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제품에 명기된 PE, PP, PET, PS, PMMA, PVC, PVA, PVDC, PF, MF. UF, EP, PUR 등 난해한 약자는 모두 유형별 플라스틱의 이름이다. 편리하긴 하지만, 사용 후 처리가 난감한, 어딘지 원전의 사용후핵연료를 연상케 하는 플라스틱으로 세계가 신음하고 있다. 세계 폐플라스틱 56%를 수입하던 중국이 수입 중지를 선언하자, EU와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도 쓰레기 대란으로 몸살을 앓았다. 그러나 문제는 훨씬 심각하다.
캘리포니아대·조지아대·우주홀해양연구소 공동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매년 8.4%씩 증가하는데 이는 GDP성장률의 2.5배다. 즉, 생활의 편리를 위해 우리는 과도하게 플라스틱을 사용하고 있다. 플라스틱은 1950년 이후 66년 동안 전 세계에 83억 톤이 생산되었으며, 이 중 63억 톤이 쓰레기로 폐기됐다. 플라스틱 재활용 비율은 9%에 불과하고, 12%는 소각되었다. 나머지는 매립되거나 바다와 벌판에 방치되었는데, 이로 인해 이미 20년 전에 남한 면적 14배의 플라스틱 섬이 태평양에 만들어졌으며, 지구의 모든 섬과 대륙에 플라스틱 쓰레기가 축적되고 있다.
플라스틱은 생산된 지 고작 100년이지만, 지구는 이미 병들었고 몇백 년의 자연분해 기간이 걸리는 플라스틱은 일절 감소하지 않았다.
2018년 3월 IPBES(유엔생물다양성과학기구)는 인류가 지금처럼 남획을 50년간 계속하면 모든 바닷물고기가 사라진다고 경고했다. 2017년 1월 '새로운 플라스틱 경제, 플라스틱의 미래 재고(The New Plastics Economy Rethinking the future of plastics)'라는 다보스포럼 보고서는 '2050년에는 바다에 있는 물고기의 총 중량보다 플라스틱의 총 중량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두 보고서를 합하면, 그물에 물고기 대신 플라스틱만 걷히는 암울한 미래가 우리 앞에 있다.
방치된 플라스틱은 5mm 미만의 미세플라스틱으로 분해되며 시간이 지날수록 마이크로미터(µm. 100만분의 1m)와 나노미터(㎚. 10억분의 1m) 크기로 쪼개져 바다와 육지의 모든 생물에 흡수된다. 그리고 결국 인간에 몸에 쌓이는데, 이미 모든 인류의 몸에서는 플라스틱이 검출되고 있다. 치약과 화장품, 세제도 한 몫하는데 150ml 제품에는 280만 개 이상의 미세플라스틱이 들어 있다. 우리나라 남해의 수산물 97%에서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되었고, 인천과 경기 일대 해안, 낙동강 하구는 세계 2~3위 미세플라스틱 오염지역이라는 보고도 있다.
이 심각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재활용 또는 업사이클링을 강화하거나 생분해 가능한 바이오플라스틱 사용을 장려하면 될까? 아쉽게도 모두 답이 아니다.
플라스틱 재활용을 강조해 마치 친환경 기업인 양 더 많은 상품의 소비를 유도하는 소비자본주의에서 재활용과 업사이클링은 플라스틱 소비 지속 정책일 뿐이다. 마치 화석연료 사용 중 발생하는 탄소 포집·저장·활용 기술인 CCUS가 높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탄소저감 효과는 지극히 낮듯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지구의 허파인 브라질 열대우림과 파라과이 숲을 무너뜨리면서 원료를 얻는 바이오 플라스틱을 대안으로 고려하고 있지만, 이 역시 소비자본에 의한 환경 파괴와 같은 맥락이며 비용도 높고 기술적으로도 갈 길이 멀다.
현실적인 방안은 전 세계 정부의 강력한 규제와 시민사회의 플라스틱 거부 의식 제고이다.
미국·캐나다·영국·대만 정부는 생필품에 쓰이는 미세플라스틱 사용을 규제한다는 공식입장을 밝혔다. 인도·호주도 특정 지역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금지를 시행한다. 프랑스·모로코·케냐 등은 더욱 강력한 규제를 실행 중이다. 포장재의 95%가 일회용이고, 이로 인해 매년 1200억 달러가 소실되는 현실에서 포장재 생산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비용이 400억 달러 이상인 현실에서 매우 유의미한 정책이다. 미세플라스틱 사용 금지와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 금지를 모든 국가에 확대 적용한다면, 궁극적으로는 플라스틱 제조 자체를 매우 한정적으로 허용한다면 더욱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2050년이면 전체 석유 생산량의 5분의 1이 플라스틱 관련 업계에서 사용될 것이라 한다. 즉, 플라스틱을 만들지 않는다면 그만큼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미세먼지도 감축하는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다. 소득 수준이 낮은 에너지 빈곤층은 나무를 베어 연료로 사용하면서 숲을 무너뜨리지만 더 가난한 에너지빈곤층은 플라스틱을 태우면서 대기와 건강을 동시에 해친다. 더불어 해양과 토양에 뒤섞인 미세/나노플라스틱이 날리기라도 하면, 작금의 미세먼지와 결합한 최악의 화합물이 탄생할 것이다. 플라스틱은 기후변화의 문제이자 인권의 문제이고 미세먼지의 문제임을 시민사회는 분명히 주지할 필요가 있다.
이상의 법적 규제와 시민사회 의식제고 외에도 제품의 안전과 공급 신속성 및 투명성 제고 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일회용 플라스틱 포장은 특히 식료품에 많이 쓰이는데, 그 이유는 가격이 싸고 신선도 유지에 좋기 때문이다. IT업계와 할인업계가 힘을 모아 식료품 공급망에 블록체인을 적용한다면, 식료품 생산과 판매까지의 유통 전 과정을 추적할 수 있어 신선식품을 적소에 공급할 수 있다. 또 생산자와 소비자 직접 연결이 가능하므로, 소비자 가격은 낮아지고 과포장을 줄일 수 있다. 이런 기술은 요원한 것이 아니라 이미 적용 중이므로,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촉진된다면 플라스틱 포장재 대폭 감소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가까운 미래, 플라스틱 가득한 세상을 맞을 것인지 청정한 세상을 맞을 것인지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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