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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 대신 칼을 든 영남의 기개”…의병장 전삼달 장군 생애 담은 ‘영고정 전삼달 실기’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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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 대신 칼을 든 영남의 기개”…의병장 전삼달 장군 생애 담은 ‘영고정 전삼달 실기’ 발간

평시에는 무관으로 국가에 헌신한 전삼달 장군의 삶을 재조명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영남 지역을 수호하며 혁혁한 전공을 세운 의병장 출신 무장 영고정(潁皐亭) 전삼달(全三達, 1570~1633) 장군의 생애와 활동을 집대성한 '영고정 전삼달 실기'가 발간돼 학계와 지역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실기는 대구가톨릭대학교 사학과 전오식 씨가 고증한 ‘영고정 전삼달의 생애와 임진왜란기 의병활동’ 논문을 토대로, 용궁 전씨 후손들의 자료 수집과 정성이 더해져 완성됐다. 그동안 단편적으로 알려졌던 전삼달 장군의 의병 활동뿐 아니라, 전후 무관으로서 국가 방위에 헌신한 삶 전반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다.

전삼달 장군은 임진왜란 초기 영남 지역 수복의 분수령이 된 영천성 수복 전투에 참여했으며, 특히 전국적으로도 드문 ‘사형제 동반 참전’의 주역으로 알려져 있다. 백형 전삼락, 중형 전삼익, 동생 전삼성과 함께 영천 창의회맹을 시작으로 경주성 수복과 안강, 형산강 일대 전투에 이르기까지 주요 격전지를 누비며 충절의 가풍을 실천했다. 형제들은 모두 선무원종공신에 녹훈되는 등 국가로부터 공을 인정받았다.

실기에는 전후 전삼달 장군의 관직 생활도 비중 있게 담겼다. 장군은 1599년 무과에 급제한 뒤 창원별장으로 재임하며 지역 방비에 힘썼고, 이에 광해군은 친필 유서를 내려 그의 노고를 치하했다. 이후 황해도 병마절도사 겸 황주목사 등 요직을 역임하며 국방과 민생 안정에 기여했으며, 광해군과 인조로부터 총 3회의 어서와 4회의 교서를 받은 사실도 기록됐다. 이 가운데 일부는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재돼 있다.

▲ 경북 영천시 금호읍 약남리에는 전삼달 장군이 임금으로부터 받은 유서와 유품을 보관하기 위해 세운 ‘어서각(御書閣)’ ⓒ 독자제공

현재 경북 영천시 금호읍 약남리에는 전삼달 장군이 임금으로부터 받은 유서와 유품을 보관하기 위해 세운 ‘어서각(御書閣)’이 남아 있다. 그러나 비지정 문화재로 관리돼 노후화가 심각한 실정이다. 문중 관계자는 “이번 실기 발간이 어서각과 관련 유물의 문화재 지정과 보존 필요성을 환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영고정 전삼달 실기'는 난세 속에서 의병으로, 평시에는 무관으로 국가에 헌신한 전삼달 장군의 삶을 재조명하며, 오늘날에도 유효한 구국과 책임의 가치를 되새기게 하고 있다.

▲영고정 전삼달 실기. ⓒ 독자제공

김종우

대구경북취재본부 김종우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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