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분들이랑 연습생들의 계약은 다를 수 있죠. 그런데 다르지 않은 점은 저희 다 인간이잖아요. 그런데 그걸 놓치시는 분들이 되게 많이 계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한 번 더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케이팝그룹 '뉴진스'의 멤버 하니가 1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자신이 겪은 '하이브 내 직장내괴롭힘' 의혹과 관련해 이같이 말했다. 고용형태나 신분에 관계 없이 누구도 직장내괴롭힘을 당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인기 연예인인 하니의 국감 출석을 계기로 연예인, 특수고용노동자 등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해 직장내괴롭힘법 등 노동관계법의 사각지대에 있던 이들의 문제가 해소될지 주목된다.
하니는 지난달 11일 뉴진스 멤버들과 함께 한 유튜브 방송에서 하이브 산하 레이블인 빌리프랩 소속 아일릿 멤버들과 마주쳤을 때 아일릿 매니저에게서 '무시해'라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직장내괴롭힘 논란이 일자 국회 환노위는 지난달 30일 전체회의에서 하니를 참고인으로 채택했다.
참고인석에 선 하니는 국감 출석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 "제가 오늘 여기 나오지 않으면 조용히 넘어가고 또 묻힐 거라는 걸 아니까 나왔다"며 "그리고 앞으로 이 일은 누구든 당할 수 있다. 그래서 다른 선배님이든 후배들이든 저와 같은 동기분들이든 지금 계신 연습생들도 이 일 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직장내괴롭힘 피해를 입은 후 김주영 어도어 대표에게 대응을 요청했지만 "증거가 없으니 참아라"는 말을 들었다며, 당시 상황이 녹화된 CCTV에는 당시 인사하는 장면이 담긴 약 8초 분량의 영상만 남아있고, 이후의 장면은 삭제돼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증인으로 출석한 김 대표는 "뉴진스 부모님으로부터 제가 어도어 사내 이사 일원이었을 때 이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씀을 듣고 사내이사로서 아티스트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CCTV 확인을 요청했으나 안타깝게도 보관기관이 만료돼 있었다. 복원까지 알아봤지만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쉽게도 현재 내부적으로 파악하기로는 서로 주장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하니는 "죄송하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애초에 저를 지켜주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싸울 의지가 없어 보이셨다"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하니는 어도어 모회사인 하이브 임직원들을 겨냥한 발언도 이어갔다. 그는 "(이번) 사건만 아니었고, 데뷔 초반부터 되게 어떤 높은 분과 많이 마주쳤다. 마주쳤을 때마다 저희 인사를 한 번도 안 받으셨다"며 "블라인드라는 앱에서 직원분들이 뉴진스를 욕하는 것도 봤고, 회사 PR팀에 계신 어떤 실장님이 저희의 일본 데뷔 성과를 낮추려고 하시는 녹음도 들었다"고 말했다.
하니는 회사가 뉴진스 멤버들을 싫어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굳이 말해야 된다면, 회사에 정해진 길이 있다. 그런데 저희는 좀 다르게 데뷔했고, 그리고 잘 돼서 자꾸 저희를 낮추려고 하신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앞서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는 '하이브가 뉴진스가 아닌 다른 걸그룹을 하이브에서 자신이 기획한 1호 걸그룹인 것처럼 꾸며 데뷔시키고 싶어 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니는 마지막 발언을 통해 "이 문제를 겪으면서 많이 생각했던 건데, 적어도 인간으로서 존중하면 직장 내 괴롭힘과 따돌림 문제는 없지 않을까 싶다"고 재차 강조하며, 자신을 걱정해준 팬과 이날 자리를 만들어준 환노위원들에게 눈물을 글썽이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어 직장내괴롭힘 의혹과 연관된 하이브 관계자들이 "진짜 잘못한 게 없으면 숨기는 것 없이 당당하게 나와야 되는데 자꾸 이런 자리를 피하시니 너무 답답하다"며 "(제가) 또 나와야 한다면 한국어 공부도 열심히 해 나오겠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하니 씨를 비롯해 아티스트분들의 목소리에 더 귀기울이고, 인권까지 잘 보호해 아티스트분들이 갖고 계시는 꿈과 희망을 잘 펼 수 있도록 세심하게 살피겠다"며 "제가 어도어 신임 대표가 된지 딱 한 달 반 정도 됐다. 조금만 더 믿고 기다려주시면 사회에도 보답하고 K-POP을 아껴주시는 분들에게도 보답하는 더 좋은 회사를 만들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여야 환노위원들은 이날 하니를 국감에 부른 것은 노동자성 인정을 받지 못해 노동관계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현실을 들여다보기 위한 것이라며, 이와 관련한 질의를 이어갔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안호영 환노위원장은 "기술 변화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노동자들이 등장했다.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 등 노동법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850만 명에 육박한다"며 "오늘 증인신문은 최근 발생한 사건을 통해 노동법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다루기 위한 것"이라고 하니를 이날 국감에 출석시킨 이유를 설명했다.
환노위 여당 간사인 국민의힘 김형동 의원은 노동자성 인정 여부와 관련해 "급여의 많고 적음은 문제가 아니다. 실질적인 근로형태를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가 알기로 하니가 싱어송라이터처럼, 조용필처럼 활동하지 않는다. 안무까지 회사에서 다 정해주는 것 아닌가"라며 하니와 같은 아이돌 가수도 노동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진보당 정혜경 의원은 "(하니가) '우리는 인간이잖아요'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을 듣는 순간에 좀 울컥했다"며 "엔터업계가 '우리도 노동자잖아요, 우리도 인간이잖아요'라는 목소리를 내는 역사적인 순간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했다. 이어 "엔터업계에서 K-POP을 만들어낸 주인공들이, 제대로 된 노동인권과 환경을 꼭 보장 받았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다만 국회 일각에서는 하니의 국감 참고인 채택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국회 관계자 A씨는 <프레시안>에 "우선순위 측면에서 중대재해 범죄를 저지른 아리셀 대표는 증인 채택을 못하는 환노위가 뉴진스 멤버를 불러 한 시간 동안 질의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아리셀뿐 아니고 불법파견 대법원 확정판결이 이행하지 않고 있는 현대제철, 섬 지역 발전 노동자를 집단해고 한 한국전력과 관련한 증인, 참고인도 채택이 안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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