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임명 첫날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이만희 사무총장을 연달아 만났다. 의대 교수인 인 위원장은 자신이 '정치 초보'라는 점을 강조했고, 혁신위의 권한에 대해서도 "어디까지인지 모르겠다"고 했다가 "무서울 정도로 권한을 많이 부여받았다"고 하는 등 다소 정리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여권에서는 "훌륭한 분이지만 정치권을 잘 알지는 모르겠다", "김 대표가 권한이 없는데 혁신위에 무슨 권한을 줄지 모르겠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인 위원장은 23일 오후 국민의힘 당사에서 김 대표와 만나 50분 가량 비공개로 회동했다. 회동 전 공개발언에서 김 대표는 "언론에 검색해 보니 우리 인요한 교수님이 와이프와 아이 빼고 다 바꿔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국민 지지가 엄청 높았다"며 "그런 자세로 혁신위 활동하시고 우리 당도 국민 뜻을 잘 받들어야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인 교수께서 한국형 앰뷸런스를 개발해 국민에게 많은 희망이 된 것처럼 국민의힘에서도 창의력을 발휘해 주시면 우리 국민의힘이 더 성숙하게 국민의 사랑을 받는 당이 될 것"이라며 "역량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인 위원장은 "제가 32년 교편을 잡고 대학병원에서 일했는데 이것(정치)은 아주 새로운 일"이라며 "부탁드리고자 하는 것은 시간을 달라. 예습 복습 많이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자신의 권한에 대해 그는 "며칠 전에 대표님하고 식사를 같이 했는데 무서울 정도로 권한을 많이 부여해 줬다"며 "'우리의 편견, 뜻을 따르지 말고 올바른 방향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진정으로 도와달라'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김 대표는 회동 뒤 기자들과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라는 질문에 "그냥 일반적인 이야기"라고 답했다.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더라'는 질문에 그는 "화기애애는 아니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인 위원장은 회동 후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 "지금 시작 단계다. 여러분과는 위원들 정해지면 그때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겠다)"며 "원칙은 섰는데 세부사항이 많다"고 밝혔다.
인 위원장은 이날 오전 이만희 사무총장을 만나기 전에도 기자들과 만났다. 인선 배경을 묻는 말에 인 위원장은 "통합을 추진하려고 한다"며 "제가 아직 정치를 해본 적이 없고 32년 동안 의사로 일했기 때문에 공부할 것이 많다"고 답했다. '어떤 통합인가'라는 질문에는 "사람 생각은 달라도 미워하지는 말자. 이런 통합"이라고 답했다.
'혁신위에서 공천 룰도 다루나'라는 질문에 그는 "제게 주어진 것은 어떤 이론적인 방향"이라며 "솔직히 권한이 어디까지인지 아직 모르지만 국민의힘에 있는 많은 사람도 내려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건희 회장 말씀 중에 참 제가 깊이 생각한 것이 와이프하고 아이만 빼고 다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이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혁신위원 인선에 대해 그는 "아주 능력 있는 분들을 보고 있다"며 "여성이 많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총선 출마 계획에 대해서는 "그건 다 내려놨다. 여러 말도 있고 유혹도 있지만 이 일 맡은 동안 다른 것은 없다. 그것은 확실하게 말한다"고 했다.
인 위원장 인선에 대해 여권에서는 우려 분위기가 감지된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이날 <채널A> 방송 인터뷰에서 "인요한 교수님은 국민통합위원장으로 적절한 분인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우리 당 체제를 개선하고 총선에 바람을 일으키기 위한 대수술"이라며 "여권 전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것을 대수술할 집도의가 필요한데, 그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영우 전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에 "인요한 교수가 히딩크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라며 "히딩크는 자신의 분야에서 경험이 많은 감독이었다. 견습생이나 훈련생이 아니었다. 앞으로 인 교수의 정치 혁신 명세서가 궁금하다"고 썼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김 대표가 왜 외부 인사라는 점을 강조했겠나. 혁신위는 당의 문제점, 환부를 도려내야 한다. 당사자는 자기 상처를 도려내지 못한다. 3자가 해야 한다"면서도 "인요한 교수가 외부인사 성격이 있을까. 얼마 전까지 서대문갑 인재 영입 인사로 거론되던 분이다. 공천이 거론되던 당사자가 혁신위원장을 한다는 것 자체가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문제점을 고치는 것까지만 하면 의미가 없다. 국민들 시각에서 공감대를 얻는 혁신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며 "환부를 정확히 도려내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혁신안을 만들 만큼의 전반적인 지식이 있을지, 또 외부인사라는 점을 살려 정말 당의 기득권에 분연히 맞서는 자세가 있을지 신중하게 보고 있다"고 했다.
장성철 공감과 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축구선수가 축구감독을 해야지 야구감독을 해서는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할 수 없다"며 "사람 좋고 인품이 훌륭하고 존경받을 만한 분이지 정치권을 잘 알아서 개혁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혁신위 권한에 대해서도 장 소장은 "김 대표 자체가 권한이 없는데 무슨 권한을 주겠나"라며 "혁신위에 전권을 주려면 혁신안을 무조건 최고위에서 통과시켜 당론으로 확정하겠다고 했어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는 또 "공천과 관련해 아무 안을 낼 수 없다면 혁신위가 무엇을 할 수 있겠나. 김 대표 비판을 잠재우거나 방향을 바꾸기 위한 하나의 꼼수라고 봐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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