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30년 전, 희대의 언론인 테러 사건이 일어났다. 1988년 8월 6일 당시 <중앙경제> 사회부장이던 오홍근은 출근길에 운동복을 입은 청년 두 명을 마주쳤다. 그들은 별안간 오 부장에게 회칼을 휘둘렀다. 허벅지에 큰 자상을 입은 오 부장은 정신을 잃었다.
백주대낮에 벌어진 칼부림 사건의 범인은 군인이었다. 국방부 조사에 따르면 테러는 철저히 계획된 것이었다. 오 부장이 <월간중앙>에 '청산해야 할 군사문화'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하자, 이에 불만을 품고 테러를 꾸민 것이었다.
군인이 민간인을 테러한 초유의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군법재판은 범행을 공모한 군인들에게 집행유예, 선고유예 등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죄질로 봐서는 엄중 처벌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범행 동기가 개인에 사리사욕이나 이기심에서가 아니라 군을 아끼는 충정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라며 선고 이유를 밝혔다. '군을 아끼는 충정'에서 한 군인들의 행동은 분명 기행이었다. 야만적인 군사문화가 낳은 야만적인 사건이었다.
'오홍근 테러 사건' 30년을 맞아 이 사건을 기억하는 언론인 출신 아홉 명이 모였다. 이들은 '88 언론테러 기억모임'이라는 이름의 모임을 결성하고 비정상적인 군사문화의 청산을 촉구하기로 했다.
6일에는 최근 출간된 오 전 부장의 책 <펜의 자리, 칼의 자리>(메디치미디어)의 출판기념회를 겸해 '오홍근 테러 30년, 군사문화는 청산되었나'는 주제의 대담회를 마련했다. 오 전 부장 사건을 기억하는 언론인들과 김종대 정의당 의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등이 참석했다. 마침 '계엄령 모의 논란'으로 기무사 개혁에 대한 요구가 높은 때 마련된 행사인 만큼 참가자들은 군사 문화 개혁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역사학자 한홍구 성공회대학교 교수는 "이번에 계엄령 사태도 있었지만, 평소 강의 등에서 '광주 사태가 재발할 가능성이 있을지' 등의 질문을 받으면 저는 안타깝게도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며 "우리는 부당한 명령을 받았을 때 거부해야 한다는 군법 교육을 받지 않는다. 부당한 명령이 범죄라고 교육하지 않는 한 재발 방지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홍근 테러 사건을 기억한다는 것은 이 사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의 문제"라며 "군사문화를 제대로 청산하고 우리사회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최근 국방부가 발표한 기무사 개혁안에 대해 "맹독이 있는 독사를 우리에 가두거나 이빨을 뽑지 않고, 독성을 30%만 줄이자고 하는 꼴"이라며 "1990년대 보안사 민간인 사찰 폭로 후 노태우 대통령이 바꾼 것과 똑같다"고 비판했다.
특히 기무사의 새 명칭으로 '국군정보지원사령부' 등이 거론되는 데 대해 "기무사가 수집한 정보란 것은 민간인 사찰과 같은 안 해도 되는 수집으로 얻어진 정보이기 때문에 그것은 정보가 아니"라며 "21세기 문명 사회에서 비교대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기관을 우리가 갖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워할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기무사 개혁이 중요한 게 아니다. 군인의 윤리와 도덕을 세우는 원대한 개혁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마지막으로 단상에 선 오홍근 전 부장은 "군사 문화는 승리, 능률을 추구하는데 이 가치가 병영 밖에 나와서 일반 사회의 여러 가치와 충돌하면 반드시 탈이 나게 돼 있다"고 했다. 오 전 부장은 "군사문화는 기본적으로 '졸권'(卒權·졸병의 기본권)이 보장이 안 돼있다. 그런 문화가 오랫동안 군대 내에서 적폐를 쌓아왔다. 그런 문화가 법원까지 갔다"며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 농단' 사태를 꼬집었다.
오 전 부장은 군사 문화 청산을 위해선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언론이 제자리에 서서 제 구실을 할 때 군사 문화도 꼬리를 감추게 된다"며 "언론이 바로 서려면 정치권력, 자본권력뿐 아니라 '내가 조작하려고 하면 반드시 조작된다'라고 굳게 믿는 숙달된 여론 조작꾼들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대중 정부 공보수석, 국정홍보처장을 지낸 오 전 부장의 <펜의 자리, 칼의 자리>는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잡고 청산되지 못한 군사문화를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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