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발표된 세제 개편안에 대해 촛불 정부다운 사회경제정책을 위한 증세 의지가 약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평범한 촛불시민의 눈에도 지금 우리 사회는 큰 규모의 재정 투입이 시급한 분야들이 넘친다. 그러므로 증세를 통한 재정 확보의 의지나 구체적 계획이 보이지 않을 때 실망의 분위기가 퍼지는 것은 당연하다. 대학 개혁도 상당한 재정 투입 없이는 성과를 거두기가 불가능하니 개혁을 열망하는 이들의 시름도 깊어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어쨌든 고등교육 재정 확보의 난관을 뚫고 나갈 실질적 방법을 찾아내야만 한다.
그러자면 증세 이슈를 정반대의 관점에서도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대규모 증세에 따른 기득권층의 반발을 포함한 각종 부작용은 취약한 현 정부로서는 피해야 할 정치적 위험 요인이다. 열혈 촛불 시민이라도 정부의 조심성을 아예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더 심각한 위험도 있다. 정부가 적극적 재정정책을 쓸 때 효과 만점의 분야도 물론 있지만, 여러 가지 현실적 요인으로 효율적 목표 달성이 불투명한 분야도 있다. 후자에 속하는 분야에 문재인 정부가 과감한 재정 투자를 꺼리는 것은 납득할만하다. 실상 고등교육도 그러한 분야이다.
전문가가 아닌 나의 상식적인 판단이지만, 노인 기초연금 인상은 바로 효과가 나타날 대표적인 정책 과제이다. 한국의 노인은 거의 절반이 빈곤하기 때문에 기초연금 인상은 긍정적 영향을 크게 미칠 것이다. 어느 사회과학자가 세계 1위의 노인 자살률에 대해 한 말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우리 주변의 70, 80대 노인들은 식민지 말기에 태어나 전쟁 통에 고생하며 어렵게 살아남아 우리 사회에 기여한 분들인데, 이분들이 목숨을 버릴 만큼 생활고를 겪도록 방치하는 일은 또 하나의 집단학살과 다름없다고.
젊은이에게 당연한 권리인 연애나 결혼조차 포기하고 있는 청년층에 대한 투자도 노인층 보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러나 청년을 위한 재정 투입은 그 효과가 쉽게 확인되지 않는다. 저출산이 결코 청년 문제의 전부는 아니지만, 가령 지난 10년 동안 저출산 대책에 쓰인 엄청난 정부 재정이 별로 효과가 없었다는 사실만 들어도 충분하다. 잘 조율된 다각도의 장기 정책이 아니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다. 어떤 전문가는 정부의 영유아 보육 지원책만으로 역부족임을 꼬집는다. 한국의 남성 배우자가 하루에 가사를 분담하는 시간은 지난 10년간 고작 9분이 늘어 여전히 하루 50분에 못 미친다고 한다. 가사 분담률이 선진국 수준에 근접하도록 직장생활 여건이 바뀌어야 할뿐더러 성평등 문화도 착실하게 뿌리내려야 비로소 아이들이 많이 태어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청년 문제의 절실함 때문에 당장 효과가 나지 않아도 다양한 정책을 통한 적극적이고 꾸준한 재정 투입은 불가결하다.
대학에 대한 재정 투입도 효과를 확신하기가 어렵기는 청년 정책과 유사하다. 물론 OECD 국가 중에서도 매우 낮은 정부 예산의 고등교육 지출 비중, 대학생 1인당 교육비 등의 지표만 봐도 대학에 대한 재정 투입 요구의 타당성은 입증된다. 그러나 만약 현 정부가 연 1조의 추가 재정을 배정하여 당장 내년부터 쓴다면 일이 척척 풀려갈까?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 대학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사립대학 운영의 투명성과 민주성 확보가 앞서지 않으면 재정 투입의 효율성은 바닥을 맴돌 것이다. 재정을 쏟아부을 급한 곳이 줄을 선 상황에서, 정부가 고등교육 예산 증액의 필요성은 인정하더라도 선뜻 실행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지난 4월 26일자 칼럼(☞관련기사 : 정규직교수의 자발적 양보가 대학개혁의 첫걸음)에서도 말했지만, 60세 이상 대학 전임교원들이 급여 동결 등 희생적인 자세를 보임으로써 정부의 고등교육 투자를 압박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안이다. 전임교원들의 자발적 양보는 정규직과 비정규직교수를 아우르는 교수사회의 단결력과 자치능력을 크게 높여 개혁 주체로서 스스로의 역량을 키우는 성과도 동시에 기대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7월 중순 '대학 시간강사법'의 타결은 시사점이 많다. 당사자인 시간강사들부터 반대한 시간강사법(고등교육법 개정안)은 2011년 이명박 정부에서 국회를 통과한 후 네 번이나 시행이 유예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법 시행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각 대학들이 시간강사들을 대량해고하는 등 부작용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마침내 올 3월 교육부가 이해 당사자들을 참여시켜 구성한 '대학 강사제도 개선 협의회'가 15회의 논의를 거쳐 합의된 개선안을 내놓았다. 아직 미흡한 내용도 많지만, 다행스러운 합의였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남는다. 이 합의안이 제대로 실현되려면 돈이 든다. 그러나 지금도 등록금 동결에 불만이 큰 대학들이 정부의 재정 분담을 요구하며 반발할 때 과연 국회에서 법안이 원만하게 통과될지 장담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국교련(전국국립대학교수회연합회), 사교련(한국사립대학교수회협의회) 등 전국의 교수들이 나서면 어떨까. 60세 이상 전임교수의 급여 동결을 통해 얻어지는 재원으로 대학의 재정 분담을 충당하자고 제안하고, 그 대가로 정부의 고등교육 투자 약속을 받아내면 어떨까. 촛불혁명의 진전을 위해 지극히 뜻있는 사건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나아가 더 적극적으로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묘수도 구상할 수 있다. 대학 전임교원의 정년을 단축하는 동시에 늘리는 길이다. 대학 교원의 충원을 위해 현행의 교수 정년을 단축하지만, 동시에 고령화시대에 걸맞게 65세가 넘어서도 대학에서 연구와 교육을 계속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개혁이다.
교수 정년을 63세로 줄이되 65세까지는 급여 외에 현역 교수로서 누리는 모든 권리와 혜택을 그대로 제공하는 것이 좋은 방안이다. 가령, 연구실 배정, 교수로서의 권리와 의무, 연구비 신청 자격 등 각종 혜택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신임교수 초빙 때의 투표권도 당연히 인정된다. 63세 이후의 급여는 가령 기존 급여의 40% 이내로 제한하되 공무원연금이나 사학연금 등 퇴직연금 수령이 가능하도록 하면, 실질적인 수령액은 기존 급여의 70-80% 수준이 될 것이다. 대신에 강의 의무 시수는 줄여주고 남는 과목은 새로 채용될 젊은 교수가 담당하도록 돌린다. 강의를 아예 면제받는 대신 급여를 더 삭감하는 방식 등 해외 대학의 단계별 은퇴(phase-out retirement)에 해당하는 유연한 제도 도입도 가능하다. 이렇게 된다면 정년 단축이 견디기 힘든 불이익이 아니어서 당사자들의 거센 반발도 무마하기 쉽다. 단, 63세에 퇴임하더라도 연금 수령의 자격요건인 근무연한 20년을 채우지 못하는 교수에 대해 별도의 대책이 따라야 한다. 특히 인문사회계는 초임 교수의 평균연령이 40세를 훌쩍 넘긴지 오래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실태조사에 기반한 제도 설계가 중요하다.
이런 개혁을 통해 확보되는 재원은 정부가 내놓을 대응자금과 함께 비정규직교수의 처우 개선과 전임교원 추가 채용에만 써야 한다. 그렇게 하면 교원 확보율을 높여 연구와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사학의 경우 사학연금 가입자가 늘어나 급격한 대학 구조조정에 따른 사학연금의 재무구조 악화도 막을 수 있다. 퇴임이 가까운 사립대학 교수-나처럼 국립대학법인 교수도 포함한다-의 입장에서는 이대로 가면 대학 교직원의 급감으로 사학연금 재정이 결국 흔들릴 가능성이 높아 이런 개혁이야말로 노후 보장이라는 자신의 장기 이익에도 부합한다. 정확한 계산은 전문가가 따로 해야겠지만, 대응자금을 포함하여 이렇게 확보될 재원은 상당한 규모여서 파급력이 대단할 것이다.
이런 연착륙 방식의 정년 단축과 함께 65세 이후에도 계속 연구하고 가르칠 수 있는 근무연장 제도를 마련하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요즘 65세에 퇴임하는 학자들은 몇 년 더 대학에 남아 연구하고 활동할 능력을 갖춘 건강한 분들이 많다. 학문 분야마다 사정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이들을 일률적으로 퇴임시키는 제도는 변화한 현실에 맞지 않아 사회적 손실이 커지고 있으며 당사자들은 정서적 상실감이나 고립감을 겪는다. 아무리 '100세 시대'라지만 평생 연구실과 실험실, 강의실에서 살던 교수로서는 퇴임 후 제2의 인생을 개척하기도 만만찮다. 이 모든 면을 고려한 제도 개선의 때가 무르익었다.
예를 들어, 만 65세가 되는 교수들의 근무연장 신청을 받아 지난 10년간의 연구업적 평가를 통해 근무연장 여부를 결정하되 일단 2년 계약에 1회에 한해 재계약하는 표준적 모델 제시도 가능할 것이다. 이 제도를 실행하면 63세에 정년을 하는 교수들이 65세가 될 때 대부분 대학에 남으려 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어차피 65세 이후는 전임교원의 권리는 없어지며 강의를 담당해도 시간강사의 급여를 받고, 학문활동을 계속하기에 편리한 여건과 제도적 배려를 제공받을 뿐이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나이든 학자들이 캠퍼스에 넘쳐나 후학들을 곤혹스럽게 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근무연장 신청을 모두 받아들이기는 어렵겠지만, 정년단축의 불이익을 보상하는 뜻으로 과도기적으로 근무연장 교수의 비율을 높게 잡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현재 교수 구성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베이비붐 세대가 향후 10년 동안 대거 은퇴하는 과정에서 인력수급에 미칠 악영향을 완화하는 부수적 효과도 예상된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제도 설계를 상세하게 따지는 것은 부질없다. 정년단축과 근무연장 제도의 도입은 일단 이해 당사자들의 합의만 끌어낼 수 있다면 전면적인 대학 개혁에 대한 관심과 지지를 폭발적으로 이끌어낼 것이다. 이런 제도를 자발적으로 구상하고 실행하면서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교수집단의 자치능력이 강화되고 대학의 자율성이 실질적으로 확보되며, 정부와 시민사회도 대학교수들을 믿고 과감한 고등교육 투자를 지지하고 약속하게 될 것이다.
물론 해결할 문제들은 많다. 제도 개편을 위한 법률 검토는 물론이고 사학연금과 공무원연금에 미칠 영향에 대한 전문가의 깊이 있는 분석은 필수이다. 한꺼번에 해치우기 어려우니 단계적 실행 방안도 마련해야 하고, 늘어나는 연구실 수요 등 크고 작은 준비가 필요하다. 제도 혁신에 앞장서는 대학에 대한 장려책과 함께 개혁을 악용하는 대학에 대한 감시 및 대비책도 세워야 한다. 그러나 제도 혁신에 따르는 어려움은 지금 한국 대학의 깊은 위기에 비하면 모두 지엽적 장애물일 뿐이다. 정부가 먼저 국공립대 교수들을 대상으로 설득작업을 펼칠 수도 있지만, 국교련이 사교련과 공동으로 방안을 만들어 주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이런 해법이 폭염에 더위를 먹은 책상물림의 몽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미 1990년대 말 미국 대학에서 비슷한 발상이 나온 적이 있다. 미국에서 사실상 교수노조 역할을 하는 전미대학교수협회(AAUP, The American Association of University Professors)의 회장을 역임한 케리 넬슨(Cary Nelson)이 '정년보장을 받은 급진주의자의 선언'(Manifesto of a Tenured Radical, New York UP, 1997)의 11장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제시한 12가지 과제 중 11번째 과제로 유사한 프로그램을 논한 바 있다. 물론 미국 대학은 오래 전에 정년을 철폐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은 좀 다르고, 이후 넬슨의 제안이 실천에 옮겨졌다는 얘기도 듣지 못했다. 그러나 한층 더 절박한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에서는 멋지게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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