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슬부슬 비가 내리던 지난 12일 오후 수해복구 작업이 한창이던 전남 곡성군 겸면의 한 경사로 밑에 굴착기 한 대가 전복됐다.
신고를 받고 도착한 소방대원들이 긴급히 굴착기 유리창을 깨고 중장비로 들어올려 구조에 나섰지만 굴착기 기사 A씨(52)를 살리기엔 이미 늦은 뒤였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먹고 살기 위해 갔던 일터가 죽음의 장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강조한 날이었다.
사고 다음날인 13일 A씨는 곡성의 한 장례식장에 안치됐다. 영정 속 그는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 일순간에 아버지를 잃은 딸과 아들의 울음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프레시안> 기자와 만난 A씨의 처형 B씨는 "비가 오면 공사 안 하는 거 다 아는 거 아니냐"면서 "발주처에서 한 명만이라도 나와서 '오늘은 쉬라' 했으면 사고가 없었을 텐데…"라며 말을 잊지 못했다.

일만 있다면 한 달에 30일을 일했다는 A씨가 들고 다니던 휴대전화 달력 앱엔 '○○리 공사', '아스콘 작업' 같은 일정으로 빼곡했다.
유족에 따르면 A씨는 소속 건설사로부터 일을 하고도 거액의 대금을 받지 못한 상태였지만, 일을 나가지 않으면 건설사 쪽에서 다음 일을 주지 않으니 거절할 수 없었다고 한다.
사고 현장은 지난 폭우로 쌓인 잔해물을 치우는 작업이었다. 이 작업이 끝나자 마을 이장이 '여기도 같이 해달라'며 인근 경사로에 막힌 수로의 토사를 제거하는 작업을 요청했고, 면사무소 총무팀장이 전화로 승낙했다.
고인의 지인은 "무사고 30년차 베테랑 굴착기 기사인 A씨도 장비 폭과 비슷한 좁은 길목, 50도 가까운 경사로를 위 아래로 오가며 작업해야 하는 환경은 쉽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누가 옆에서 봐주기만 했어도 사고는 없었을 텐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유족들도 "담당자가 전화로만 승인했고, 관급공사인데 현장에 아무도 안 나왔다"며 "이장이든 누구든 한 명만 나와 유도했어도 사고는 막을 수 있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면사무소측은 "사고 현장에는 A씨와 토사를 싣는 5톤 트럭 운전수, 인근 밭 주인이 있었다"고 밝혔다.
A씨의 처남 이대곤씨(41)는 "곡성군에서는 수해복구 지시 공문만 보냈다고 하고, 겸면사무소는 직접 고용관계가 아니라고 빠지고, 건설사는 A씨를 면사무소에 소개만 했을 뿐이라고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상황이다"라며 "누구 하나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분개했다.

해당 사고 원인과 책임 소재는 경찰과 고용노동부, 행안부 등에서 나와 조사가 진행 중이다.
현재 유족들은 어떤 안내도 피드백도 없이 기다려야만 하는 답답한 상황에서 장례를 치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대곤씨는 "국가적 재난인 수해 복구현장에 투입됐다가 사망한 한 가정의 가장에게 산재 여부 판단이 어렵다는 지자체가 정상인가"라며 "이럴 경우 누가 국가를 믿고 재난상황에 나서겠나"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어 "사고 현장조사 하는 날도 몰랐는데, 건설사 대표가 알려줘서 갈 수 있었다"면서 "군에서는 나와 보지도 않고 면장도 개인 일정 핑계로 늦게 나타났다. 사건 초기 컨트롤타워의 부재와 행정의 대응이 너무 아쉽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사고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했는데 곡성에서는 얼마전 외국인 노동자 사망 사고도 있었다"며 "이러한 현장의 사망 사고를 막기 위한 제도적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족은 마지막으로 "국가적 재난 상황 복구를 위해 나섰다가 변을 당한 고인에게 진심어린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 약속이 필요하다"면서 "신속한 사고 처리 매뉴얼을 만들어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강신성 겸면사무소 면장은 "사고 당일 현장과 면사무소를 오가며 군수와 부군수에게 수차례 보고했고 개인적인 일로 사고 당일 직원 둘만 대신 보내고 장례식장에 가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유족들의 입장과 원하는 바를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보상이나 필요한 조치를 하려면 고용노동부의 조사 결과 등 근거가 필요한데 그전까지는 예산을 세워 집행할 수가 없어 답답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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