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사법시험 2차 주관식 과목에 '국민윤리' 가 있었다. 한국적 민주주의는 중요한 논제였다. 출제자 의도에 맞춰 논리를 정리하느라 고심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저자 한윤형이 (오늘날의) 한국적 민주주의를 정의했다.
"비속어를 섞는 게 용서된다면, 내가 보기에 그것은 '인민지랄지배', 그러니까 '데모지랄크라시', 구성원 상당수가 본인의 이해관계와 정견에 맞춰 적극적으로 민원과 정치적 주장을 섞은 것을 남발하고 제시하며 정치권력을 길들이려고 시도하여 실현된 민주주의 체제다."
과하지 않은 표현이다. 이런 표현들과 문제의식이 책의 날카로운 특성이다. 논리가 아직은 정제되어 있지 않다. 문제의식은 거칠다. 그럼에도 우리는 저자와 논리와 문제의식을 포용해야 한다.
이제는 진부한 표현이 되어 인용하기조차 꺼려진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진정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러시아 시인 네크라소프의 말이다.
한국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어찌 비관론자가 되지 않을 수있겠는가. 이 상태로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한 사회로 유지될 수 있을까? 이 정치체제와 정치가들로 우리 사회의 미래가 제대로 굴러갈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가?
우리 안의 우상을 깨뜨려야 한다. 우리 사회의 허위의식과 이중성을 깨부숴야 한다. 이 책의 문제의식은 바로 이 지점이다.
저자는 "'한국적 삶'의 명과 암을 동시에 규정하는 핵심적인 속성을 '주류·표준·평균에 속한 이에게 제공되는 엄청난 편의성, 그리고 그 바깥 다양한 삶의 양태에 대한 철저한 무신경함'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의 기반에는 "우리가 지식과 배움을 받아들이는 방식, 어떤 지적 토양에 기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착상에 다다른다." 저자는 여기에다 '상식'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한국은 "상식이 지배하는 나라이며 한국적 삶의 특징은 이러한 상식의 지배로부터 도출된다"는 가설이다. 이로부터 <상식의 독재>라는 책 제목이 탄생한다.
'상식의 독재'는 현대 한국의 특수성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가 제안하는 개념. 제대로된 나라로 굴러가기 위해서는 상식의 독재를 벗어나야 한다. 구석기 시대의 윤리 수준에서 벗어나야 하고, 민족주의보다는 민주주의적이고 문명주의적 관점으로 바꿔야 하고, 상식의 스펙트럼을 관대하게 넓혀야만 한다. 이것이 한국 사회가 상식의 독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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