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한반도 비핵화 기반으로 새 경제지도 그릴 것"

"김정은, 정상국가 발전 의욕 매우 높아…비핵화 약속 지키면 번영"

인도-싱가포르 순방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싱가포르 렉처' 강연을 통해 대북정책 관련 구상을 밝혔다. 싱가포르 렉처는 싱가포르 동남여연구소가 주최하는 유명 강연 프로그램으로, 각국 정상이나 노벨상 수상자 등이 연사로 초청된다. 문 대통령은 강연에서 북한 비핵화 달성을 전제로 한 한국 및 아시아 국가들의 대북 경협 전망을 주로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각) 싱가포르 오차드 호텔에서 열린 싱가포르 렉처 행사에서 먼저 "북미 정상회담은 평화의 길을 밝혔다"며 "세기적 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지원해 주신 싱가포르 국민들과 정부에 감사드린다"는 인사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문 대통령은 "평화를 위한 싱가포르의 일관된 노력이 이곳을 북미 정상회담의 장소로 만들었다"며 "평화를 일궈온 싱가포르 국민들의 지지가 있었기에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했다고 여긴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만큼 평화가 절실한 나라는 없다"며 "(한국은)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었고, 늘 전쟁의 위협에 시달리며 많은 고통을 감내해 왔다. 저 또한 삶의 터전을 뒤로한 채 빈손으로 피난선을 탄 전쟁 피난민의 아들"이라고 했다. 그는 또 "한국은 이념 대결로 오랫동안 몸살을 앓아 왔다"며 "남북 분단은 이념을 앞세운 부패와 특권과 불공정을 용인했고 이로 인해 많은 역량을 소모했다"고 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나 "한국에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또 하나의 기회가 있다. 바로 남북 경제협력"이라며 "남북정상회담은 그 시작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누구나 꿈이라고 여겼던 일이지만, 한국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를 기반으로 새로운 경제지도를 그리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하루빨리 평화체제가 이뤄져 경제협력이 시작되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판문점 선언'과 '센토사 합의'가 지구상 마지막 냉전을 해체한 합의로 기록될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 지속적으로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나는 그동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두 번 만났다"면서 "김 위원장은 이념 대결에서 벗어나 북한을 정상국가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의욕이 매우 높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의 약속을 지킨다면 자신의 나라를 번영으로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라며 "결코 순탄치 않은 길이지만, 정상 간 합의를 진정성 있게 이행해 나간다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비핵화 이행방안을 더 구체화하고 한국과 미국은 이에 상응하는 포괄적 조치를 신속하게 추진한다면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라고 다시 한 번 말했다.

문 대통령은 강연을 통해 한국뿐 아니라 미중러일 등 주변국 전체가 대북 공조를 이루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먼저 미국에 대해 "남북 간의 '판문점 선언'과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을 통해 남북미 정상들은 역사의 방향을 바꿔놓았다"며 "나와 트럼프 대통령은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는 인식을 함께해 왔다. 이런 공동의 인식 하에 한미 양국은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양국 특사단 왕래, 남북·북미 정상회담에 이르는 '역사적 대전환'의 모든 과정을 함께 해왔으며, 앞으로도 함께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일본에 대해 문 대통령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긴밀한 소통과 협력 관계를 구축해 왔다"며 "남북관계 정상화는 북미관계의 정상화에 이어 북일관계의 정상화로 이어질 것이고, 북일관계 정상화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했다. 지난 5월 일본에서 개최된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일본이 중국과 함께 '판문점 선언의 충실한 이행을 위한 적극적 지지' 의사를 밝혔다는 점도 언급했다.

지난해 중국 방문, 지난달 러시아 방문도 언급됐다. 문 대통령은 "작년 12월에는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한반도 문제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었고, 대화와 협상을 통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긴밀히 협력하자는 공동의 입장을 확인했다"며 "지난달 러시아에서 만난 푸틴 대통령과는 남북러 3각 협력을 준비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같은 흐름에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도 동참해줄 것을 요구했다. 싱가포르는 올해 아세안 의장국이다. 문 대통령은 "아세안과 한국은 그동안 역내 평화와 안정을 위해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것에 공감해 왔다"며 "특히 아세안은 2000년 이후 아세안 지역안보포럼(ARF)을 통해 북한과 국제사회 간 대화의 장을 마련해 주었다"고 지난 인연을 들었다.

문 대통령은 "아세안은 일관된 목소리로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포기하고 평화와 번영의 길로 돌아오도록 독려해 왔다"며 "북한의 핵개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본격화되기 전 아세안은 북한과 호혜적인 경제 협력관계를 맺었고, 한-아세안 FTA를 통해 개성공단 상품에 한국산과 동일한 관세혜택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남북 경제협력을 지원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과 아세안 간에 이미 구축되어 있는 다양한 협력과 교류 증진의 틀 내로 북한을 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갈 경우, 아세안이 운영 중인 여러 회의체에 북한을 참여시키고 북한과의 양자 교류 협력이 강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문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이 그랬던 것처럼, 다음달 인도네시아에서 개최될 아시안게임이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는 화합의 장이 되길 기대한다"고 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아세안의 대북 경제협력 전망에 대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이행을 통해 대북 제재가 해제되면, 한때 활발했던 북한과 아세안간의 경제협력이 다시 활성화될 것"이라며 "(이는) 북한과 아세안 모두의 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번 싱가포르 렉처 행사에는 정·재계, 학계 등 싱가포르 여론 주도층을 비롯해 각국 외교관과 우리 동포 및 유학생 등 400여 명이 청중으로 참석했다. 청와대는 "이같은 열기는 싱가포르가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과정에서 갖게 된 한반도 문제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반영한 것"이라고 자평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강연을 마친 후, 현지 동포 간담회를 갖고 귀국함으로써 6일 간의 순방 일정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