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남태평양 섬나라들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고 있는 가운데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1년 만에 이 나라들과 두 번째 정상회의를 열어 이 지역에 다시 한 번 구애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2차 태평양 도서국 포럼 정상회의를 열고 대규모 지원을 약속했다. 이날 정상회의엔 뉴칼레도니아, 파푸아뉴기니, 팔라우, 마셜 제도, 사모아, 솔로몬 제도 등 18개 태평양 도서국 정상, 외교장관 등 지도자들이 참석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이 지역에 8억 1000만달러(약 1조 955억 원) 지원을 약속한 데 이어 이날 기후 변화 영향을 완화하고 경제 성장을 촉진하며 불법 어업에 맞서고 공중 보건을 증진하기 위한 2억달러(2705억 원)의 추가 지원을 공약했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정상회의 전 연설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 지역에서 복무하다 전사한 삼촌의 이야기를 꺼내며 "2차 대전 당시 선조들처럼 우리는 앞으로 태평양을 가로질러 세계의 많은 역사가 쓰일 것임을 알고 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다음 세대를 위해 역사를 함께 써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 같은 언급이 중국을 지목하진 않았지만 태평양을 사이에 둔 다른 종류의 전투가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라고 짚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기후 변화의 영향을 정면으로 맞고 있는 이들 국가에 "우리는 해수면 상승이 실존적 위협을 가져올 수 있다는 여러분의 경고에 귀기울이고 있다"며 "기후 위기의 결과로 유엔 회원국 자격이나 국가 지위를 잃는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는 요청 또한 듣고 있다"고 강조했다.
외교 관계 확대에도 힘을 쏟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남태평양 섬나라 쿡 제도와 니우에를 주권 국가로 인정하고 외교 관계를 수립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각 인구 1만 5000명, 1700명 가량의 작은 나라인 쿡 제도와 니우에는 뉴질랜드와 '자유 연합' 관계를 맺고 외교와 국방을 의존하는 작은 나라다. 이날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들 국가들과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하기 위한 공동성명에 서명했다.
정상 대접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를 보면 태평양 도서국 정상들은 유엔총회가 개최된 뉴욕에서 정상회의가 열리는 워싱턴으로 이동하는 길목에 있는 볼티모어에 24일 들러 미식축구 경기를 관람했고 해안경비대도 방문했다. 불법 어업 단속은 이들 국가들의 주요 관심 중 하나다. 25일 블링컨 장관 주재 만찬이 열렸고 26일엔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 및 존 케리 기후 특사와의 만남도 예정돼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태평양 섬나라들과의 관계에 공을 들이는 것은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지난해 4월 솔로몬 제도가 중국과 안보 협정을 맺으며 미국의 경계감이 커졌다. 중국은 이어 지난해 5월 피지에서 10개 태평양 도서국과 외교장관 회의를 개최하기도 했다.
미국은 이에 대응해 지난해 9월 첫 태평양 도서국 포럼 정상회의를 열었고 지난 2월 솔로몬제도에 30년 만에 대사관을 재개설했으며 5월엔 통가에 대사관을 열며 관계 강화에 나섰다. 내년 초엔 바누아투에도 대사관을 개설할 예정이다.
다만 미국의 구애가 이 지역의 마음을 움직였는지는 미지수다. 머내세 소가바레 솔로몬 제도 총리는 이날 정상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지난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는 참석했지만 워싱턴엔 들르지 않고 귀국해 버린 것이다. 미국 행정부 고위 관계자는 정상회의 관련 브리핑에서 소가바레 총리 불참이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사토 킬만 바누아투 총리도 내정을 이유로 정상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중국은 바누아투의 최대 채권국으로 지난달 바누아투의 정치적 혼란을 이유로 경찰 전문가를 파견하기도 했다.
호주 싱크탱크 로위연구소의 태평양 도서국 프로그램 국장 메그 킨은 <로이터> 통신에 미국 의회가 지난해 정상회의에서 이 지역에 약속된 지원액 대부분을 아직 승인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태평양 섬나라들이 "미국이 이 지역에 다시 관여하는 것은 환영하지만 지정학적 다툼으로 인한 군사화 확장을 원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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