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은 다 죽으라는 이야기냐? 오죽하면 팔십 노인이 땡볕에 나와 투쟁하겠다고 하겠느냐?"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용동면에서 50년 동안 농사를 지었다는 김복수 옹(83)은 20일 화가 대단히 나 있었다.
폭등하는 생산비, 폭락하는 쌀값, 넘치는 수입 농산물, 불어나는 농가부채 등등. 농민을 둘러싼 환경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북도연맹이 이날 오전 10시 익산시 춘포면 덕실리의 한 논에서 논갈아엎기 투쟁을 선포한 장소에서 만난 김 옹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80㎏짜리 한 가마에 24만 원은 되어야 수지타산이 맞는데 지금 쌀값은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정부가 농민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 아니냐."
산지 쌀값(80kg 기준)이 바닥을 모를 정도로 폭락하면서 농도(農道) 전북의 농심이 뿔났다. 지난 7월 하순에 17만9500원대까지 추락한 쌀값은 이달 15일 기준 17만7740원까지 주저앉았다.
작년 10월 초 기준으로 약 4만원 정도, 18% 가량 대폭락한 셈이다.
문제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대로 가면 통계조사 이래 최악으로 폭락했던 2022년 9월의 한 가마당 15만5000원보다 더 나빠질 것이란 농민들의 하소연이다.
김영재 익산시농민회 회장은 "통계청의 시장가격이 17만8000원 수준이라는 말이지 현재 시장가격은 아예 형성조차 되지 않는 상태"라며 "쌀값이 더 떨어질 것으로 보고 가격을 후려치는 상황도 벌어져 농민들은 더욱 극단으로 내몰고 있다"고 술회했다.
김 회장은 "정부가 구곡과 신곡을 합쳐 공공비축미 45만톤을 매입한다고 하는데 큰 의미가 없다"며 "구곡시장을 완전히 격리하지 않는 한 모든 정책은 의미가 퇴색될 정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쌀값폭락에도 대책이 없는 윤석열 정부에 분노한 전북 농민들이 논갈아엎기 투쟁에 돌입했다.
지난 9일과 19일 경남과 전남지역 농민들이 자식같이 정성을 들여 키운 벼를 갈아엎은 데 이어 이날에는 전북의 농민들이 동참하며 논을 갈아엎었다.
익산시 춘포면 덕실리의 한 논에서 논갈아엎기 투쟁이 선포됐고 농민들은 "식량주권 포기하고 쌀값폭락 조장하는 윤석열 정권은 퇴진하라"고 목청을 높였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북도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북연합, 전국쌀생산자협회 전북본부 등 논갈아엎기 투쟁 참가자 450여명은 이날 "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며 "2023년 재고미 20만톤을 즉각 시장에서 격리하고 식량주권을 확보하라"고 주장했다.
전북 농민들의 눈에는 절망의 눈빛이 완연했다.
자신의 논이 갈아 엎어지는 모습을 본 농민은 "찢어지는 이 심정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느냐"며 "온 정성을 들여 키운 자식을 내 손으로 팽개치는 것 같이 가슴이 아프다"고 피 끓는 심정을 토로했다.
전북도연맹은 이날 트랙터와 트럭 등 250대로 전주시까지 차량행진을 한 후 전북도청에서 집회를 여는 등 쌀값 대책을 강력히 촉구했다.
전북도연맹은 "쌀값이 계속 폭락하고 있어 이대로 가면 역대 최저였던 2022년보다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전북의 농민들이 윤석열 정부의 개방농정, 수입일변도 정책에 분노하며 즉각적인 대책을 촉구하며 논갈아엎기 투쟁을 전개한다"고 밝혔다.
전북도연맹은 "정부는 5만톤 시장격리와 농협쌀 소비촉진운동으로 쌀값을 잡을 수 있다지만 그 발표이후에도 쌀값이 계속 떨어지는 것은 정부의 정책이 잘못됐다는 것을 증명한다"며 "무차별적인 농산물 수입, TRQ수입쌀 40만8700톤이 계속되는 한 국내 농촌과 농업, 농민에게 소멸과 파멸을 불러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북도연맹은 "쌀값 폭락을 막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정부가 무대책으로 수수방관한다면 농민들은 투쟁으로 목숨값인 쌀값을 쟁취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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