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간첩 혐의로 한국 국적자인 백 모 씨가 구금된 가운데, 러시아 당국은 백 씨와 주러시아 한국 대사관이 만날 수 있도록 한국 당국과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면서도, 양국관계가 이번 사안에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드러냈다.
13일(이하 현지시각) 러시아 <타스>통신은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러시아가 간첩 혐의로 체포된 백 씨에 대한 영사 접견을 제공하기 위해 한국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자하로바 대변인은 "러시아 외교부는 이 문제에 대해 한국 측과 긴밀히 접촉하고 있다. 주모스크바 한국대사관의 요청에 따라 백OO 이라는 이름의 억류된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영사 접견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백 씨)가 간첩 혐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것으로 의심되는 점을 감안할 때 수사 과정에 대한 추가 정보는 모두 기밀"이라고 덧붙였다.
자하로바 대변인은 최근 악화된 한러 관계와 해당 사안이 연관이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그는 "(이 사안이) 양국 관계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해, 유감스럽게도 최근 한국에서 양국 국민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이라고 간주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보고 있다"며 "국가들은 때때로 어려운 시기와 기간을 겪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하로바 대변인은 "문제는 이들 국가들이 이같은 어려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상호 존중을 기본으로 하는 대화에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가"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어려운 문제를 효과적이고 상호 존중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국가의 결단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11일 통신은 익명의 사법 당국자를 인용해 백 씨가 간첩 혐의로 지난 1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에 의해 체포되고 이어 2월 말 모스크바의 레포르토보 구치소로 이송됐다고 보도했다. 이날 레포르토보 법원은 백 씨의 구금 기간을 6월 15일까지 3개월 연장했다.
통신은 백 씨의 직업이나 활동 내용, 구체적인 혐의 사실 등을 보도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백 씨가 연해주 지역에서 탈북민 구출 및 북한 노동자들을 지원했던 선교사였다는 보도가 한국 언론을 통해 나왔다.
이와 관련 <연합뉴스>는 13일 백 씨가 소속된 지구촌사랑의쌀나눔재단의 이선구 이사장이 "간첩 혐의는 오해이거나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본다"며 "백씨는 순수하게 선교와 구호 활동을 하는 선교사"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이 이사장은 백 씨가 해당 재단에 4년 정도 소속돼 있었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지부장을 지냈지만, 선교 외에 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백 씨는 10년 넘게 해외 선교 활동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이사장은 또 통신에 "백씨가 한 구호 활동은 굶주린 소외 계층과 해외 노동자에게 먹을 것과 입을 옷을 주고 의약품을 준 게 전부"라며 "탈북을 도왔다는 등의 의혹은 다 얼토당토않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통신에 "러시아가 북한 간 친밀한 관계나 우크라이나를 우리 정부가 지원한 일 때문에 보복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선교하는 목사에게 간첩 혐의를 들이대는 건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재단 측은 백 씨의 구명을 위한 탄원서를 외교부와 주한 러시아 대사관에 전달한다는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정부는 백 씨에 대한 영사조력을 실시하고 있다는 것 외에 구체적인 상황을 설명하지 않았다. 14일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정부는 사건을 인지한 직후부터 필요한 영사조력을 제공하고 있다"며 "어제(13일) 주러시아 대사가 러시아 외교부 고위 인사를 만나 우리 국민의 신변안전 보장과 권익 보호를 위해 러시아 정부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한 바 있다"고 밝혔다.
자하로바 대변인이 이번 사안에 양국관계가 맞물려 있다고 언급한 것과 관련, 정부는 정치적 이유가 개입된 문제라고 단정짓기 어렵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정부는 러시아의 체제 특성 및 백 씨가 경찰이 아닌 정보기관에 의해 체포됐다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백 씨의 구금이 한국 국적자가 해외에서 체포되는 다른 사건들과는 그 성격에 다소 차이가 있다고 진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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