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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손가락 지장도 모자라 DNA까지?'"

DNA법 둘러싸고 공방 치열…'과학 수사 VS 인권 침해'

강력범의 유전자(DNA) 정보를 수집해 이를 국가가 관리하고 수사에 활용토록 하는 '디엔에이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DNA법)' 제정을 놓고 논란이 거세다.

DNA 데이터베이스(DB) 작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이 법안에 대해 법무부는 "'조두순 사건'으로 촉발된 아동 성폭력 범죄 등 흉악범 엄벌을 위한 정부 대책의 첫 번째 결실"이라며 적극 홍보해왔다. 이 법안은 살인·성폭행·방화 등 강력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DNA 신원 정보를 미리 확보·관리해 신속하게 범인을 검거하겠다는 내용으로, 15년 넘게 정부가 입법화를 시도해 왔다. 지난달 30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이 법안은 이번 정기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그러나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DNA가 개인의 생체 정보를 담고 있는 중요한 개인 정보인데다가, 이것을 국가가 DB로 확보·관리한다는 점에서 공권력의 과잉 정보 수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외국에서는 DNA DB 수사로 인한 억울한 피해자가 속속 발생하고 있어, DNA 정보 사용의 부작용 역시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18일 오후 DNA법 제정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공청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인권 활동가·법조인·의학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법안의 제정을 놓고 팽팽한 갑론을박이 오갔다.

·경의 DNA DB, 전 국민 통제하는 '빅 브라더' 되나

DNA법을 둘러싼 가장 큰 논란거리는 바로 '인권 침해' 문제. DNA가 질병을 포함한 개인의 신체에 관한 정보인 만큼, 일각에서는 이 법안이 개인의 '자기 정보 결정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법무법인 한결의 이상희 변호사는 "헌법 제17조는 개인 정보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기본권의 하나로 인정하고 있다"며 "DNA 신원 정보 수집은 국민의 생체 정보를 국가가 수집하는 것이므로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가 지적했다.

이 법안이 인권 침해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무엇보다 DNA 정보 수집 대상이 흉악범을 넘어 점차 확대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정부가 제출한 법률안을 보면, 12개 종류의 강력 범죄자 뿐 아니라, 형이 확정되지 않은 피의자·피해자·현장 수거물 모두 이 DB에 입력하게 된다. 이는 다시 말해, 우연히 범행 현장을 지나다 떨어뜨린 일반 시민의 머리카락 DNA 역시 경찰의 DB에 입력돼 언제든 소환 조사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상희 변호사는 "한번 (DNA DB가) 구축되고 나면, 입력 대상이 지속적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가장 먼저 신원 확인 DNA DB를 도입했던 영국 사례만 봐도, 입력 대상이 점차 늘어나 논란이 일자 경찰이 아예 전 국민 DNA 정보를 DB화 하자고 제안해 물의를 빚었었다. 현재 영국에서는 전체 인구의 7퍼센트에 해당하는 410만여 명이 DNA DB에 입력돼 있다.

반면, 정부는 DNA 정보의 '보존·관리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는 직권 또는 본인의 신청에 의하여 DNA 신원 확인 정보를 삭제할 수 있다'(13조)고 반박한다. 범죄와 무관한 사람의 DNA 정보가 수집됐다 하더라도, 언제든지 삭제를 요청할 수 있기 때문에 과도한 인권 침해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이상희 변호사는 "DNA 시료 채취 사실도 모르는 사람들이 삭제 신청은 물론이거니와 수사 기관의 직권 삭제 역시 확인할 길이 없다"고 반박했다.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DNA DB가 범죄 수사에 유용하게 쓰이기 위해서는, DB라는 일종의 '신원 정보 은행'에 들어가는 정보량이 많을수록 효과적이라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라며 "오로지 범죄 수사를 위해 모든 국민의 열손가락 지문을 강제로 채취하는 것도 모자라, DNA 정보까지 수집하는 것은 국가의 과잉 통제를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DNA 조작·오염 위험성도…대법원 "검·경 아닌 제3기관이 관리해야"

DNA 오염·조작으로 엉뚱한 사람이 범인으로 지목될 위험성 역시 제기됐다. 이상희 변호사는 "유전자 샘플 상태가 좋지 않거나 양이 적어 분석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미국 오클라호마 주에서는 7가지의 알리바이에도 불구하고 DNA 수사 결과에 따라 11살 소녀를 강간했다고 지목된 사람이 3000년 형을 선고받았지만, 이후 진범이 밝혀지는 사례도 있었다. 또 미국의 DNA 감식 기관에서 5년간 3100건의 DNA 감식을 시행한 결과, 이 중 26건이 감식 오류로 판명됐다.

더 나아가 지문 정보와 달리, DNA 정보가 포함된 타액·머리카락 등은 당사자가 사건 현장에 없더라도 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증거 조작의 위험성도 제기됐다. 예컨대 경찰이 용의자에게 담배를 피우도록 권한 뒤 타액을 채취하는 방식이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지난 9일 정부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DNA 감식 시료가 범죄 현장에서 발견된 것인지 여부에 관해 명확히 담보할 수 있는 방법이 규정돼 있지 않다"며 "착오로 (DNA 시료가) 뒤바뀌거나 기타 사유로 무고한 사람이 범인으로 몰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대법원은 또 "위조 및 조작의 위험성이 있는 바 이를 객관적으로 밝혀줄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며 "검찰도 경찰도 아닌 제3의 기관이 이를 수집·관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법무법인 바른의 서범정 변호사는 "오류 가능성은 어떤 수사에나 항상 있을 수 있는 것"이라며 "일부 오류 가능성을 이유로 DNA DB 구축에 반대하는 것은 '오판 가능성이 있으니 재판 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이나 마찬가지"라고 반박했다.

무죄 추정 원칙·과잉 금지 원칙 논란

범죄 피의자 및 수형자에 대한 DNA 수집이 헌법에 명시된 '무죄 추정의 원칙'과 '과잉 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부가 발표한 법률안은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은 '구속되어 있는 자'에게서까지 DNA 정보를 채취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이미 형이 확정되어 수용 중인 수형자에게도 DNA 정보를 채취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오창익 사무국장은 "구속 피의자에 대한 DNA 채취는 헌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에 반하는 위헌적인 처분이며, 수형자의 DNA 채취 역시 재범의 우려라는 측량 불가능한 위험만으로 개인 정보를 수집한다는 점에서 과잉 금지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대법원 역시 지난 9일 "모든 국민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되기 전에는 무죄 추정을 받는데, 당해 사건도 아닌 장래의 범죄 수사를 위한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강제 수사를 하는 것은 위헌의 소지가 크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또 "일단 입력된 DNA 신원 정보를 무죄 판결을 받은 후에 삭제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큰 의미가 없고, 실제 삭제 여부를 감시하고 통제하기도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채취 대상자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 역시 형식적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법안은 채취 대상자가 DNA 채취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에는 영장에 의한 시료 채취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설사 채취 대상자가 동의한다고 해도, 이들이 구속 과정에서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동의 여부를 기준으로 열장 발부를 결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이상희 변호사는 체포 시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는 것처럼, DNA 채취 동의를 얻기 전에 최소한 '채취에 불응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고지하는 내용의 조항을 법안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학 수사 위해 필요하다" VS "수사 기관 편의만을 위한 발상"

이날 공청회에서는 "과학 수사를 위해 DNA DB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DNA법은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면서까지 수사 기관의 편의만을 봐주겠다는 발상이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먼저 서범정 변호사는 "범죄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일단 동일 수법의 전과자를 골라낸 후, 이들을 한 명 한 명 찾아다니면서 조사해 용의선상에서 배제해나가는 낡은 수사 방식을 고수해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DNA DB 구축을 통해 보다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수사를 할 수 있도록 DNA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오창익 사무국장은 "정부는 강력 범죄의 위험성을 과장하고 강호순 사건에 대한 국민의 공포감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면서까지 오로지 수사 기관의 편의를 위해 DNA법을 통과시키려고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한편, 이날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을 비롯한 인권단체들은 성명을 내고 "국가가 개별 사건 수사를 넘어 방대한 DNA DB를 구축하는 것은 그 효과도 의문스러울뿐더러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DNA 활용에 있어 검찰과 경찰의 권력 남용을 막는 것이며, DNA 수사가 사회적 차별로 이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일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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