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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서 그랬다고?… 달콤한 연애의 이면, '데이트 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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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서 그랬다고?… 달콤한 연애의 이면, '데이트 성폭력'

[토론회] 한국여성의전화 "데이트 성폭력 실태 심각하다"

분명 타인에 대한 폭력이지만,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다는 이유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가정 폭력과 데이트 성폭력. 여대생 10명 중 4명꼴로 '데이트 상대자'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한다는 발표도 있지만, 데이트 성폭력은 여전히 '폭력'으로 잘 인식되지도, 겉으로 드러나 공론화되기도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데이트 폭력의 현황에 대해 짚어보고, 원인과 해결책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여성의전화는 25일 오후 서울 은평구 녹번동 한국여성의전화 교육장에서 '데이트 폭력 실태 조사 및 토론회'를 열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묵인되는' 성폭력 사건들을 고발했다.

데이트 성폭력, 전체 성폭력 범죄의 25퍼센트 차지

이날 조사를 통해 드러난 국내 데이트 폭력의 실태는 심각했다.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2007~2008년 이뤄진 총 954건의 성폭력 피해 상담 가운데 가해자가 데이트 상대자인 경우가 275건(25.3%)으로 가장 많았다. 직장 동료가 172건(18.0%), 모르는 사람 94건(9.8%), 친인척 87건(9.1%)이 뒤를 이었다. '성폭력은 가까운 사이에서 더 많이 발생한다'는 통설이 여기서도 확인된 셈이다.

▲ 한국여성의전화는 25일 오후 서울 은평구 녹번동 한국여성의전화 교육장에서 '데이트 폭력 실태 조사 및 토론회'를 열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묵인되는' 성폭력 사건들을 고발했다. . ⓒ프레시안

또 지난 9월부터 한 달간 서울지역 11개 대학 796명(여성 61.85%, 남성 38.2%)의 학생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벌인 결과, 10명 중 4명꼴로 데이트 중 강간·성관계 강요·원치 않은 신체 접촉·음담패설 등 성폭력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성폭력이 있었지만 관계를 유지하는 이유에 대해, 여성 응답자의 절반은 '항상 그러는 것은 아니어서'라고 대답한 반면, 남성의 45.9%는 '사귀는 사이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므로'라고 대답해 성별 간 인식차를 드러냈다.

여기서 '데이트 관계'란 이성애적 감정을 가지고 교제하거나 맞선·부킹·채팅과 같이 그 가능성을 전제하고 만나는 관계까지를 포괄한다. 데이트 폭력이란 데이트 관계에서 발생하는 언어적·정서적·성적·신체적 폭력을 의미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묵인되는 폭력

이 같은 조사 결과에 대해 한국여성의전화 문채수연 성폭력상담소장은 "친밀한 관계에서도 폭력이 발생한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가정 폭력과 데이트 폭력"이라며 "문제는 이러한 폭력이 연애·가족이란 이름 아래 행해져,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데이트 성폭력의 경우 피해 장소가 숙박업소나 가해자의 집인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성폭력이 발생해도 여성의 '동의가 있었다'는 오해를 받게 돼 경찰에 신고하거나 고소를 하기도 쉽지 않은 형편이다. '피해자가 숙박업소를 따라간 것은 성관계를 허용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회 통념으로 인해, 피해자는 성폭력을 당하고도 이를 문제 삼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문채수연 소장은 "피해자 자신도 성관계와 성폭력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상담 결과, '내가 원하지 않는데도 지속적으로 (성관계를) 졸라서', '만날 때마다 성관계를 요구해서 어쩔 수 없이', '경제적 도움을 받아서', '폭행이 두려워서' 등 원치 않는 성관계 요구에 응하는 사례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서 "데이트 관계라는 특성 상, 상대방의 저항을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이나 협박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성폭력'이 아니라 '성관계'로 여겨지기 쉽다"며 "데이트 성폭력에 있어서 성과 폭력, 자발적인 동의와 강제의 미묘한 차이를 준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데이트 폭력, 가정 폭력으로 이어질 확률 높아

데이트 폭력이 가정 폭력으로 이어질 확률도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여성 살인범의 특성, 범죄 이유, 그리고 재활 가능성'이라는 제목의 법무부 보고서를 보면, 청주여자교도소에 수용된 여성 재소자 531명 중 133명(30.5%)이 남편을 살해했는데(2004년 1월 기준), 설문 조사 결과 이들 중 '매월 1회 이상 폭행당했다'는 응답자가 66.6%, '결혼 전에도 폭행에 시달렸다'는 응답자가 2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한국여성의전화 문채수연 성폭력상담소장. ⓒ프레시안
문채수연 소장은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운영하는 피해자 보호시설 입소자에 대한 상담 결과, 아내 폭력 피해 여성 84명 중 17.3%가 '결혼 전부터 구타가 있었다'고 응답했다"며 "이는 한 번 폭력이 개입된 관계는 회복되기 어렵고, 가정 폭력으로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가부장제 사회의 이중적 성의식'을 데이트 성폭력이 지속되는 이유로 지적했다. 문채 소장은 "남성의 성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여성은 혼전순결이나 지켜야 한다는 이중적 성 의식이 한국 사회에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상담 사례를 보면, 대부분 가해 남성들은 '성관계 사실을 부모에게 알리겠다', '부모와 회사에 임신과 낙태 사실을 알리겠다', '성관계 장면을 찍은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며 피해자를 협박했다"라며 "이는 여성의 인격과 존재성을 몸·성으로 환원하는 것으로, 성관계에 관련한 협박 범죄는 우리 사회의 이중적 성규범이 없다면 불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피해는 많지만 처벌 방법은 거의 없어…관련법 마련 시급

문제는 데이트 성폭력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 및 피해자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문채수연 소장은 "폭력이 발생한다 해도 데이트 관계라는 이유만으로 '폭력'으로 인지되기 어렵고, 눈에 보이는 피해가 없는 경우, 관련법이 없기에 처벌조차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법 제도는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대해 법적 개입을 자제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왔다"며 "'개별적 행위'를 중심으로 불법성을 판단하는 근대법 체계에서, 데이트 폭력에 내재된 권력적 착취의 성격을 반영하기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어서 "피해자의 '경험'을 반영하고 피해자의 '요구와 필요'에 부응할 수 있는 법적 보호 장치를 마련하는 방안이 요구된다"며 "가해자에 대한 형사 제재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피해의 유형과 정도에 따라 '피해자 보호 명령'이 활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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