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 전 전에 대학에 다니던 시절 이야기다. <언어학개론>을 가르치던 교수님과 <문법론>을 강의하시던 교수님의 이론이 달랐다. 하필이면 같은 학기에 개설된 과목이라 매주 정신없이 두 분의 강의 내용 중에서 헷갈리는 용어들을 각각 따로 정리해야 했다. 한 분은 곡용(曲用 : 명사 또는 이에 준하는 단어가 문장 안에서 다른 단어와의 관계를 나타내기 위해서 일으키는 단어형 교체)을 인정하지 않으셨다. 즉 체언(문장의 주체가 되는 단어로 명사, 대명사, 수사)의 격을 표시하는 어미 변화라고 하셨다. 그런데 학교 문법에서는 이러한 체언의 어미변화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그래서 ‘곡용 어간’을 체언, ‘곡용 어미’를 격조사라고 한다. 예를 들면
나는 간다.
내가 간다.
나를 좋아한다.
등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는,가,를/ 등의 조사의 변화를 곡용이라고 한다. 그런데,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오신 교수님께서는 ‘체언의 어미변화’라고 하면서 굳이 ‘조사’나 ‘곡용’이라는 용어는 쓰지 않고, ‘체언의 어미 활용’이라고 하셨다.
한편 국내파 교수님은 완전히 교과서적인 수업으로 문법의 정석과 같은 가르침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분은 용언의 활용(끝바꿈이라고도 함, 용언이나 서술격 조사의 줄기가 되는 부분에 어말 어미나 선어말 어미가 붙어 문장의 성격을 바꾸는 일)과 체언의 곡용을 명확하게 구분하셨다. 그래서 조사는 품사의 하나가 되고, 어미는 품사가 될 수 없음을 강하게 주장하셨다. 활용의 예를 들어 보면
나는 사과를 먹는다.
나는 사과를 먹겠다.
나는 사과를 먹었다.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는, 겠, 었/의 변화를 통해, 현재, 미래, 과거 시제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용언의 변화는 문장의 성격을 바꾸는 기능을 한다. 외국인 학생들은 여기서 ‘어말 어미’와 ‘선어말 어미’를 어느 것을 먼저 써야 하는지 헷갈려 한다. 시제를 먼저 써야 할지 존칭을 먼저 써야 할지 모르고 순서를 바꾸기도 한다. 한국인들은 습관에 준해 ‘존칭’을 먼저 쓰고, ‘시제’를 다음에 쓴다는 것은 상식으로(사실은 습관적으로) 알고 있다.
선생님께서 책을 읽으신다.
할머니께서 읽어주시겠어요?
나르기자가 읽어주겠시어요?
와 같이 외국인들은 ‘존칭’과 ‘시제’의 순서를 헷갈려 쓰기도 한다. 용언의 활용에서는 어미의 변화가 어렵고, 곡용에서는 격조사가 문장의 성분을 바꾸기 때문에 격조사와 보조사 등의 구분이 어렵다(“나는 간다.”/ “내가 간다” 등의 구분). 그러므로 상황에 맞는 표현을 써야 한다. 언어는 습관에 따르기 때문에 습관이 먼저고 그에 따라 문법을 정하게 되어 있다. 어린 아이들은 문법을 몰라도 말을 배워나가는 것과 같다. 다만 공통된 어법을 만들어 표기의 통일성을 기한 것이 문법일 뿐이다. 지금은 옳지 않다고 할지라도 통일된 글쓰기를 위해 맞춤법에 맞는 글을 써야 하는 이유다.
대학의 강의나 전문가들에 따라 각자의 이론이 있을 수 있으나 각 시대에 따른 언어 규정은 가능하면 지켜야 한다. 그래서 국립국어원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것이다. 아직도 60대 후반의 독자들은 ‘먹겠읍니다’라고 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규정 표기는 ‘먹겠습니다’이다. ‘읍니다’를 ‘습니다’로 바꾼 것은 꽤 오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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