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도공사가 '수서행 KTX 운행', '쪼개기 민영화 반대' 등 정부의 철도 정책에 반하는 요구사항을 담은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전국철도노동조합 조합원 170여 명에게 징계 처분을 내린 사실이 확인됐다. 파업 당시 노조 집행위원이 아니었던 일반 조합원을 집행위원으로 지목해 징계한 사례도 있었다.
파업이 끝나고 1년이 넘은 시점에서 무더기 징계가 이뤄진 배경과 관련해선 철도노조의 12월 파업을 앞두고 사측이 압박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프레시안>의 취재를 종합하면, 철도공사는 2023년 9월 철도노조 파업과 관련 조합원 175명에게 파업 1년 2개월 만인 지난 8일 징계처분 사유서를 보냈다. 징계 내역은 △정직 8명, △감봉 43명, △견책 124명 등이다.
징계를 받은 조합원 중에는 파업 당시 중앙쟁의대책위원회 집행위원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집행위원회에 속해 쟁대위의 모든 사업을 총괄, 투쟁상황을 점검·통제했다"는 내용의 감봉 처분 징계사유서를 받아든 이도 있었다.
앞서 철도노조는 노조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열어 조합원 64.4%의 동의를 얻은 뒤 지난해 9월 14일~18일 파업을 진행했다. 요구사항은 △수서행 KTX 운행, △직무급제 도입 철회, △4조 2교대제 시행, △임금인상 △시설유지·보수 업무 이관 등 쪼개기 민영화 중단 등이었다
철도공사는 그 중 수서행 KTX 운행, 민영화 중단 등이 노조법상 노사교섭 사항인 '노동조건'이 아닌 '정부정책'에 관한 요구라는 이유로 2023년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이를 기획·주도·선동하는 행위 등을 했다는 점을 징계사유로 삼았다.
철도노조 관계자는 그러나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작년 파업 당시 국토부도, 철도공사도 '이번 파업이 불법이니까 파업을 하면 안 된다'고 공표한 적이 없다"며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국토부 철도국장도 '(2023년 철도노조 파업을) 명확하게 불법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철도공사가 정부정책 관련 요구를 문제 삼은 데 대해 그는 "당시 파업은 임금교섭 과정에서 이뤄졌고, 노사가 수서행 KTX 투입 문제를 논의하고 정부에 의견을 전달하기로 합의까지 했는데 뜬금없이 징계를 했다"며 "수서행 KTX 투입은 국토부가 수서-부산 SR 노선을 11% 축소하겠다고 해 시민 불편을 해소하려 한 요구였다. 민영화 중단은 주된 쟁점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파업이 끝나고 1년 넘게 지나 징계하는 경우도 처음 본다"며 "12월 초 파업을 할 계획인데, 그걸 앞두고 분위기 조성용으로 징계한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이어 "징계와 관련해서는 이후 여러 절차와 과정을 통해 다투겠다"고 밝혔다.
철도공사 측은 이번 징계가 부당하다는 주장에 대한 입장을 묻는 <프레시안>의 질문에 "징계가 진행 중이라 입장을 밝히기가 조심스럽다"고 답했다.
한편, 철도공사는 지난 4월 29일에도 철도노조 조합원 5명에게 정직, 6명에게 감봉, 6명에게 견책 징계를 했다. 철도노조가 2023년 파업을 2주일 여 앞둔 8월 14일~9월 2일 진행한 준법 운행 투쟁 과정에서 차량 정비 대체인력 투입을 막고 정시운행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 등을 징계 사유로 제시했다. 철도공사가 파업이 아닌 태업을 이유로 징계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철도노조는 이에 대해 지난 5월 2일 성명에서 "작년 철도 노동자의 투쟁은 사측 스스로 정한 작업 규정을 좀 더 정확히 지키는 준법 운행에 불과했다"며 "억지 징계"라고 주장했다. 이어 준법 운행 투쟁 당시 사측이 "정지 신호를 무시하고 정시 운행 명령을 남발하는 등 규정을 무시한 위험천만한 행위를 했다"며 "징계의 칼날은 작업 규정을 지킨 조합원이 아닌 사측을 향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앞서 12월 초 무기한 파업을 예고한 철도노조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안전일터 지키기' 행동이라는 명칭으로 오는 18일부터 역 정차시간을 지키는 등 준법투쟁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요구는 △4조 2교대 전환, △부족인력 충원, △기본급 2.5% 인상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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