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약은 환자가 자신의 질병을 고치기 위해 먹는 약이다. 그런데 그 약에 독성물질이, 그것도 암을 일으킬 수 있는 성분이 들어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한마디로 약주고 병 주는 격이다. 이는 예삿일이 아니다.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발암물질 성분이 들어간 고혈압 약을 오랫동안 복용한 환자들이 큰 불안과 함께 분노하고 있다.
이 사건의 발단은 중국에서 비롯했다. 중국은 그동안 우리에게 멜라민 분유 등 멜라민 식품 파동, 납 꽃게 파동, 기생충알 김치 파동 등 여러 식품 위해 파동을 겪게 만든 장본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식품에 이어 의약품 위해 파문까지 겪게 만들고 있다. 중국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의 골이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은 환자가 무려 600만 명에 달하는 고혈압 치료제와 관련한 것이다. 이번에 문제의 발암물질이 들어간 고혈압 약을 복용해온 환자만 18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그 파문이 언제까지 갈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설혹 다행히 중국산 '발사르탄'을 사용하지 않은 고혈압약을 복용해온 환자들이라고 할지라도 이번 문제가 남의 일 같지는 않을 터이다. 그들은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이번 파문은 고혈압치료제 원료를 생산·공급하는 중국의 제지앙화하이사가 제조공정을 바꾸는 과정에서 사람에게 암을 일으킬 위험성이 높은 편인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Nitrosodimethylamine·NDMA)'이라는 인체발암추정물질이 의도치 않게 불순물로 들어간 것에서 비롯했다.
중국, 유럽에는 알리고 한국은 '패싱'
중국 제약회사는 이런 사실을 유럽의약품안전청(EMA)에 알렸다. 이에 따라 유럽은 이를 공개하고 즉각 제품 회수에 나섰다. 우리나라는 유럽이 이런 조치를 내리자 뒤늦게 부랴부랴 대응 조치에 나섰다.
이번 사건이 터지자 대다수 언론은 NDMA를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2A군으로 분류한 물질로서 2A군은 '인간에 발암물질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물질'로 보도하고 있다. 이는 잘못된 설명이다. '인간에 발암물질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물질'(possible carcinogen to humans)은 2A군이 아니라 2B군이다. 2A군은 인체발암추정물질(probable to humans)이다.
국제암연구소는 발암물질을 분류할 때 인체에 암을 확실히 일으키는지 여부를 중심 잣대로 삼는다. 흔히들 1급발암물질로 잘못 표현하고 있는 1군발암물질은 인체발암물질(carcinogen to humans)을 말한다. 사람에게 암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명명백백히 입증된 것으로 흡연, 간접흡연, 라돈, 석면, 비소, B형간염바이러스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엔디엠에이와 같은 인체발암추정물질은 동물에서는 암을 일으킨다는 증거가 충분하지만 사람에게서는 아직 그 증거가 제한적이다. 인체발암가능물질, 즉 2B군은 동물에서는 발암성과 관련한 충분한 증거가 있지만 사람에게서는 그 증거가 불충분하거나 동물에서는 충분한 증거나 없으며 사람에게서도 제한된 증거만 있는 것을 말한다.
NDMA는 강력한 독성물질이자 간암 일으킬 위험성 높아
독성학계에서는 엔디엠에이의 독성과 인체 발암 위험성 모두 매우 높게 보고 있다. 미국 환경청은 먹는물에 이 독성물질의 최대농도를 리터 당 7나노그램(ng)으로 정해놓고 있다. 쥐 실험에서 높은 농도를 투여한 결과 간에서 섬유화가 생기는, 강력한 간독성 물질임이 드러났다. 또 낮은 농도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 즉 만성노출의 경우에도 쥐에 간암을 유발한다는 연구보고가 많이 이루어졌다.
엔디엠에이가 미량이어도 독성을 나타내는 특성 때문에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먹는물에 이 물질이 함유되어 있지는 않은가에 관심을 쏟고 있다. 이 물질이 한 번 물에 녹아 들어가면 잘 분해되지 않고 흡착해 제거하기가 쉽지 않으며 잘 휘발해 날아가지도 않기 때문이다.
독성이 강한 이런 특성을 이용해 외국에서는 사람을 죽이는 약물로 쓰인 적도 있다. 1978년 독일에서는 화학교사가 자신의 부인을 죽이는데 엔디엠에이를 사용한 적이 있다. 부인이 좋아하는 디저트인 블랙베리 잼에 이 독극물을 넣어 결국 죽이는데 성공했다. 잼을 먹은 부인이 중독돼 쓰러진 뒤 수사당국은 잼을 의심해 이를 쥐에게 먹인 결과 이틀 만에 모두 죽었다. 남편은 체포돼 계획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모방범죄를 막기 위해 언론에서는 이 물질 성분을 공개하지 않고 그냥 'N'이라고만 했다. 이 교사는 종신형에 처해졌고 재판 직후 부인은 숨졌다.
2013년 4월1일 중국에서는 상하이 후단대학교에서 의과대학원에 다니던 27살의 황양(黃洋) 군이 기숙사에서 같은 의과대학생이었던 다른 동료가 놓아두었던, 엔엠디에이가 들어 있는 물냉각수를 잘못 마시고 중독돼 몇 시간 뒤 쓰러졌다. 황 군은 15일 뒤 숨졌다. 동료는 과거 엔디엠에이에 관한 몇몇 논문을 쓴 적이 있었다. 그는 만우절을 맞아 재미로 한 장난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사형선고를 받아 2015년 12월 사형이 집행됐다.
발암물질 고혈압약 파문은 쉬이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18만 명으로 추산되는 우리나라의 중국 발사르탄 고혈압약 복용자들은 발암물질이 들어 있지 않은 정상 고혈압약으로 다시 처방받아 더는 발암물질 노출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2015년 이후(그 이전일 가능성도 있음) 문제의 혈압약을 먹어온 환자는 매우 불안해 할 것이다.
18만 명 위해성 평가 쉽지 않고 암 추적조사 장기간 걸려
고혈압약에 섞여 들어간 엔디엠에이 성분의 양은 미량이어서 급성 독성이나 즉각적인 부작용은 생기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만성독성과 발암성에 대해서는 예단하기 매우 어렵다. 식약처 등 정부 당국의 고민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한둘도 아니고 18만 명에 대한 조사와 개인 별 위해성 평가가 쉽지 않으며 장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과 이번 사건의 책임 소재도 논란거리다. 벌써부터 약을 처방한 의사와 조제한 약사 간 책임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는, 볼썽사나운 모습도 드러나고 있다. 문제가 된 혈압약을 판매한 국내 제약사들이 함께 비용을 댄다 하더라도 국내 제약회사와 중국 제지앙화하이사 간의 배·보상 문제도 생길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은 중국 쪽이 자신들이 만든 발사르탄에 엔디엠에이라는 발암성 독성물질이 불순물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파악한 뒤 유럽에는 이를 즉각 알린 반면 우리나라에는 동시에 이를 알리지 않은 이중적 행태에 대한 비판이다. 이 때문에 유럽 국민은 1등 국민, 대한민국 국민은 2등 국민이라는 자괴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중국 제약회사에 대해 철저한 추궁이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그에 상응한 조치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중국 발(發) 발암물질 고혈압약 파문이 대한민국에 또 다른 걱정거리를 하나 더 얹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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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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