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시끄럽고 꼴보기 싫은 일만 생기는데 잔치 하고 싶겠소."
설 명절 연휴를 앞둔 22일 광주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5일장인 북구 말바우시장은 손님들로 북적였지만 명절답지 않게 양손이 가벼웠다.
상인들은 홍어를 썰고 전을 부치면서도 호객행위에 한창이다. 한 수산물 판매점 상인은 "1만원에 대하 15마리, 싸다고 수입산 아니고 여수에서 온 놈"이라며 능숙하게 손님들을 모았다.
방앗간에서는 고소한 기름 냄새가 가득했고 정육점 상인은 전으로 부칠 고기를 썰며 미리 준비한 LA갈비를 진열했다. 동태만 취급하는 한 가게에서는 냉동 동태를 바로 전 부칠 재료용으로 썰어서 판매해 손님들의 눈길을 끌었다.
명절 제수용품을 파는 가게보다 수제 어묵가게나 한과 가게가 붐볐다. 가판대에 올려진 각양각색의 어묵과 한과, 옛날 과자 등에 손님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상인들은 6일의 긴 설날 연휴를 앞두고 명절 특수를 기대했지만, 손님들의 지갑은 얼어붙은 최근 경기처럼 쉽사리 열리지 않는 모습이다.
말바우 시장을 오가는 방문객들은 상점 여러 곳에서 가격을 비교하고 흥정도 하며 분주하게 오갔다. 하지만 정작 손에 든 검은색 비닐봉투에 간단한 식료품이나 간식거리 정도만 구매할 뿐 명절 용품을 구매한다거나 선물세트를 구매하는 이는 보기 힘들었다.
한 60대 여성은 바구니에 올려진 조림용 병어를 구매하려다 "5만원"이라는 말을 듣고 발걸음을 돌리기도 했다.
긴 연휴로 오히려 장바구니 규모를 줄였다고 하는 손님도 있었다.
A수산에 방문한 김현숙씨(62·여)는 "연휴가 기니까 가족들이 해외로 가거나 따로 오기도 해서 옛날처럼 한꺼번에 많이 살 필요가 없다"며 "평소처럼 사고 명절 지낼 것들을 조금 더해서 사는 수준으로 장 보러 왔다"고 말했다.
청과에서는 마진을 줄여 5000원에서 1만원대 과일들을 주력 상품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진수네 과일가게 주인 조미화씨(50대·여)는 "너무 불경기라 손님들이 구경만 하지 선뜻 과일을 사가는 사람이 정말 없다"며 "명절 분위기를 전혀 못 느끼겠다"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어 "가게들을 둘러보면 알겠지만 선물세트도 안 나가서 아에 취급 안 하는 곳이 대다수"라며 "여기는 직접 작업하니 그나마 팔 수 있지, 다른 곳은 엄두도 못내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조씨는 "가격을 보면 알겠지만 마진 없이 파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물건 들여왔으니 일단 팔아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하며 가게 뒷편에 트럭에서 과일 박스들을 옮겨 포장하기 시작했다.
상인들은 가뜩이나 어려운 경기에 설상가상으로 12·3 비상계엄 선포와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까지 겹치면서 소비 심리가 더 악화됐다고 입을 모았다.
30년째 방앗간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60대)는 "눈을 씻고 봐도 장사 잘되는 곳이 없다"며 "안 그래도 어려운 판국에 대통령이 그 난리를 치고 계엄에다 무안에서 그 사고까지 났으니 누가 마음 편하게 돈을 쓰겠나"고 토로했다.
이어 "세상 시끄럽고 꼴보기 싫은 일만 계속 생기는데 명절 잔치 하고 싶겠나"라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이 지난 15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설 차례상 차림비용은 평균 20만 3349원으로 전년 대비 소폭(3.9%)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총비용은 전통시장 이용시 18만 8239원, 대형유통업체 21만 8446원으로 전통시장이 대형유통업체보다 13.8% 저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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