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은 인간에게 보장되는 것이지, 인간의 탈을 쓴 짐승에게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 회의를 직접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이 발언 때문이었다. 인권위에 반(反)인권 위원들이 있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설마 정말 저렇게까지 말할까 싶었다. 발언의 주인공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명한 김용원 상임위원. 그는 일주일 전 전원위원회에서 사형제 존치를 주장하며 이같이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권위원회가 각기 다른 기관에서 추천받은 인사들로 구성된 만큼 회의에서 갈등이 표출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본다. 게다가 나의 경우 국회를 적잖이 다니다 보니 이제 어지간한 언쟁에는 무던한 편이다. 그런데 내가 참관했던 10일 인권위 전원위 회의는 지금껏 봤던 그 어떤 것보다 처참한 수준의 회의였다. '회의'라는 말조차 과분할 정도로 맥락 없는 막말과 고성, 호통만이 반복됐다. 방청석에 앉아있던 3시간이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었다.
정부‧여당 추천위원, 환장의 콤비 플레이…"임명하신 분이 이러라고 임명했나"
회의가 열리자마자 마이크를 잡은 이는 김용원 상임위원이었다. 그는 본 안건 논의에 앞서 의사진행발언을 아주 오랫동안 했다. 발언의 요지는 최근 인권위가 해병대원 순직 사건 은폐 의혹과 관련해 군인권센터의 정보공개청구를 받아들여 조사 결과 보고서를 공개한 것이 불법이라는 것이었다. 정보공개를 한 직원의 배후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송두환 위원장은 "지난번과 거의 같은 내용"이라며 피로감을 내비쳤다. 그러면서도 기왕에 다시 문제 제기가 나왔으니, 앞으로 정보공개 건을 어떻게 처리할지 논의하자고 했다. 그러나 논의는 오래가지 못했다. 여당 추천위원인 이충상 상임위원이 위원장에게 "왜 직원 색출을 하지 않느냐"며 따져 묻고 이에 김수정 비상임위원(대법원장 추천)이 제지하자, 김용원 상임위원이 호통을 치기 시작한 것이다.
"상임위원 한 분이 지금 논의와 관련해서 바른 말씀을 하는데 다른 위원이 끼어들고, 이렇게 몰상식한 위원회에 몰상식한 위원이 있다는 것,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김수정 비상임위원을 향해 박진 사무총장의 "호위무사"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진 사무총장은 "신중하게 고려해서 말해달라"고 당부했다. 청중석에서도 "말 좀 가려서 하라", "그만하라"는 야유가 터져 나왔다. 그러자 이번엔 이충상 상임위원이 청중석을 노려보며 삿대질했다.
"누구요? 뭐라 그랬어요? 갑자기 왜 끼어들어요? 방청석에서 관여를 해요? 퇴장을 시켜야지요."
보다 못한 김수정 비상임위원이 거듭 제지하자, 김용원 상임위원은 "야만적인, 아주 고약한 버릇이 있다"고 했다. 김용원 상임위원의 비난은 이번에는 위원장을 향했다.
"성찰 없이 위원회를 행정각부로 생각하고 위원장이 장관이나 되는 듯이 하고 사무총장은 하명을 받아 무소불위로 사무처 직원에게 지시하고, 행정각부처럼 하려면 상임위원을 차관으로 대우를 해줘야 하는 것인데 상임위원은 싹 빼버렸어요. 자기네들끼리 알아서 하고…."
이에 원민경 비상임위원(야당 추천)이 "본인이 차관급이라고 계속 말씀하시는데, (공무원으로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행동강령을 알고 계시냐"고 물었다. 김용원 상임위원은 귀찮다는 듯 말했다.
"시끄러워 죽겠네. 버르장머리가 없네. 아주 천박한 저돌적 호위무사."
원민경 비상임위원은 "임명하신 분(윤석열 대통령)께서 이러라고 임명한 것인가. 인권위원뿐 아니라 공무원 전반에 대한 명예훼손인 것 모르시냐"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제가 당했던 모욕과 폭언 언사들을 다른 법조인에게 이야기하면 대신 고소장 써주겠다는 이야기까지 한다"며 "김용원 상임위원에게 사과의 기회를 주고 싶고, 못하신다면 위원장님이 위원들에게 언행에 있어 반드시 지킬 최소한의 기준선을 지켜주십사 하는 당부의 말씀을 해달라"라고 했다.
김용원 상임위원은 "(사과 의향이) 없다. 위원장이 대신 말씀하시라"며 사과를 거부했다. 송두환 위원장이 재차 사과 의향을 물었지만, 김용원 상임위원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러면서 다시 송두환 위원장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위원장은 작년 11월 제가 없는 자리에서 '김용원은 자격도 없다'고 했습니다. 당사자 없는 자리에서 폭언하고 악질적으로 범행을 부인하는 것의 완결판으로 치면 송두환 위원장이 더합니다. 부끄러운 줄 아세요. 송두환 위원장에게 사과할 기회를 주겠습니다. 사과하시겠습니까."
송두환 위원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이런 언급이 오고 가는 게 매우 부끄럽고 가슴 아픈 일"이라며 "동네 목욕탕에 가도 '공중도덕, 매너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말아달라'고 쓰여 있다"고 지적했다. 말을 아끼던 다른 위원들도 "인권위를 좀 더 품위 있게 운영하자"며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그렇게 언성이 잦아드는 듯했다.
하지만 이 또한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이충상 상임위원이 인권위의 조사 내용 공개 여부를 안전보장회의(NSC)에 비유해 발언하다 다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몹시 흥분한 탓에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
송두환 위원장이 "촬영하세요. 이건 영상 찍어야 돼"라며 자조적으로 읊조렸다. 이충상 상임위원도 지지 않고 "찍으세요"라고 맞받아쳤다. 본 안건 논의는 시작도 못 했는데 시간은 이미 세 시간이나 흘러있었다. 기사를 써야 하는데 도무지 쓸 내용이 없었다. 두 상임위원의 "호위무사", "버르장머리", "천박한" 등 막말밖에는.
인권위 내 '직장 내 괴롭힘'을 생중계하라
김용원‧이충상 두 사람의 문제적 발언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기저귀 찬 게이"(이충상), "10.29 이태원 참사는 놀러 가서 죽은 것"(이충상), "언제까지 일본군 성노예 타령을 할 것이냐"(김용원) 등 알려진 것만 해도 차고 넘친다.
이런 발언들은 백 보 양보해 사회 문제에 대한 관점의 차이라고 해두자. 그렇다 해도 주변인에 대한 거친 언사는 어떤 설명으로도 납득이 어렵다. 이날은 동료 위원들에게 "천박하다"느니 "버르장머리 없다"며 지적질을 했지만, 어떤 날은 위원장을 향해서도 "버릇없이, 내가 법조 선배"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무원은 말할 것도 없고 세금 한 푼 받지 않는 유튜버도 막말이나 갑질이 알려지면 사과문을 올리고 활동을 중단하는 시대다. 그런데 일반 공무원도 아닌 '차관급' 정무직 공무원, 그리고 다른 기관도 아닌 인권위의 상임위원이 주변에 상습적으로 폭언을 해댄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내 눈에 더욱 놀라웠던 것은 이들이 어지간한 막말을 해서는 회의 참가자들이 동요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1년 넘는 세월 동안 얼마나 이런 폭언에 무뎌졌으면 그럴까 싶었다.
두 사람의 지속적 폭언은 직장 내 괴롭힘 또는 직장 갑질로 보기에 충분해 보인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이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직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이에 해당하는 대표 행위 중 하나가 바로 '지속‧반복적인 욕설이나 폭언'이다.
인권위는 과거 상급자가 하급 직원에게 다른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출근하지 말라'고 말한 사건에 대해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보고 특별 인권 교육을 주문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보다 심한 일이 지금 인권위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미 인권 단체 등 시민사회에서는 두 사람의 사퇴를 목이 쉬도록 요구해 왔다. 그러나 스스로 결심하지 않는 한, 이들을 물러나게 할 방도는 없다. 금고 이상의 형이 선고되지 않는 한 위원 신분이 보장된다고 인권위법에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퇴진이 불가능한 것이라면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이건 영상 찍어야 돼"라고 하던 송두환 위원장의 말을 실천에 옮기자. 인권위 회의를 국민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그래서 이들이 인권위원직을 계속 수행하는 것이 합당한지 국민이 판단하도록 생중계하는 것이다. 인권위 회의는 위원들과 직원, 참관인 소수 몇 명만 볼 수 있다. 이런 폐쇄적 환경이 김용원‧이충상 두 사람의 막말을 부추겼는지도 모른다. 현재 인권위 방청 규정은 '사전 허가 없는' 촬영만을 금지해 촬영을 원천적으로 차단하지도 않았다.
국회 본회의나 상임위 회의처럼 인권위 위원들의 발언이 하나하나 생중계된다면 어떨까. 과연 김용원‧이충상 두 사람이 전 국민이 실시간으로 보는 앞에서도 "호위무사", "버르장머리", "천박한" 같은 발언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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