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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 마르셀리나와 천사들…이번 겨울은 따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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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 마르셀리나와 천사들…이번 겨울은 따뜻할까?

[포토스토리] 장애 영·유아 생활 시설 '디딤자리' 이야기

힘이 센 예원이가 오늘의 타깃을 정했다. 카메라 가방. 집요하다. 잠깐만 한눈 팔면 감쪽같이 구석으로 끌고 간다. '미소 천사' 태우는 '살인적인' 미소로 인기가 많다. 그런데 남자가 얼굴을 갖다 대면 "애~"하고 인상을 찌푸린다는 이 녀석이 무릎에서 싱글벙글 웃으며 좀처럼 떠나질 않았다.

여기선 6살 큰 언니 하늘이가 대장이다. 예쁜 얼굴과 새침한 말솜씨를 가진 하늘이는 처음 본 사람을 놀리는 재미에 푹 빠졌다. 성은이는 슬그머니 기어와 귀에 소리 지르고 도망가는 장난에 잔뜩 신이 났다. 외부인을 자주 볼 수 없는 아이들에게 처음 만나는 사람은 호기심의 대상이다.


▲ '디딤자리의 메신저' 하늘이. ⓒ프레시안

하나씩의 장애와 사연을 가진 아이들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있는 6세 미만 장애 영·유아 전용 시설 디딤자리(원장 마르셀리나 수녀)에는 장애 때문에 '버려진' 서른 명의 아이들이 살고 있다. 대개 다운증후군이나 선천적 경증 뇌병변을 가지고 태어나 젖도 떼기 전에 부모 손을 떠난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재활에 꼭 필요한 미술, 음악, 언어, 물리 치료 등을 배우고 받는다.

아이들은 수녀와 보육사를 '엄마'라고 부른다. 디딤자리 아이들의 엄마는 10명도 넘는다. 부족하게 태어났지만 부족한 것 없이 채워주는 곳. '미소 천사' 태우와 '무한 체력' 다혜, '질투의 화신' 가영이와 '잠자는 숲속의 왕자' 한민이가 보호와 사랑을 받고 지낼 수 있는 곳이 여기 디딤자리다.

▲ 마르셀리나 수녀가 아이들과 꼬리잡기 놓이를 하고 있다.. ⓒ프레시안

▲ '미소 천사' 태우는 뇌병변으로 다리가 안쪽으로 오그라들었다. 여러 차례의 수술을 했지만 걷지 못한다. ⓒ프레시안

'디딤자리의 S라인' 인희는 5년 전 여름, 돌도 지나지 않은 채 주차장에 버려졌다. 옆에는 쪽지가 하나 있었다. 사연은 짧았지만 절박했다. 엄마는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었고 도움을 청할 곳을 알지 못했다. 결국 아이는 여러 손을 전전하다 이곳 디딤자리에서 안식처를 찾았다.

디딤자리에는 같은 처지의 아이들이 많다. 인희처럼 모두가 갖는 가족을 갖지 못한 아이들은 하나씩의 장애와 하나씩의 사연을 갖고 있다.

장애 가진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이유

엄마가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이었을까?

마르셀리나 수녀는 사회적 편견과 막대한 양육·치료 비용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아이들을 데리고 밖에 나가면 전염병 환자처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더 심한 편"이라며 비장애인(혹은 잠재적 장애인)의 싸늘한 시선부터 꼬집었다.

"장애아들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요. 또 사회의 일원으로 같이 살아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이 점을 모두가 아는 것이 장애아를 고아로 만들지 않는 시작입니다."

▲ 아이들은 하나씩의 장애와 사연을 갖고 있다. ⓒ프레시안

비용도 문제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수술할 경우 수술비뿐만이 아니라 입원비, 물리 치료비 등 적지 않은 돈이 든다. 평범한 가정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액수다. 아이가 선천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도 기초생활보장수급대상자가 아니면 병원비 등의 혜택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환경에서 '장애아 입양'은 꺼내기 쉽지 않은 얘기다. 하지만 마르셀리나 수녀는 "장애아의 입양에 사회가 관심을 가질 때가 됐다"고 말한다. 그가 기자에게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다. 아이는 가정에서 각별한 사랑을 받으며 자라는 게 제일 좋다는 게 그의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장애아의 입양에 비해 장애아의 입양은 사례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마르셀리나 수녀는 "조금 다른 아이들에 대한 조금 다른 생각이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는 입양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장애아 입양 문제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4대강 살리기도 복지예산 줄인다면 반대"

ⓒ프레시안
디딤자리는 외부 도움 없이는 운영이 쉽지 않다. 특히 수술비 등 정부에서 일일이 지원하지 못하는 비용이 발생할 때 경제적 후원이 아쉽다. 아이들 중에는 심장이 약한 아이들이 많은데 매번 병원, 기관 등을 수소문해서 어렵게 수술을 시켰다.

이뿐만이 아니다. 기저귀 같은 생필품, 건물 청소, 식사 보조, 목욕 봉사 등 자원본사의 손길도 필요하다. 몸이 불편한 아이들이어서 두 배 이상의 관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보육사들의 처우도 고민거리다. 하루 12시간씩 일하면서도 급여는 쥐꼬리만한 수준이다. 처우 때문에 보육사가 바뀌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리 없다. 엄마가 매일 바뀌는 아이를 상상해 보라. 그러나 보육사의 급여는 3년째 동결됐다.

수녀의 입에서 정치 얘기가 나오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요즘 4대강 사업 한다지만 그거 해서 복지 예산 줄어들면 우리 아이들 힘들어지는 거니까 좋게 생각되지 않아요."

실제로 보건복지가족부는 지난 10월 28일 지방자치단체에 공문을 보내 장애인 활동 보조금의 신규 신청자를 받지 않도록 했다. 예산 부족이 이유였다. 장애인 단체는 예산 확충이 아닌 신규 신청자 가입 금지라는 해법을 꺼낸 복지부를 꼬집었다. (☞관련 기사 : "4대강에 빠진 장애인…삽질 못하면 사람 아니냐?")

특수교사 확충도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해 특수교사의 수를 2016년까지 매년 649명씩 증원해 법정 정원에 맞추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정규직으로 전환된 기존 기간제 교사 등을 빼면 올해 신규 채용된 특수교사는 16명에 불과했다. 물론 경제 위기와 예산 부족이 이유다. 디딤자리 아이들도 곧 학교에 갈 나이가 된다. (☞관련 기사 : '삽질' 돌 맞은 장애아?…예산 부족 특수교사 확충 못해)

그룹홈을 아시나요?

마르셀리나 수녀의 머릿속에는 아이들을 끝까지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프레시안
그는 요즘 '그룹홈'에 관심이 많다. 그룹홈은 혼자 살기 힘든 사람들이 모여 공동 생활하는 집. 보통 무연고 청소년, 미혼모, 성인 장애인들이 그룹홈을 꾸리고 산다. 디딤자리는 6세 미만 전용 시설이기 때문에 6살이 넘으면 살 수가 없다. 그런데 성인 시설은 아이들이 자라기에는 어려운 환경인 게 사실이다. 여러 시설을 옮겨다니기도 쉽다. 아이의 정서에 좋을 리 없다.

현재 인희, 수현이 등 4명의 아이들은 디딤자리 옆에 얻은 집에서 자립 생활에 적응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시에서 인가를 받지 못했다. 인가를 받으려면 5명의 아이들이 있어야 한다. 인가를 받으면 보육사의 급여와 아이들 생계비가 지원된다. 그런데 서울시는 아직 18세 미만 장애 아동의 그룹홈 인가를 내 준 경험이 없기 때문에 절차는 간단치 않아 보인다. 그래도 마르셀리나 수녀는 내년(2010년) 즈음 인가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겨울이다. 아이들은 한 살씩 나이 먹는다. 마르셀리나 수녀는 그룹홈을 마련하기도 전에 이미 떠난 5명의 아이를 떠올린다. 성인 시설로 보내면서 느꼈던 안타까움을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다. 그룹홈에 대한 기대가 큰 이유다. '디딤자리'는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땅에 두 발 딛고 서서 희망을 꿈꿀 수 있게 하는 집이란 뜻이다. 그는 이 이름을 계속 쓰기를 원한다.

마르셀리나 수녀와 천사들의 겨울이 따뜻하길 바란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프레시안

말괄량이 소녀, 수녀가 되다

▲ 기도하는 마르셀리나 수녀. ⓒ프레시안
마르셀리나 수녀(45·본명 안미숙)는 디딤자리의 원장이다. 아이들을 좋아해서 자처한 '엄마 노릇'이 벌써 5년째다.

늘 마르셀리나 수녀는 살림꾼이 다 됐다. 그가 장을 보러 가서 늦게 돌아온다면 사은품을 받기 위해 줄에 선 것이 분명하다. 수녀복을 입은 채로 줄 서는 게 이젠 부끄럽지 않다.

마르셀리나 수녀는 부산에서 태어났다. 노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도 조용필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요즘은 티켓이 비싸 콘서트 한 번 못가지만 예전에는 빠지지 않고 따라다녔다. 호기심도 많았다. 한 번은 새로 지은 63빌딩을 보겠다고 밤기차로 상경했다.

마르셀리나 수녀는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가톨릭 교구청에서 일하면서 수녀의 삶에 매력을 느껴 결국 1990년 스물다섯 살의 나이에 수녀가 됐다. 아마도 그가 수녀가 되리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의 결정을 말리는 사람도 없었다.

마르셀리나 수녀의 집안 사람들은 모두 가톨릭을 믿었다. 올해 의거 100주년을 맞아 조명 받은 안중근 의사(세례명 도마)의 조카가 그의 할아버지다. 그의 할아버지도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기다리다 2007년 세상을 떴다. 끝내 할아버지의 생사는 확인하지 못한 채….

벌써 수녀 생활 20년. 후회해 본 적은 없다. 장애를 가졌기에 부모에게 버림을 받은 아이들을 사회에서 다시 버림받게 할 수 없다는 마르셀리나 수녀는 가톨릭의 '까리따스(Caritas·자선)' 정신을 늘 가슴에 새긴다.

아이들의 튼튼한 울타리가 되어 주고 싶다는 수녀 마르셀리나. 그는 오늘 새벽에도 낡은 앞치마를 수녀복 위에 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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