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유사시 자위대를 출동시킬 수 있다는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 발언의 파장이 중일 양국 외교관계 전반을 흔들고 있다. 중국이 이달 말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정상급 회동이 없을 것이라며 일본에 대한 압박을 높이는 가운데, 일본은 대화에 열려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18일 기하라 미노루(木原稔) 관방장관은 브리핑에서 "이달 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와 중국 정상 간 회동 여부는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며 "일본은 일중 간 다양한 대화에 열려 있다"라고 밝혔다.
앞서 17일 마오닝(毛宁)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G20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리창 총리가 다카이치 일본 총리와 회동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계획이 없다"라고 답했다. 이를 두고 일본 <아사히신문>은 "중국이 이렇게 이른 시기에 정상회담 계획이 없다고 밝힌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신문은 "(중국이) G20 정상회의에서 다카이치 총리와 리창 총리의 만남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표명함으로써 다카이치 정권에 충격을 주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앞서 7일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대만의 비상사태가 '존립위기상태'에 해당한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존립위기상태'는 지난 2015년 아베 신조 총리 재임 당시 일본 의회가 제정한 안보 관련법에 명시된 개념으로, 일본이 공격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도 일본과 밀접한 다른 국가가 공격을 받아 일본의 영토가 국민 생명에 위협이 되는 경우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여 자위대를 출동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에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은 대만 유사시에 자위대를 출동시킬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됐다. 그러자 다음날인 8일 쉐젠(薛劍) 주오사카 중국 총영사는 다키이치 총리의 발언을 보도한 <아사히신문> 기사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X'에 게재하며 "멋대로 들어오는 그 더러운 목은 한 순간의 망설임 없이 베어버릴 수밖에 없다. 각오가 되어 있나"라는 격한 반응을 보였다. 이후 양국의 갈등이 커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17일 가나이 마사아키(金井正彰) 일본 외무성 대양주국장이 베이징에 방문해 류진쑹(刘劲松) 중국 외교부 아주사장(아시아국장) 등 중국 측 인사를 만나 사태 수습에 나섰다. 이를 두고 일본 <지지통신>은 18일 "다카이치 정부의 대응은 양국 간 긴장 고조가 예상보다 심각한 일중 관계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전했다.
통신은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를 인용, 가나이 국장 파견에 대해 "(일중 간) 상황이 다소 과열되고 있다. 긴장을 완화해야 한다"는 이유를 배경으로 설명했다.
통신은 이어 "다카이치 정권은 공개적으로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러나 외교 채널을 통해 진정을 촉구하기 시작했다"며 "이달 초 중국으로의 일본산 해산물 운송이 재개되는 등 일중 관계가 개선되고 있는 가운데, 자민당 고위 관계자는 '현 상황을 그대로 방치하면 중국이 추가 보복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위기감을 드러냈다"고 보도해 중국의 보복에 대한 일본의 우려도 이번 방중의 요인 중 하나로 언급했다.
실제 <산케이신문>은 여당인 자민당의 아리무라하루코(有村治子) 총무회장이 "일중 정상회담이 막 끝났다. 적절하고 단호하며 차분하게 논의가 진행되길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보도하는 등 일본 내에서 이 사안이 확산되는 것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읽히고 있다.
중국의 경제적 보복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오노다키미(小野田紀美) 경제안보담당상은 이날 각의(국무회의)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경제적 강압을 행사하는 국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통신은 "그런데 현실적으로 타협점은 요원해 보인다. 중국 당국이 총리에게 발언 철회를 거듭 요구함에 따라, 주변에서는 "철회는 없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며 다카이치 총리 주위에서는 중국에 물러서면 안된다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통신에 "상황은 오늘, 내일 중으로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후쿠시마 핵발전소 오염수 방류 당시 중국이 보였던 반응을 예로 들기도 했다. 그는 "며칠이나 몇 주 안에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 16일 '2025년 제4호 유학경보'를 발령해 일본에 대한 유학 자제를 촉구하는 등 일본 압박에 나선 중국은 17일에도 일본의 남성 아이돌 그룹인 JO1이 28일 중국에서 개최 예정이었던 팬 이벤트 행사 취소를 발표하는 등 전방위적인 제재에 나서는 모양새다.
신문은 중국에서 개봉 예정이었던 <짱구는 못말려>('크레용 신짱'의 한국 제목)를 비롯해 일본 영화의 개봉 일자가 연기됐다고 전했다.
또 신문은 아이치현 한다시와 중국 장쑤성의 자매도시인 쉬저우시 정부 대표단의 방문이 18일 예정되어 있었으나 중요한 공무로 인해 취소됐다고 밝혔다. 지난 2005년부터 매년 개최됐던 도쿄-베이징 포럼도 오는 22~24일 베이징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중국 측의 통지로 연기됐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관영 언론들을 통해 일본에 대한 비판 기사를 공세적으로 펼치고 있다. 지난 16일 우원식 국회의장이 국회에서 열린 한·일의원연맹 합동 총회 개회식에 참석한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페이스북'에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다카이치 총리를 비난한 글을 올린 것과 관련,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한국이 실효지배하고 있는 섬에 대해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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