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은 비슷하면서도 뭔가 의미가 다른 것들이 많다. ‘남다’와 ‘넘다’, ‘늙다’와 ‘낡다’와 같은 것들은 모음을 바꿔 의미의 변화를 준 것들이다. 그런가 하면 ‘예쁘다’와 ‘아름답다’처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의미의 차이가 있는 단어가 있다.
어린 아이를 보고 ‘아름답다’고 하면 뭔가 조금 이상한 느낌이 있다. 마찬가지로 나이 먹은 아가씨에게 ‘예쁘다’고 하면 조금 징그러운 느낌을 받는다. 느낌상 약간 귀엽고 청순함이 있으면 ‘예쁘다’고 하는 것이 어울린다. 이런 여러 가지 조건을 찾아 두 단어의 차이를 살펴보자.
우선 ‘예쁘다’는 ‘눈으로 보기에 좋고 사랑스럽다’, ‘사랑스럽거나 귀엽게 여길 만하다’의 의미를 담고 있다. 과거로 올라가보면 그 어원은 ‘어엿브다’에서 유래했다. 그런데 ‘어엿브다’에서 ‘예쁘다’로 축약되면서 의미의 변화가 일어났다. 과거에 ‘어엿브다’는 ‘가련하다’라는 뜻이었다.
<능엄경언해> 9:38에 의하면 “여래닐오대 어엿브니라 하나니”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서 한자 원문은 ‘애련(哀憐)’으로 나타나 있다. 그리고 <훈몽자회>라는 책에 의하면 ‘어엿블휼(恤)’이라는 단어가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원래는 ‘가련하다’라는 의미였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17세기까지 이어지다가(서정범, <새국어어원사전> 참고) ‘가엽다, 불쌍하다’의 의미에서 ‘귀엽다’의 뜻으로 바뀌게 된다. 개중에는 ‘읻다’(연:硏 예쁘다, 아름답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쁘다’가 ‘예쁘다’로 바뀌었다고 보는 학설도 있다.
그러나 필자가 견해로는 ‘어의 전성’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러므로 ‘예쁘다’는 처음에는 ‘가련하다, 불쌍하다’는 의미에서 시작하여 ‘귀엽다’라는 의미로 변형된 것이다. ‘예쁘다’의 예문을 보자.
가는 손님은 뒤꼭지가 예쁘다.
점순이는 뭐 그리 썩 예쁜 계집애는 못된다.
삼순이는 호리하여 어떤 옷을 입어도 예쁘다.
와 같이 쓴다. 그 속에는 ‘곱다’, ‘귀엽다’, ‘이쁘다’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한편 ‘아름답다’는 ‘예쁘다’에 비해 좀 더 어른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즐거움과 기쁨을 줄 만큼 예쁘고 곱다’, ‘감탄을 느끼게 하거나 감동을 줄 만큼 훌륭하고 갸륵하다’의 의미가 있다. 이러한 ‘아름답다’의 기준은 ‘인간적인 것’에 있다. ‘아름답다’의 모습이 제일 먼저 보이는 글은 신라 진평왕 때의 향가 <서동요>이다.
선화공주님은(善花公主主隱)
남몰래 얼어두고(他密只嫁良置古)
서동방을(薯童房乙)
밤에 꼭 안고 가다(夜矣 夗[卯]乙抱遣去如)
에서 ‘어르다’라는 단어가 나온다. 양주동 박사의 설이기는 하지만 여기서 ‘어르다’에 해당하는 향찰이 ‘가(嫁 시집가다)’로 되어 있다. 이것을 ‘사통하다’로 해석하여 ‘성적인 접촉을 하다’로 풀었다. 그 후에 나온 문헌으로는 <석보상절>이 있다. “아름답다 美(美는 아름다블시니)(석 13:19)”라고 나타나 있다.
여기서 ‘아름’은 사(私)의 뜻을 지니고 있다. <능엄경언해> 6장 108절에도 “제 모믈 아름삼디 아니하며(不私)”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아름 + 답다’의 형태로 이루어진 단어임을 알 수 있다. 조금 더 세밀하게 풀어보면 ‘어른답다>아름답다’의 형태로 바뀐 것이다.
현대에는 ‘곱다, 훌륭하다, 갸륵하다’ 등의 의미가 중심에 있지만, 과거에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었다고 본다. 그러므로 아름답다는 표현은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사람에게 써야 한다. 어린아이에게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욕이 될 수도 있다.
참고로 ‘어른’은 ‘어르다’의 관형사형이었는데, 명사로 바뀐 것이다. 예전에 ‘임시로 남의 집 행랑에 지내며 그 집 일을 도와주는 사람’을 ‘드난’이라고 했다. 드난살이, 드날다’ 등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것도 관형사형이었는데, ‘명사’로 바뀐 것과 같은 형태이다.
우리말이지만 참 어렵다.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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