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총선 이후 더불어민주당 양지 텃밭인 전북에서는 보수가 '궤멸 직전'이라는 하소연이 나오고 있다.
'정권심판론'이 모든 변수를 휩쓸었던 지난 4월 총선에서 거대여당인 국민의힘의 비례정당인 '국민의미래'는 전북에서 정당지지율 8.4%를 확보하는 데 그쳐 사실상 보수의 시계가 2008년 이전으로 되돌아갔다.
제18대 총선을 치렀던 2008년만 해도 전북의 한나라당 정당지지율은 9.2%를 기록하는 등 두 자릿수 진입을 넘보며 당시 통합민주당(64.3%)과의 격차를 좁혀갔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비례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37.6%)'과 '조국혁신당(45.5%)'까지 합한 전북의 범야권 지지율은 83.1%를 기록하는 등 일방적인 대세를 형성했다.
그동안 6대 1 안팎의 싸움을 벌여온 전북의 진보와 보수 진영이 22대 총선을 기점으로 8대 1이라는 격차를 벌이며 보수의 궤멸을 걱정할 정도가 됐다.
실제로 국민의힘 후보 10명이 총선에서 얻은 표는 모두 12만9500표로, 이 중에서 정운천 의원(전주시 을)이 확보한 2만3000표를 뺄 경우 10만6000표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를 나머지 9명의 후보로 나눌 경우 1인당 평균 1만1700표 정도 얻은 것으로 분석됐다.
전북 정치권의 정통 보수층이 유권자의 20% 정도인 점을 감안할 때 국민의힘 중앙당의 공천을 받은 후보들이 획득한 1만여표는 '기본'에 불과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이다.
일부 후보는 공기업 진출 등을 염두에 두고 정작 선거운동은 사력을 다하지 않는 등 염불보다 잿밥에 마음을 둔 것 아니었느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전북 여권에서는 '빈곤의 악순환'에 대한 장탄식이 흘러나온다. 국민의힘 당원인 K씨(63·전주시 우아동)는 "이번 총선을 통해 전북의 보수는 맥없이 무너지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궤멸됐다고 봐야 한다"며 "보수의 씨앗이 움틀 곳마저 없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전주시을 선거구에 출마해 2만3000표를 얻었던 정운천 국민의힘 의원(비례) 사례를 언급하며 "전북의 보수가 민심을 잃은 것보다 '희망'을 잃은 것이 더 큰 타격"이라고 말했다.
호남의 대표 보수주자인 정운천 의원이 '정권심판론'의 거대한 쓰나미를 극복하기 위해 삭발과 함께 함거(轞車)에 들어가 스스로 갇히고 '오직 전북'이라는 혈서까지 쓰며 주민들의 지지를 호소했지만 공식 선거운동 이전의 20% 지지율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전북의 보수는 절망감을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는 푸념이다.
여권의 한 인사도 "국민의힘 후보가 총선에서 지더라도 지지율 20% 안팎에 달하고, 정운천 의원의 경우 30~40%만 나왔어도 전북의 보수가 희망을 꿈꿀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전북 여권에서는 22대 총선의 '정권심판론'이란 프레임도 작용했지만 지난해 새만금잼버리 대회 이후 여권에서 '전북 책임론'의 장작불을 지핀 후 정부가 새만금 주요 SOC 예산을 78% 대거 칼질하는 등 정부여당이 전북을 내놓고 푸대접한 것도 악재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새만금 예산 삭감과 복원의 힘겨운 과정이 지역민들의 뇌리에 깊숙이 박혀 있는 상태에서 '정권심판론'의 바람이 불자 전북여권을 초토화한 '대형 토네이도'로 돌변했다는 말이다.
여권의 한 원로는 "호남 여권을 대표해온 정운천 의원이 사라지면 과연 '제2의 정운천'이 나올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답을 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신선하고 젊은 정치인을 키우지 못한 것도 전북 여권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전북 여권은 향후 급진전할 '보수의 사막화'를 막기 위해 국민의힘 중앙당 차원의 강도 높은 '서진(西進)정책'을 강조하고 있다.
표를 주지 않고 선거 때만 되면 등을 질 것이 아니라 중앙당 차원에서 평소에 전북을 찾고 농익은 러브콜을 보내는 등 국민의힘 진정성을 보여주고 실행에 옮겨야 할 것이라는 주문이다.
아울러 여권의 호남 인물 키우기와 지역 인재 기회 제공 등 젊은 인재를 유인할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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