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를 가르치다 보면 참으로 어려울 때가 많다. 한글은 엄청 쉬운데, 한국어는 엄청 어렵다(조사, 어미, 존대법 등). 매일 보내는 SNS의 답글을 보아도 갈수록 어렵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사람들은 한국어와 한글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한글은 글자를 이르는 말이고, 한국어는 우리말을 이르는 것이다. 한글은 40분이면 읽고 쓸 수 있지만, 한국어는 평생 배워야 한다.
가끔은 우리말의 표준어 규정을 확실하게 규정했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서울에 사는 교양 있는 사람이 두루 쓰는 말’을 표준어로 정하고 보니 자주 변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예를 들면 ‘자장면’이 표준어였다가 ‘짜장면’과 복수 표준어로 되기도 하고, ‘짬뽕’은 일본어라고 표준어에 등재하지 않다가, 하도 많은 학자들이 표준어 규정대로 세상 사람 모두 짬뽕이라고 하는데, 표준어가 아니라는 것이 말도 안 된다고 하니, 그제야 사전에 등재하였다.
북한에서는 문화어라고 해서 김일성의 교시로 정해 놓았다. 그래서 가르치는데 아주 편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유럽에 가면 북한 학자에게 한국어를 배운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려면 더 어렵다. 생각이 굳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곤란하다’고 하지만 북한에서는 ‘곤난하다’고 한다. 오늘은 ‘곤란(困難)’에 관한 깊이 논해 보고자 한다.
원래 ‘곤란’의 발음은 ‘곤난’이 맞았다. 그런데, 현실에서 사람들은 모두 ‘곤란’이라고 하였다. 한자로 ‘困難(곤난)’이기 때문에 과거에는 발음도 [곤난]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골란]이라는 발음을 쉽게 여겼고, 그렇게 발음해 왔다. 아무도 여기에 말을 더하지 않았다. 처음에 “[곤난]이라고 해야 합니다.”라고 누군가가 강력하게 이야기했다면, 아마도 [곤난]으로 발음했을 가능성도 있다. 한라산(漢拏山)의 발음도 원래는 ‘한나산’이었다. 나(拏) 자가 ‘붙잡을 나’이기 때문에 ‘한나산’이 맞는 발음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두 한라산이라고 발음하는 것으로 인해, 아주 글자를 바꾸어 ‘한라산’을 표준어로 만들어 버렸다. 이것을 우리는 ‘활음조’ 현상이라고 한다. 즉 발음을 부드럽게 해 주는 현상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규정이 정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다. ‘지리산’(智異山 : 이것도 원래는 지이산인데, 지리산이라 함), ‘한아름’(한안음을 발음하기 좋게 한아름으로 함) 등과 같은 것들을 활음조 현상의 대표적인 예로 들고 있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나타난다. 기독교인들이 부르는 노래(찬송가) 중에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것을 부를 때 99.9%가 [활란]이라고 발음한다. [환난]이라고 읽는 사람 거의 없었다. 왜 그럴까? 바로 곤란(困難) 같은 단어 때문이다. 곤란[골란]의 발음과 환난[환난]의 발음을 비교하면 뭔가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똑같이 ‘난(難)’ 자이고, 앞의 글자는 ‘ㄴ’으로 끝이 났다. 그러면 둘 중의 하나 발음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그러나 답은 “둘 다 맞다”이다. 앞에서 논한 바와 같이 곤란(困難)은 하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발음해서 현실음[골란]을 감안하여 뒷글자를 아예 ‘란’으로 바꿨다. 한자로 쓸 때는 ‘난(難)’이 맞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곤난’이었으나, ‘곤란’으로 바뀌고 발음도 ‘ㄴ’과 ‘ㄹ’이 만날 경우 [ㄹ ㄹ]로 발음하는 것을 적용한 것이다. 예를 들면 ‘난로[날로]’, ‘칼날[칼랄]’ 등과 같은 현상이 일어나도록 한 것이다.
다만 ‘환난(患難 : 근심과 재난을 아울러 이르는 말, 발음은 [환난])’과 ‘환란(患亂 : 근심과 재앙을 아울러 이르는 말, 발음은 [활란])’은 발음이 다르다. ‘재난’은 ‘난’이라고 부르며, ‘6·25동란’은 ‘란’이라고 한다. 이렇게 원래 한자의 음이 다르기 때문에 구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환난’은 [환난], ‘환란’은 [활란]이라고 발음하는 것이 옳다.
우리말의 발음이 늘 쉬운 것만은 아니다. 어려운 것은 어려운 대로 규정을 익혀 두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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