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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피를 나눈 자리"…11년 만에 열린 옛 광주적십자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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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피를 나눈 자리"…11년 만에 열린 옛 광주적십자병원

광주시, 5·18민주화운동 45주년 맞아 한 달간 임시 개방

"이 병원은 아직 폐원이 아닙니다. 멈춘 공간일 뿐, 사람을 살리던 공간으로 기억은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980년 5월 시민들이 피 흘리는 이웃을 위해 팔을 걷어 헌혈에 나섰던, 광주 동구 천변우로에 위치한 옛 광주적십자병원이 11년 만에 시민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5·18민주화운동 45주년을 맞아 광주시는 한 달간 병원을 임시 개방했다. 지난 3일부터 시작된 이번 공개는 단순한 공간 개방을 넘어선다. '멈춘 공간의 이야기,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라는 전시 제목처럼, 이곳은 시간과 기억, 상처와 치유가 뒤섞인 복합의 장소다.

▲5·18민주화운동 45주년을 목전에 둔 12일 옛 적십자병원 건물에 방문객들이 찾고 있다.2025.05.12ⓒ프레시안(김보현)

복도 끝 창문으로 빛이 들고, 침상에는 하늘색 모포가 덮여 있다. 복도에는 오래된 수납장의 낡은 페인트 자국이 여전히 남아 있다. 원무과 앞에는 2012년 런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달력은 2013년 12월에서 멈춰있다. 그때 이 병원은 문을 닫았고, 그 시간은 그대로 정지했다.

특히 이 병원은 광주에서 최초의 5·18 희생자로 알려진 김경철씨가 실려 왔던 곳이기도 하다. 5월18일 오후 청각장애인이었던 김씨는 금남로에서 계엄군의 구타를 당해 의식불명 상태로 이송됐으나, 다음 날 새벽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이창성 중앙일보 기자의 5·18 당시 시민들의 헌혈하는 모습을 담은 흑백사진(좌)과 헌혈 장소로 추정되는 옛 적십자병원 308호의 모습(우).2025.05.12ⓒ프레시안(김보현)

계엄군의 집단 발포 이후 혈액 부족 사태가 벌어지자 시민들의 헌혈이 줄을 이었던 장면도 전시돼 있다. 당시 이 장면을 촬영한 이창성 중앙일보 기자의 흑백사진에는 수십 명의 시민이 병원 내부 복도에 줄지어 서 있다.

그 사진 속 공간은 모이즈(MOIZ)팀과 광주시청 관계자의 병원 도면 대조 등 분석을 통해 병원 3층 308호로 추정됐다. 병원 도면과 창문의 구조, 벽체 모양 등을 일치시켜 확인한 결과다. 현재는 안전상의 이유로 비공개인 상태다.

조선대 경영학과 학생 조은빛씨(24)는 "SNS에서 보고 궁금해 와봤는데, 책이나 영화로는 몰랐던 5·18의 세세한 내용들을 접할 수 있어 뿌듯했다"고 말했다. 함께 온 김민지씨(24)도 "뜻깊은 이 병원이 철거되지 않고 시민들을 위한 전시공간으로 남길 바란다"고 했다.

▲12일 옛 적십자병원을 찾은 광주 시민들이 병원 뒷마당에서 박미경 오월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며 전시물들을 관람하고 있다.2025.05.12ⓒ프레시안(김보현)

5·18기념재단 오월해설사 박미경씨(55)는 "도청과 가장 가까운 병원이었기에 당시 부상자들을 위해 복도까지 침상이 늘어서고, 헌혈하러 온 시민들이 먼저 병원으로 달려왔다"며 "이곳은 광주가 하나였던 공간, 주먹밥을 나눴 듯 피를 나눈 생명의 연대가 흐르던 장소"라고 말했다.

특별한 홍보가 없었음에도 주말에 300여명 평일에는 100여명이 찾는 등 현재까지 1500여명이 찾았다. 이날도 지자체 관계자들과 시민들로 붐볐다.

옛 적십자병원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와 영화 '택시운전사'에도 등장하는 등 5·18의 문화적 상징이기도 하다. 병원이 다시 문을 연 이유는 분명하다. 아직 이 공간이 전할 이야기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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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현

광주전남취재본부 김보현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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