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군사독재하에서 언론 자유 수호 투쟁의 구심체로 출범한 한국기자협회가 오는 17일로 창립 60돌을 맞는다고 한다. 기자협회는 창립기념일을 나흘 앞두고 13일 60주년 기념행사를 열고 지난 여정을 돌아보며 선배 언론인들로부터 이어진 창립 정신을 지켜가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한국기자협회보는 이날 행사 소식을 전하면서 박종현 기자협회 회장의 소감을 전했다.
박종현 회장은 "기쁘지만 무거운 책임감도 느낀다"고 말문을 열고 "60년 전 언론 자유의 노정을 시작했던 선배 언론인들 덕분에 이 행사를 진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특별히 감사를 표했다고 한다.
또 "선배들이 일궈 놓은 여정을 100년 후 미래 세대에 전해줄 이음새 역할을 기자협회가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 "그게 독자, 시청자, 국민 앞에 언론이 해야 할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박 회장은 "언론은 좌파도 우파도 없고, 시시비비 역할을 온전히 하고 있다"면서 우원식 의장과 여야 대표를 향해 언론이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당부했고 우 의장과 여야 대표는 웃으면서 "네"라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이어 윤석열 대통령은 이도운 수석이 대독한 축사를 통해 "기자협회의 노력으로 대한민국은 더욱 건강하고 성숙한 발전을 이뤄낼 수 있었다"고 평가하며 "우리나라가 더 크게 도약하고 우리 국민이 더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 언론의 역할과 책임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투명하고 공정한 언론환경을 조성하여 우리 언론이 사회적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고 기자협회보는 전했다.
이 시점에서 "과연 그럴까?"하는 의문이 저절로 들 수 밖에 없다.
우리 언론의 현 주소를 대변해주는 몇 가지 사례를 찾아보면 쉽게 납득할 수 있다.
지난 5월 국경없는 기자회(RSF)가 발표한 2024년 세계 언론자유지수 순위에서 한국은 180개국 가운데 62위를 기록했는데 지난해보다 15단계가 하락한 것은 물론 문재인 정부 5년 차 때 43위에서 2년 만에 무려 19계단 이나 뒤로 밀렸다.
지난 6월 10일 MBC PD수첩은 <'입틀막'시대 위기의 한국언론>편에서 한국의 언론 자유 환경을 점검했다.
MBC는 "국경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2024년 세계언론자유지수에서 한국은 62위로 추락하며 '문제 있음'국가로 분류됐고 스웨덴 다양성연구소는 올초 연례보고서에서 한국을 '민주화에서 독재화로 전환이 진행되는 국가'로 평가하면서 언론 자유 위축을 언급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PD수첩이 꼽은 한국의 언론자유 탄압과 위축 사례는 '언론인이라면 일일이 열거하기가 낯이 뜨거울 정도'다.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기자협회에 보낸 축사를 통해서 "정부는 투명하고 공정한 언론환경을 조성하여 우리 언론이 사회적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겠다"고 강조했다.
물론 지역의 규모가 작은 조직이나 단체의 행사라도 추진하려면 단체장을 비롯해 기초의회 의장이나 의원 등 지역 유지를 포함한 유명 인사가 참석해 축사를 하거나 자리를 빛내주기를 바라며 대부분 그런 현상이 통용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창립 60주년을 맞은 기자협회가 선배들의 숭고한 정신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설령 대통령실이 먼저 대통령의 축사 의사를 타진해왔다 해도 정중하게 거절하고 실시간 언론자유를 위해 현장에서 애쓰고 수고하는 기자들의 경험담을 들으면서 서로 격려하며 '언론자유의지'를 새롭게 다짐하는 시간을 가졌다면 "창립 6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가 더욱 빛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기자협회가 먼저 대통령의 축사를 요청했다면 창립 60주년 기념 자리가 군부독재 정권에 항거해 수많은 탄압을 받았던 기자 선배들의 정신을 이어 받아 향후 100년 후를 향한 이음새 역할을 했다고 보기 보다는 이 모양 저 모양으로 각계각층의 참석자들을 초청해 행사를 위한 '구색 맞추기'에 급급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6월 3일 미디어 오늘의 '변상욱 칼럼' 제목은 이렇다. "대통령의 김치찌개는 누가 다 먹었나"
주요 언론에 따르면 이날 만찬에 참석한 기자들은 앞 치마를 두른 윤 대통령의 레시피로 만든 김치찌개를 비롯해 전국에서 올라온 식재료 등을 이용한 음식들을 맛있게 즐겼다고 한다.
언론인 변상욱씨는 이날 칼럼에서 "한·중·일 정상회의가 5월 26일 서울에서 시작되고 25일에는 서울 한복판에 대통령의 무능과 권력남용을 규탄하는 시민들이 거리를 메우며 행진했다. 그런데 그 전날인 24일 대통령이 2년 전에 했던 김치찌개 만찬 약속을 지킨다며 취재기자들을 초대했다. 그 시점에서 기자들과 밥 먹자고 나선 대통령실의 결정도 황당하지만 국정 현안과 이슈에 대해 어떤 질의응답도 없는 대통령과의 회식을 강한 문제제기 없이 받아들이고 행사를 치른 기자단의 대응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고 꼬집었다.
국경없는기자회는 한국 언론에 대한 총평에서 "전통과 기업의 이해관계 때문에 언론인들이 감시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포퓰리스트적인 정치 경향이 언론인들에 대한 증오를 불러일으킨다"고 했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최근 "방송4법, 노란봉투법, 민생회복지원금법이 어렵사리 국회를 통과해 정부로 넘어갈 예정인데, 대통령실은 벌써부터 거부권 행사 군불을 때고 있다"며 "거부권을 행사하면 15건을 합쳐 20건이 넘게 된다. 집권 기간 중 연간 행사 횟수에서는 1위다. 가히 '거부왕'이라 칭할 만하다"고 비판했다.
기자협회보가 한국기자협회 창립 60주년을 맞아 최근 기자 113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77.1%가 부정 평가했다.
정부의 언론 소통에 대해서도 잘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87.3%, 윤 대통령 취임 후 ‘언론탄압’ 논란 중 가장 잘못하고 있다고 꼽힌 사안은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 기자 압수수색·기소’(85.7%)였다.
취재 현장에서는 권력과 언론의 관계를 비롯해 모든 취재원과의 관계를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으로 표현한다. 너무 가까워서도 안 되고 너무 멀어서도 안 된다는 뜻이다. 헌법 21조에 규정된 언론의 자유를 언론 스스로 행사하지 못할 때 '기레기'라는 별명은 창립 60주년이 지나서도 떨쳐 내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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