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문재인 정부가 '8.2부동산 대책'(실수요 보호와 단기수요 억제를 통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한 지 1년이 지났다. 요약하면, '투전판으로 전락한 청약시장을 실수요자 위주로 재편하고, 양도세를 높여 투기유인을 줄이며, 투기의 진앙 역할을 하고 있는 강남 재건축 시장에 투기세력이 진입하는 걸 억제하고, 금융규제를 통해 과잉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으로 투입되는 총량을 억제하겠다' 정도가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8.2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데 이어 주거복지로드맵과 가계부채종합대책을 연이어 내놓으며, 부동산 시장 안정에 힘을 쏟았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패키지가 주요한 탓인지, 뜨겁게 달아오르던 서울 및 수도권의 주택시장은 거래량과 가격 양 측면에서 소강상태에 놓였다.
물 건너간 보유세 개혁, 고개 드는 부동산 투기심리
하지만 잠잠하던 서울의 아파트 시장이 움직이는 기색을 보인다.(☞ 관련 기사 : 서울 아파트값 다시 꿈틀…"3.3㎡당 2400만원 돌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서울의 아파트 시장이 꿈틀대는 것일까?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미칠만한 큰일이 있었던 것 아니다. 재경개혁특위의 알량한 종부세 개혁안을 기재부가 뭉개 보유세 개혁이 사실상 형해화(形骸化)된 사태를 제외하곤 말이다.
부동산 시장 참여자들은 부동산 시장에 정부 정책이 미치는 효과를 절대 간과하지 않는다. '정부에 맞서지 말라'는 시장 격언이 까닭 없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시장 참여자들은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에 대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관점을 가졌는지 정책을 통해 판단한다. 그리고 시장 참여자들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철학과 관점에 대해 가늠하는 기준은, 단연 보유세에 대한 입장이다. 양도세도, 청약규제도, 금융규제도, 재건축 관련 규제도,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도 아닌 보유세 말이다.
문재인 정부가 보유세 개혁에 별 뜻과 의지가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시장이 바로 반응하는 게 그 방증이다. 시장은 보유세 개혁에 별 관심이 없는 문재인 정부를 보고, 현(現) 정부 임기 안에는 부동산 불로소득의 사전적 차단이나 사후적 환수가 여의치 않을 것이고, 따라서 부동산에 투기하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문재인 정부는 '토지 공개념 개헌'이라는 '용의 머리'로 시작했지만, '보유세 개혁 포기'라는 '뱀의 꼬리'로 귀결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시장은 토지 공개념 개헌보다 보유세에 훨씬 관심이 많다.
재벌-지주 동맹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준 박원순 시장
용의 머리를 그리려다 뱀의 꼬리를 그린 문재인 대통령이 시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준 데 이어, 박원순 시장은 부동산 시장에 휘발유를 부어 시민들을 경악시켰다. 박 시장은 지난 10일 싱가포르에서 "여의도를 통으로 재개발하겠다"고 발언하는가 하면, 서울역-용산역 구간을 지중화하고 그 위에 마이스(MICE. 회의·관광·전시·이벤트) 단지와 쇼핑몰 등을 짓겠다고 공언해 여의도 및 용산의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켰다.(☞ 관련 기사 : 대권 길트는 박원순 vs 집값 소방수 김현미)
박원순 시장은 지금처럼 부동산 불로소득을 사전적으로 차단하거나 사후적으로 환수할 장치들이 극히 미비한 상태에서 서울시의 수장이 노른자위 땅의 개발을 천명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정녕 모른단 말인가. 나는 부박 시장이 '대권 플랜'을 가동한 것인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박 시장의 계획과 공언이 부동산 시장을 혼란에 빠트리고 재벌-지주들에겐 꿈과 희망을, 땅이 없는 시민들에겐 절망과 고통을 안겨줄 것이란 사실만은 분명히 안다.
부동산 공화국 해체에 나설 생각이 별로 없어 보이는 대통령과 오히려 투기 세력에게 먹잇감을 던져주는 서울시장을 바라보는 심정은 참혹하고 답답하다. 대한민국이 부동산 공화국이라는 오명과 작별하는 날이 오긴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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