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인도·싱가포르 순방 계기에 삼성그룹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직접 대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이 지난 2월 5일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관련 뇌물죄 재판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지 정확히 5달 만에 전해진 소식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5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문 대통령이 오는 8일부터 13일까지 진행하는 인도·싱가포르 순방 기간 중 인도 노이다에 위치한 삼성전자 휴대폰 신공장 준공식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 노이다 신공장은 오는 2020년까지 8500억 원이 투자되는 대형 프로젝트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인도 최대 핸드폰 공장"이라며 "지금 인도 내 핸드폰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1위이지만 중국계 기업들과 점유율 1%를 놓고 싸우고 있다. 지금까지 대통령 해외 순방시 어려움에 처한 현지 진출 기업을 방문·격려하고 문제 해결을 주도한 것과 일관되는 흐름에서 (문 대통령이) 신공장 준공식에 참석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일관된 흐름'의 사례로 문 대통령의 작년 12월 중국 충칭(重慶) 현대자동차 공장 방문이나, 롯데가 사드(THAAD) 보복으로 어려움에 처하거나 LG화학 전기차 배터리 문제 발생시 문 대통령이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를 만나 중국 정부의 전향적 조치를 촉구했던 사례를 들었다. 삼성전자 공장 준공식 참석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의 설명이다.
청와대의 이같은 설명은, 문 대통령이 신공장 준공식에서 이재용 부회장을 만나는 장면이 정치적 해석으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한 취지로 풀이된다. 이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준공식 참석 여부에 대해 "참석 가능성이 높다고 들었다", "참석 예정이라고 한다"고 하면서도 "정확한 것은 삼성에 확인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지금까지 대통령(이 참석하는) 경제 행사에 '누구는 오고, 누구는 오지 말라'고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전에(올해 2월) 한화큐셀 공장 방문 때 김승연 한화 회장이 갑자기 나타나 사진을 찍은 적도 있지 않느냐"며 "기업 일자리 창출을 지원하는 일관된 정책"에 따른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경제 사안인데 과하게 정무적 판단을 하지 말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대법원 상고심이 아직 진행 중인데, 대통령이 이 부회장을 만나는 것이 일종의 정치적 메시지로 해석될 가능성도 고려한 것이냐'는 질문이 나오자 불편한 기색을 띠며 "너무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게 옳은지는 의문이다"라고 했다.
대통령 순방에 공식 동행하는 경제 사절단에는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정진행 현대차 사장, 지동섭 SK루브리컨츠 대표이사, 안승권 LG전자 사장, 이재혁 롯데그룹 부회장 등이 포함돼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경제사절단에 윤부근 부회장이 들어와 있지만, 준공식은 개별 기업 일정이기 때문에 그 기업의 최고위급이 참석할 수 있는 것"이라며 이 부회장 참석은 경제사절단 자격이 아니라 개별 기업 총수 자격으로 이뤄지는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같은 청와대의 '선제적·예방적 해명'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만나는 장면은 상당한 파급 효과를 낳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 부회장에 대한 집행유예 판결에 나오자 "사법부가 노골적이고 황당한 궤변으로 특정 권력과 재벌 편을 들고 재벌에 굴복했다"(2월 7일, 추미애 대표)라고 비판한 바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해당 판결을 내린 판사를 파면하라거나 감사를 받게 해야 한다는 등의 청원이 무려 530여 건이나 올라오기도 했다.
마힌드라 만나는 文대통령…쌍용차 해법 촉구할까
한편 문 대통령이 지난 3일 양대 노총 위원장을 만난 것과 관련, 노동 현안인 쌍용자동차 해고자 문제 해결을 위해 인도 국빈방문 계기에 마힌드라그룹 경영진을 만날 예정이 있느냐는 질문도 나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별도 예정은 없다"고 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개별적 미팅(접견)은 예정돼 있지 않지만, 양국 핵심 기업인들이 모이는 한-인도 CEO 라운드테이블에 미힌드라 회장이 참석하기 때문에 조우할 수 있다"고는 했다.
문 대통령은 8~11일의 인도 국빈 방문 기간 동안 정상회담·국빈만찬과 힌두교 최대 사원인 앗샤르담 사원 방문, 한-인도 비즈니스 포럼 기조연설, 간디 추모공원 헌화, 양국 MOU 체결식 및 공동 기자회견 등의 일정을 소화한다.
11일 저녁부터 이어지는 싱가포르 국빈 방문에서 역시 정상회담, 국빈만찬, 한-싱가포르 비즈니스 포럼 기조연설 등의 일정이 예정돼 있는데, 특히 싱가포르에서는 현지 여론 주도층 400여 명을 대상으로 양국의 미래지향적 발전 방안과 신(新)남방정책,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 등을 주제로 한 강연을 할 계획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일명 '싱가포르 렉처(lecture. 강연)'로 불리는 이 행사에서 문 대통령이 "신남방정책과 한반도 신경제 지도의 연결을 강조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이 아시아 평화 번영과 어떻게 관련돼 있는지" 등을 설명할 예정이라며 의미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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