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트럼프 정부가 한국의 합작 기업 공장 건설 현장에 근무하는 인원들을 구금한 데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미 정부 인사는 이번 사건이 미국 내 투자를 위축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8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린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의 정보 공유 동맹) 국토 안보 담당 장관회의에 참석한 크리스티 놈 미 국토안보부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한국인 구금 사태에 대해 "이는 모든 기업이 미국에 입국할 때 규칙을 알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고 <AP> 통신이 보도했다.
통신은 "놈 장관은 수백 명의 한국인을 구금한 이민 단속이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에 불확실성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미국에 대한 투자를 저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통신에 따르면 그는 "미국에 와서 우리 경제에 기여하고 사람들을 고용하고자 하는 모든 기업들이 미국 시민을 고용하고, 우리의 법을 준수하며 올바르게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우리나라로 데려오도록 장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4일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을 비롯한 미 정부 기관들은 조지아주에 위치한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에서 불법체류자들을 단속해 한국 국적자 300여 명을 구금한 바 있다.
이에 미국 내에서도 미국의 이같은 단속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트럼프 정부가 한국과 일본, 유럽연합(EU) 등으로부터 수천 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고 하면서도 이를 실행하기 위한 외국인 입국에 장벽을 치고 있는 것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지난 6일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정부의 이 체포작전은 대통령이 강조하고 있는 '미 제조업 확장'이 그의 공격적 이민 단속과 충돌하며 이해관계 상충을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태미 오버비 전 암참 수석부회장은 신문에 "이 사건은 아시아 전역의 기업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어조가 다소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지난 5일 구금된 한국인들에 대해 "그들은 불법 체류자(illegal aliens)였고 ICE는 자기 할 일을 한 것"이라고 말했는데, 7일에는 "여러분의 투자는 환영하며, 우리는 여러분이 매우 뛰어난 기술 인재들을 합법적으로 데려와 세계적 수준의 제품을 만들도록 장려한다. 이를 위해 신속하고 합법적으로 길을 열어줄 것"이라며 사태 해결을 위한 대책 마련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런데 놈 장관이 한국의 구금자들에 대해 '자진출국'이 아닌 '추방'을 당할 것이라고 말해, 실제 한미 간 이 사안을 두고 원만한 합의가 이뤄질 수 있을지 미지수다.
<AP> 통신이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놈 장관은 한국인들이 추방되는 것인지, 이에 따라 영구적으로 재입국이 금지되는지에 대한 질문에 "조지아에서 실시된 작전을 통해 구금된 많은 사람들은 법에 따라 추방될 것"이라며 "그 중 일부는 단순히 최종 추방 명령 이후에도 머문 것 외에 범죄 행위가 있었기 때문에 그에 따른 결과를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나라에 불법적으로 체류하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 바로 오늘, 구금되기 전에 자진해서 돌아갈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라고 위협하기도 했다.

놈 장관의 이 발언은 한국이 발표한 한미 합의 내용과는 배치되는 대목이다. 7일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 모두발언에서 구금된 인원에 대한 교섭이 마무리됐다고 밝혔고, 이후 8일 외교부는 '자진출국'(Voluntary Departure) 으로 이들에 대한 귀국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자진출국'과 '추방'은 이후 미국 재입국 시 금지 기간이 다르다는 점에서 중요한 대목이다. 미국의 이민국적법(Immigration and Nationality Act, INA)에 따르면 180일 이상 1년 미만의 기간 동안 불법체류(Unlawful presence)를 한 상황에서 재판 없이 자진출국을 하면 향후 3년 동안 재입국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미 법원 이민판사의 승인을 받아 자진출국을 할 경우에는 이민법상 다른 문제가 없다면 출국 이후에는 언제든 미국 재입국이 가능하다.
그러나 재판을 거치지 않고 '신속추방'(Expedited Removal)이 될 경우 이후 미국에 5년 간 입국이 금지되며 재판을 거쳐 이민판사의 추방명령(Removal Order)을 받아 출국할 경우 10년 동안 입국이 금지된다. 다만 1년 이상 불법체류를 한 경우에는 자진출국이든 추방이든 동일하게 이후 10년 동안 재입국이 불가하다.
놈 장관의 발언에 대해 이재웅 외교부 대변인은 9일 정례브리핑에서 "한미 양국은 미국 조지아주에 구금돼 있는 우리 국민 전원을 자진 출국 형태로 가장 빠른 시일 내 귀국시키기 위한 세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구금돼 있는 한국인들의 귀국과 관련 이 대변인은 "현지 시간 10일 우리 전세기가 미국을 출발하는 것을 목표로 외교부 등 정부와 관계 기업 및 항공사 측이 최선의 노력을 다해 준비하고 있다"며 "모든 준비가 끝나고 출발시점이 확정되는 대로 구체 계획을 추후 발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해당 전세기는 368석의 대형 항공기로, ICE 구금시설에서 자동차로 약 4시간 30분 정도 걸리는(428km) 곳에 위치한 애틀랜타 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이 전세기의 비용은 기업 측에서 부담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 전세기에 중국과 일본 등 다른 국적의 구금된 인원들도 탑승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미국 현지에 도착해 자진출국과 관련한 행정 절차 및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등 고위급 인사를 만나 최종 조율 과정에 돌입한 가운데, 국토안보부 장관과도 만날 예정인지에 대해 이날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출입국 관련 연방정부 인사들과 면담을 조율하고 있다"고 말해 가능성을 열어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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