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와 타이, 두 나라의 사례는 우리에게 주는 정치적 함의가 크다. 전통적 유제(遺制), 다양한 민주주의 이해 방식, 권위주의적 정치 풍토의 잔존, 군부의 정치 개입, 보편 인권의 해석차, 자유주의의 역할과 비자유주의 혹은 반자유주의적 반동 등에서 곱씹을 점이 많으며, 한국의 시민사회와 민주시민들이 어떤 방식으로 이들과 연대할 수 있을지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불복종의 정치학>(박은홍 지음, 드레북스 펴냄)은 한국의 사회과학 학술 출판에서 잘 보기 힘들었던 귀한 저작이다. 서구로부터 수입된 이론의 소개 아니면 국내 상황의 분석이 주류를 이루는 풍토 속에서, 동남아시아의 현실 정치를 이처럼 깊게 파고들면서도 일반독자들이 접근하기 쉽게 집필된 학술서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책이다.
동남아시아는 한국과의 지리적 근접성, 역사적 관련성, 이주와 무역과 지경학적 이해관계로 인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지역이지만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졌던 지역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저자가 집중 분석한 미얀마(버마)와 타이는 민주주의, 인권, 시민사회, 정치이념, 보편사의 경로 등 여러 측면에서 흥미로운 함의를 제공하는 나라들이다. 두 나라 모두 세계사적으로 독특한 측면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내가 성장했던 1960년대를 회고해 볼 때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매시간 라디오 방송에서 뉴스를 보도할 때마다 첫 번째 소식으로 "우탄트 유엔 사무총장은…"이라고 나오곤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탄트는 버마 출신의 유엔 사무총장으로 국제사회에서 크게 존경받던 지도자였다. 1961년 스웨덴 출신의 다그 함마숄트 사무총장이 아프리카에서 비행기 사고로 타계한 후 우탄트가 유엔 사무총장을 승계하여 10년 동안 전세계 탈식민화 과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타이도 특별한 나라에 속한다. 제국주의 시대에도 서구에 의해 공식적으로 식민화되지 않았던 극소수 나라들 중 하나다. 세계사적으로 이렇게 중요한 두 나라의 근현대 정치변동을 정교하게 풀어낸 책이 바로 <불복종의 정치학>이다.
흔히 이론과 실제를 융합하여 학문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불복종의 정치학>이야말로 이론과 실제가 잘 어우러진 연구성과물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비교정치학적으로 예리한 분석을 하면서도 현지 연구의 실증적 측면이 더해져 생생하게 살아있는 학술서가 되었다. 인터뷰나 면담 기록이 40편 이상 들어 있어서 그것만 읽어도 두 나라 민주주의의 현재진행 상황을 육성으로 파악할 수 있을 정도다. 저자가 얼마나 한 분야를 깊이 천착해 왔는지, 얼마나 발품을 들인 노작(勞作)인지가 잘 드러나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미얀마와 타이 청년들의 세 손가락 혁명'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불복종의 정치학>이 어떤 관점에서, 어떤 지향성을 갖고 집필된 책인지 분명히 드러난다. 미얀마와 타이는 정치발전이나 경제발전의 측면에서 공통점과 차별점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으며, 그것에 더해 두 나라는 여타 동남아시아 국가들과도 공통점과 차별점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다.
더 나아가, 두 나라의 사례는 한국에 주는 정치적 함의도 크다. 구체적인 맥락은 다르겠지만 전통적 유제(遺制), 다양한 민주주의 이해방식, 권위주의적 정치 풍토의 잔존, 군부의 정치개입, 보편인권의 해석차, 자유주의의 역할과 비자유주의 혹은 반자유주의적 반동 등 여러 측면에서 곱씹을 만한 점이 많다는 뜻이다. 또한 한국의 시민사회와 민주시민들이 어떤 방식으로 이들과 연대할 수 있을지에 관해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기도 한다. 더구나 인터뷰나 면담 기록이 40편 이상 들어 있어서 두 나라 민주주의의 현재진행 상황을 육성으로 파악할 수 있다.
현재 미얀마와 타이의 상황은 우려되는 바가 크지만 양국이 가진 역사적, 문화적, 경제적 잠재력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주주의의 회복을 바라는 젊은 세대들의 열망을 기억한다면 희망의 불꽃을 여전히 피울 수 있다고 생각된다. 한국의 출판계에서 이런 책이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들에게 희망을 주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많은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