선거 제도는 개헌과 달리 지금 결정하면 된다. 선거법은 최소한의 합의가 있는 일반법이다. 사회의 다양한 의사가 정치 안에 들어오도록, 양당제를 완화하고 다원적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비례성이 높은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한 번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수 없다면, 징검다리 역할로 지역구 의석은 그대로 두더라도 비례대표 의석이라도 늘리는 과감한 합의가 필요하다.
정치자금법도 국회의원이 아닌 정치인에게는 돈을 못 내게 하니 문제다. 노회찬 의원의 비극적 죽음과 관련 있다. 이 대로면 정치는 돈 없는 사람은 못 한다. 정당법도 정당을 만드는 것을 사실상 불가능하도록 제한하는 법이다.
여야가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만들었으니, 1순위를 선거제도 개편, 2순위를 정당법, 3순위를 정치자금법으로 두고 단계별로 성과를 내어 20대 총선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양당제를 이대로 방치해 정치가 양극화하면 시민들 의견 가운데 적극적 찬성과 반대자만 과대 대표된다. 그건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당제 구조에서 연정이 일상화되는 정치구조로 변화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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