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신은 한 생명이 태어나는 기쁨과 설렘이 공존하는 시기다. 두려움도 있다. 이전보다 임신 연령대가 높아지며 자연유산, 계류유산 사례가 증가하고 있으며, 임신 기간 동안에는 몸이 예민해지고 작은 증상에도 크게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감기 기운이 있어도 항생제, 소염제 등 양약을 쉽게 먹지 못하고, 소화불량·역류성식도염·근육통, 두통, 심한 입덧 때문에 일상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임신 중 나타나는 피부 가려움증은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 더 괴롭기도 하다.
이럴 때 한약이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임신부들이 “정말 안전할까? 어떤 약이든 태아에게 안 좋다고 들었는데…” 하는 불안을 먼저 갖는다. 임신부의 몸은 아이와 함께 변화하기 때문에 치료를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물론 한약에도 임신 중 반드시 피해야 하는 약재가 있다. 오두(烏頭), 섬수(蟾酥) 같은 독성이 강한 약재는 태아에게 해를 끼칠 수 있고, 대극(大戟), 대황(大黃) 등 배설 작용이 지나치게 강한 약재 역시 골반에 충혈을 일으켜 유산 위험을 높일 수 있다. 또한 우슬(牛膝), 도인(桃仁), 봉출(蓬朮)처럼 어혈을 풀어주는 다빈도 약재도 자궁을 수축시켜 위험할 수 있다. 그래서 임신부의 한약은 반드시 금기를 아는 한의사의 세심한 진단과 처방이 필요하다. 또한 내원 당시 수정 몇 주차인지, 또한 약제의 투여 방법, 태반 통과 여부, 노출 기간, 다른 약제와의 동시 노출 여부 등도 중요한 요소이다.
그렇다고 한약이 위험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임신부의 건강을 지켜온 처방 중에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안태음(安胎飮)은 임신 초 태동 불안 시기에, 태아를 안정시켜 유산을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달생산(達生散)은 출산이 임박한 산모의 기혈을 보해 출산을 원활하게 돕고, 보생탕(保生湯)은 임신 중 심한 입덧을 치료하는 한약이다. 일반적인 입덧보다 심해 식사를 하지 못하는 경우, 임신부와 태아 모두 영양분을 잃을 수 있어 치료가 필요하다. 또한 임산부 고빈도 사용 약재로는 당귀(當歸), 속단(續斷), 백출(白朮) 등의 약재가 있다. 이처럼 수백 년간 수많은 임산부에게 쓰여온 처방들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안전성과 효과를 보여주는 임상 자료라 할 수 있다.
한약은 단순히 증상을 완화하는 것을 넘어 산모와 태아의 생명을 지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입덧, 복통, 역류성식도염, 감기, 가려움증 등 임신 중 흔히 겪는 증상들을 안전하게 다스리면서 산모가 지치지 않도록 돕는다. 무엇보다 “참아야만 한다”는 생각 대신, 몸과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한약의 큰 역할이다. 위에서 언급한 질환 외에도 임신 초기 절박유산, 반복 유산(습관성 유산), 난임 치료(시험관 아기 시술)에도 한약은 다용된다.
임신은 혼자 견뎌야 하는 과정이 아니다. 수백만 명의 임산부들이 겪어온 경험과 누적된 임상 데이터가 오늘의 한약을 만들었고, 그 안에는 수많은 생명을 지켜낸 기록이 담겨 있다. 한약은 산모의 임신 주수, 체질, 건강 상태 등에 맞춰 개인별로 조제된다. 한의학을 통해 임신이라는 특별한 시간을 산모와 태아 둘 다 조금 더 건강하고 편안하게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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